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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함으로 악명 높은 「소리와 분노」를 읽었다. 첫장부터 백치 벤지의 언어로 시간이 경계선도 없이 마구 전환됐다. 확실히 어려운 작품이었다. 그래도 문장을 이해한다는 느낌보다는 화자에 이입해서 감각을 공유한다는 느낌으로 읽었더니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갈피를 어느 정도 잡을 수 있었다. 물론 처음 읽어서 이해한 것들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언젠가는 다시 읽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읽을 그날이 오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 기억이 증발하는 것을 줄이기 위해 어설픈 이해를 더 어설픈 글로 남겨보고자 한다.


「소리와 분노」를 요약하자면 '시간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인터넷에서 찾은 해설에 따르면 미국 남부의 몰락을 콤슨 가문을 중심으로 그린다고 하는데, 사실 나는 남북전쟁이라는 큰 사건이 있었고 남부가 패배했다는 것만 알 뿐 자세한 내막을 모른다. 그래서 그런 쪽으로는 아직 해석을 시도하기 어려울 것 같다. 단 몰락이 불가항력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영광과 문화에 취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인물상만큼은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콤슨 가(혹은 베스콤 가)의 과거가 얼마나 평안했던간에 그들은 새로운 질서에 적응해야 했다. 흑인이 자유롭게 다니는 것에 대한 이질감은 덜어내고, 경제적 몰락에 대응해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소리와 분노」 속 인물들은 그러지 못한다.


벤지의 출생이나 캐디의 문란함은 천재지변이다. 그러나 그것을 대하는 어머니의 태도는 현실을 부정하는 꼴밖에 안 된다. 퀜틴은 모르는 외국인 소녀와의 여정을 보면 참 착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남을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큰 나머지 사랑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는 세상을 아예 거부하고 만다. 인품은 훌륭하더라도 마지막 선택은 최악이었다. 제이슨은 그나마 현실 감각이 있다. 하지만 그는 이성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지극히 감정적이라고 평할 수밖에 없다. 어린 시절의 차별로 겪은 손실, 그리고 어그러진 약속에 미쳐서 그는 자신의 비행을 정당화한다. 물론 유년의 트라우마가 그의 미숙함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자의든 타의든 몰락해가는 집안을 지탱해가는 가장이 됐다면 그에 걸맞게 성숙해져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인간은 자기 불행의 총합이다. 언젠가는 불행도 지칠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시간이 네 불행이야." 아버지의 지적은 콤슨 가문의 역사를 관통한다. 살아갈수록 인생은 뜻대로 되는 일보다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이 더 많아지며, 이에 따라 마냥 좋았던 나날들이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은 나날들로 전락해간다. 이 굴레를 벗어나는 방법은 사실 간단하다. '좋았던 나날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즉 시계를 보지 않고 삶을 그대로 마주하면 시간은 앞으로 흘러간다. "작은 톱니바퀴들에 의해 째깍째깍 기록되는 한 시간은 죽은 것이며, 시계가 멈출 때에야 비로소 시간이 살아난다." 그러나 말이야 쉽지, 결국 사람은 좋은 삶을 꿈꾸는 존재이기 때문에 좋음을 느꼈던 과거에 매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신이 나아가고 있는 방향을 보려 하지 않고 삶을 제대로 살지도 못하는 것이다. "우연히 잉태되어 숨쉬는 매순간이 자신에게 불리한 협잡 주사위를 매번 새로이 던지는 듯한 삶을 사는 사람은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최후의 도달점을 직시하지 않으려 한다는 거야. 폭력에서부터 어린애도 안 속는 시시한 속임수에 이르는 모든 수단을 시도하는 일 없이 대담하게 직시해야 하는데도 말이야."


현재를 현재로 보지 않고 과거의 잔향으로 보는 시각은 삶을 더럽힌다. 제이슨에게 그랬듯 폭력과 기만으로 이상에 가까워지려는 태도를 낳을 수도 있고, 퀜틴에게 그랬듯 아예 과거에 영원히 살려는 결단을 만들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은 물론 행복이라 할 수 없다. 행복이란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에게 가장 좋은 일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것이지, 이길 수도 없는 싸움에서 무언가 건져보려고 인륜을 저버리고 객기를 부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퀜틴에게 아버지가 남긴 (아마도 마지막) 조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른 사람이 네 행복을 규정하지 않도록 해. 존재의 과거형은 가장 슬픈 말이야. 세상에 그보다 슬픈 말은 없단다. 절망도 시간이 흘러가야 있을 수 있지. 시간조차 그 존재가 과거가 되지 않으면 시간이 아니니까."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긴 사람은 없다. 싸움이 성립조차 안 된다. 그 전쟁터는 인간의 우매와 절망을 드러낼 뿐, 승리는 철학자들과 바보들의 망상이다." 안타깝게도 퀜틴은 이 말의 반례가 아닌 증거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 몰락의 소설에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가문을 묵묵히 보좌하는 딜지로부터 희망의 메시지를 찾을 수 있다. 콤슨 가문이 어떤 꼴로 전락하든, 딜지는 교회에서 배운 박애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콤슨 가를 위해 헌신할 것이다. 상황이 어떻든 사랑을 그대로 실천하려는 마음가짐은 시간을 극복하게 만든다. 제이슨에게도 변화가 보인다. 사실 재정적인 계획이 완전히 어그러졌기 때문에 변화가 불가피하기는 했다. 하지만 제이슨에게 가족은 짐덩어리였지만 내심 소중한 존재였다. 이미 많은 것을 잃었고, 그렇기 때문에 지극히 불만족스럽지만, 아무튼 그는 집에서 가장 노릇을 하며 살 것이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그 역할을 내려놓고 가족이 부서지는 것을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족을 위해서라도 그는 앞을 보려 할 것이다. "그 어떤 항구적 악의 영향 아래 있을지라도 그 안에 재난, 위협이 없다는 사실이 그로 하여금 과거에 보았던 어떤 장소로서의 제퍼슨을 잊을 수 있게 했다. 그가 계속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곳을." 러스터의 폭주를 멈추고 벤지에게 평안을 되돌려준 그의 모습이 일시적인 것일지, 아니면 앞으로 나아질 징조일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뭐, 공식적인 뒷이야기를 알지 못한다면 마음대로 좋은 쪽으로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미국 남부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상승과 추락을 되풀이한다. 내 주변에만 해도 과거의 행복을 잊지 못해 그 시절로 돌아가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 물리학적으로든 철학적으로든 시간은 앞으로만 흐른다. 그래서 나는 과거로 헤엄쳐보려는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공감하지는 못한다. 아무튼 그들을 움직이는 것은 '지금' 그들이 사랑하는 무언가다. 지금을 빛내려면 지금 가장 이로운 일을 해야 한다. 이미 지나간 시간에 대해 잊어야만 미래를 그릴 수 있다. 인생은 죽음 이전까지 계속 연쇄되는 비극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비극을 없던 일로 해보려고 발버둥치면 비극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인생에 지쳐 현재의 존재가 되기를 거부하느니, 한껏 지쳤지만 앞을 지향하며 더는 잃지 않으려고 사는 현재의 존재가 되는 것이 낫다. 


이것으로 이번에 읽은 것에 대한 감상은 마치고자 한다. 다음에는 공부를 좀 더 해서 남부의 생활상, 그리고 콤슨 가문의 생활 양식이 암시하는 요소들에 대해 좀 더 깊이 이해한 채로 다른 감상문을 쓸 수 있기를 바라 본다. 분명 다시 읽을 가치는 있다. 딜지 섹션에 가서야 이해한 벤지 섹션의 내용들도 많았으니, 공부를 한 뒤에는 더 심오한 무언가가 포착되리라는 확신이 있다. 문학도도 아닌데 문학을 공부해가며 향유한다는 것이 이상하기는 하지만, 오랜만에 기분 좋은 호기심이 밀려와서 나는 진심으로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