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대회에 작품출품을 하려는데 소설은 창작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능력도 받쳐주지 못하기에 영화평론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평론이라는 장르 자체가 그 분야에 대한 지식이 설득력에 직결되는 핵심 요소라고 하는데 저는 건축에 대해서도, 시오니즘에 대해서도 깊이있는 지식이 부족하여 막막합니다 사실 평론을 많이 써보지도 않았고 영화에 대한 평론은 처음인지라 더 힘든 것 같습니다
평론 자체가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인데 영화라는 장르가 가진 전달력에 대한 설명도 필요한지부터 의문이 많이 생기네요.. 혹시 조언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소설에 대한 내용은 아니지만 문학장르에 대한 글이라서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문제가 되면 삭제하겠습니다!
브루탈리즘이 영화도 있음??
죄송.. 브루탈리스트임 - dc App
'브루탈리스트' 라는 영화 평론을 쓰고 싶단거임? 그럴거면 모더니즘 건축 역사에 관한 이야기나 건축가들을 조사해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질문이 너무 방대하고 추상적이라 뭘 추천하기가 어렵네. 르코르뷔지에 관련 책들은 좀 있었던 거 같은데 그런 거 읽어보는 게 어떨지. 비평 이론이나 작성에 관한 건 검색하면 많이 있을거임. '비평이론의 모든것' 이라는 책도 있고...
감사합니다! 건축관련 책을 더 찾아봐야겠네요 모더니즘에 관한 정확히는 영화 평론이 허용하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가 궁금했던 것 같아요 영화의 내용도 길고 다루는 주제도 다양해서 그걸 전부 넣으면 너무 난잡해지지 않을까?란 생각부터 주제와 조금 어긋나도 반드시 넣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도 되는지 - dc App
브루탈리스트는 딱히 브루탈리즘 몰라도 되지 않나? 시오니즘만 알면 될 것 같은데
시오니즘에 대한 글을 적을지 예술의 이면에 대한글을 적을지 고민이 되네요.. - dc App
브루탈리스트는 그게 연결되는 영화라고 생각함.
브루탈리즘이 표상하는 대표적인 주제가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 아름다움의 본질, 혹은 본질의 아름다움이라 생각하고 주제인 시오니즘이 다른 유대인 영화를 많이 보지는 않았지만 많이 약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혹시 어떤점에서 연결되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브루탈리스트는 예술의 존재를 포착하려는 영화임. 온갖 억까를 당하면서도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의 예술과, 그 결과물로서의 예술이 합일했을 때 진정한 예술이 탄생함. 시오니즘은 그 억까에 해당하는 거지.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이라는 억까를 이겨내고 완성된 예술은 시오니즘에 의해 왜곡되는 억까를 당하게 됨.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성되어 있는 건축 작품은 관객으로 하여금 억까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게 서 있는 예술의 본질을 생각해보도록 하고, 그 모든 과정이 필름에 기록되면서 영화를 예술이 되었음 역시 상기하도록 함. 예술의 이면과 시오니즘이 연결되어 있는 것은 시오니즘이 예술의 명부와 암부 중 후자에 해당하기 때문이라고 봄.
와... 생각지도 못한 관점이네요.. 저는 주인공이 영화에서 언급하듯이 살아남은, 변화무쌍한 세상속에서 그 본질을 잊지 않고 서있는 것이 예술이고, 그 예술 중에서도 그 의미를 극대화할 수 있는 하나의 장르가 건축이라고 말한 것에서 시오니즘이라는 억까가 완성된 예술을 왜곡하는 것에는 분명 동의하는데 왜곡의 정도가 유의미한지 잘 모르겠어요.. 에필로그에서 홀로코스트를 나타낸다고 표현한 것에서는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는데 시오니즘이 예술의 암부라고 할만한 다른 요소들이 있을까요?
예술의 과정은 언제나 아름다울 수 없지요. 라즐로는 명부를 바라보며 아름다워지기를 바라지만 밴 뷰런의 억까라는 암부가 존재하고 그걸 이겨내니 이번에는 시오니즘의 왜곡이라는, 분명 미를 추구했을 뿐인데 사상이라는 암부가 명부를 위협하는 상황이 도래합니다.
조카가 라즐로의 작품을 해설하는 동안 라즐로는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예술가는 말이 없는데도 조피아의 해설이 진실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답변 정말로 감사합니다!! 저도 조금 더 깊은 견해를 가지고 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