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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타키는 종소리를 듣고 깨어났다”
의사는 창문을 막고 스스로를 어둠 속에 가둔 후 첫 문장을 다시 쓴다.
이는 지옥같은 굴레의 순환이다. 원은 닫혔고 절망의 이야기가 영원히 순환할 뿐이다.
종소리의 출처는 잔인했다. 희망의 동앗줄처럼 들렸던 종소리는 일개 소음에 불과했다.
푸타키는 이 종소리에 반응해 또 다시 깨어난다.
절망의 소리를 듣고도 그 절망의 소리에 반응해 깨어나는 것, 이것은 무기력함의 상징이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작품은 총 12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이는 탱고의 12걸음을 반영한 것으로써 6걸음울 전진하고 다시 6걸음을 후퇴하는, 영원한 반복과 제자리걸음을 상징한다.
1~6장은 희망을, 7~12장은 배신과 절망을 담음으로써
희망의 목소라가 배신과 절망으로 귀결되는, 사탄의 탱고의 형상을 띄고 있다.
푸타키는 영원히 깨어나길 반복하지만, 또 다시 영원히 좌절을 반복하는 사탄의 탱고 춤을 추는 것이다.
의사의 존재 또한 흥미롭다.
처음 그는 관찰자의 시점에서 마을 주민들을 바라보지만, 그 끝에 가서는 마치 창조자와 같은 입장이 되어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하지만 그는 이야기 속 인물들의 처지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존재하지 않으며, 그 역시도 이야기 속 인물 중 한명이 되어 절망을 반복하는 입장일 뿐이다.
이는 창조자, 즉 신의 존재에 대한 명백한 부정이다. 창조자 조차도 허무감을 맛보고 절망을 반복하는 끝 없는 지옥도의 향연인 것이다.
이처럼 <사탄탱고>는 관객에게 끝 없는 순환의 절망을 맛보게 하는 비극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을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절망으로써 종결되는것은 아니다.<사탄탱고>의 곳곳에는 희망의 불씨 또한 존재한다.
의사는 종소리가 소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문장을 다시 썼고, 푸타키는 또 다시 깨어났다. 이것은 신의 부재에 인간이 직접 일어난 것이다.
이리미아스와 정부 서기관들이 말하기를 푸타키는 일을 잘하지만 ’위험한‘ 존재이다. 그는 진정으로 깨어나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라슬로와 벨라 타르는 허무주의를 깊게 탐구하고 기록한다.
그 기록의 끝은 절망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기록하는 자가 존재하는 한 일말의 희망은 의미화되어 형태로 남는다.
라슬로와 벨라타르는 무신론자이기도 하다. 그의 이야기에 낭만적인 신의 희망은 없지만, 불가항력적인 지옥 또한 영원하진 않을 것이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인간의 의지까지 무력해지는것은 아니다.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 속 부조리 철학에 의하면 자신의 운명을 의식하고 인정하는 순간 비극을 초월할 수 있다.
절망은 반복될지라도, 그 절망에 맞서는 인간의 의지 또한 영원히 반복될 것이다.
이는 허무주의 속 실존적 희망으로써, 절망에 머무를 것인지 다시 시작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독자와 관객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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