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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르소는 자신이 사형선고를 받고서 역설적으로 살아 있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발소리가 들려오고 내 심장이 터져 버릴 수도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자신의 사형집행일지도 모르는 발소리가 오히려 그가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었다. 

“어차피 죽는 바에야 어떻게 죽든, 언제 죽든 그런 건 당연히 문제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러므로 나는 내 상고의 기각을 받아들여야 했다.”결국 자신이 풀려나든 집행을 당하든 언젠가는 죽기에 뫼르소는 상고의 기각을 받아들였다.“

“그는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으니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조차 없는 셈이지. 그러나 내겐 나 자신에 대한,모든 것에 대한 확신이 있어.나의 삶에 대한 닥쳐올 그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 ” 죽음이 이란 확실한 사건이 끼어들자 뫼르소는 삶에 확신을 느낀다. 

“그토록 죽음이 가까운 시간에 그것에서 엄마는 마침내 해방되어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준비가 되었다고 느꼇던 것 같다. ” 죽음을 직면하자 삶의 무의미함를 깨닫고 오히려 그것에서 해방된 느낌 즉 자유를 느낀 것이었다. 

죽음 즉 부조리를 직면함으로서 삶은 무의미함을 깨달을 수 있다. 삶은 무의미하기에 우리는 해방되어 의미를 찾지 않아도 되고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페스트’ 는 나아가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삶을 넌 어떻게 살아갈래?

내가 느낀 답은 이러하다.
 “모든 생명은 죽는다. 삶은 원래 무의미하기에 종교에 기대고 자살을 하는것은 부조리를 회피하는 것이다. 죽음을 직면함으로서 때로는 절망을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반항하는 인물이란 그러한 삶속에서 절망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 절망에 무너지지 않고 절망과 함께  묵묵히 본인의 일을 하는 것이다. “

나는 카뮈의 철학위에 있다.
“나는 전출이라는 희망에 기대지 않는다.
그렇다고 절망에 무너지는 것도 아니다.
이 부조리한 군생활 속에서 절망을 느끼면서도,
그 절망을 있는 그대로 들고 오늘의 일을 묵묵히 해나간다.바로 그 자리에서 나는 나 자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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