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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역절중-사괘에서 꺄우뜽 하다가 리괘를 읽다 보니 한심하다. 괘상은 이러하다 [호랑이 꼬리를 밟더라도 사람을 물지 않으니 형통하다.]. 호랑이 꼬리를 밟는 지경에

이르면 관우항우도 그 자리에서 사지가 찢긴다. 비록 살 수 있을지라도 만 가지 중 하나다. 즉 만일이다. 만약 누군가 저 사태에 이르거나 점을 쳐 리괘가 나온다면

머리를 보전하기 위해선 팔다리를 내놔야하고, 팔다리를 살리기 위해 손과 발을 잘라야하며, 손톱을 뽑아 손가락과 발가락을 살려야 할 것이다. 재빨리 끊고 미련이 없어

야 재앙에서 멀어진다. 여러 학자들이 뭇 경전들을 인용하므로 나도 경전을 이용해 말할 수 있다.


"듣자 하니 삶을 잘 보존한다고 하는 사람은 물에서도 외뿔소나 호랑이와 마주치지 않고" (도덕경 50장) 


"생기지 않았을 때 작위하고, 어지러워지짖 않았을 때 다스려야 한다. 한 아름으로 껴안을 수 있는 나무라 하더라도 가을 터럭 끝에서 자라고"(도덕경64장, 김원중 역)



2. 죽음의 집의 기록-도스토예프스키가 쓴 소설은 읽는 데 피로가 상당하다. '넋'으로 총칭되는 인물들이 지닌 과민, 신경질적, 모호성, 그들간 벌어지는 관계 등을 따라가다가

진이 빠진다.  1인칭 소설은 그래도 한결 낫다. [지하생활자의 수기]나 [죽음의 집의 기록]는 여러 번 읽었다. 

 



3. 각주에 대해서



- 생선 한 마리를 구워 먹을 때 살을 먹지 뼈를 취하지 않는다. 머릿꼬리는 별미이기도 하고 그냥 버리기도 한다. 책 한 권을 통채 다 취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살점 외에 나머지 부속이 필요없는 것은 아니다.

-일정한 속도로 도로를 운전할 때, 전방에 과속방지턱이 있으면 브레이크를 밟아서 턱을 충격없이 넘어가야 한다. 턱은 불규칙적으로 일정한 리듬, 속도에 돌발로 끼어든다. 그것은 필요하지만 불쾌하다.

-미끄럼틀. 철로 제작된 미끄럼틀은 제각각 따로 제작되어 설치되는 곳(놀이터)에서 조립한다. 접합 부분은 용접 처리한다. 그 부분은 우들우들한 요철이어서 미끄럼틀을 탈 때 항상 종아리에서 엉덩이까지 쓸린다. 그것은 필수 작업이지만 불쾌하다.

-각주란 키스를 하면서 눈을 뜬 것과 같다. 황홀한 감정으로부터 벗어나 몰입을 깬다.

-각주란 냉탕과 온탕에 한 발씩 걸친 것과 같다. 이도 저도 아니란 말이다.

-각주란 스킵할 수 있는 중간 광고다. 그것은 작품에서 얻는 나의 감상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각주에 눈을 돌리는 것은,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다 높이가 다른 층계를 밟은 것과 같다. 리듬이 깨져 자칫하면 발목을 삐듯, 작가가
올려놓은 높이에서 추락한다.

-영화를 볼 때 옆자리에서 수다를 떠는 사람이 제일 싫다. 각주란 눈치 없이 끼어드는 수다꾼이다.

-호메로스는 아테네를, 아이스킬로스는 팔라스를. 아이스킬로스는 저항하는 프로메테우스를, 괴테는 반역하는 프로메테우스를. 작품이라고

불리만한 것에는 독자의 상상력이 자리할만한 여백이 있다. 그것은 독자가 작품에서 얻는 하나의 인상이자 결기이다. 상상은 작가가 내어준

공간에 완고하게 자리한다. 달리 말하면 씨앗이다. 아이스킬로스가 호메로스에게서, 괴테가 아이스킬로스에게서. 각각은 답지가 없는 주석이다.

그리하여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착각하는 것보다 작가가 내어준 여백을 칠할 상상력이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