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형태만 달리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의 생각이 가지는 유용성에 대해서는 사람
마다 의견이 달라서 많은 논쟁이 일어나게 된다. 그래서 유용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 생각
의 진리 여부에 대해 그러는 것만큼이나 자유롭고 치열한 토론을 거쳐야 한다. 비난의 대상이
되는 어떤 생각을 변호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가 없다면, 그 생각이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지
아닌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틀렸는지 틀리지 않았는지 판정할 때만큼이나 완벽한 재
판관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 이교도가, 비록 자신의 생각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지만, 그것이 나름대로 효용이 있다거나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는
있다고 한다면, 이것이 과연 논리에 맞겠는가? 어떤 생각이 담고 있는 진리는 그 생각이 가진
효용의 일부이다. 어떤 한 명제를 믿어도 되는지 알고 싶을 때, 그것이 진리인지 아닌지를 제
쳐두고 판단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악한이라면 몰라도 자극히 훌륭한 사람의 입장에서 본
다면, 진리와 배치되는 생각은 결코 유용할 수가 없다. 이런 사람들이 보기에 분명히 틀린 어
떤 생각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유용하다며 강변한다면, 진리와 배치되는 생각은 어느 것도 유
용하지 않다고 내세우지 않을 수 있겠는가? 널리 통용되는 의견을 따르는 사람들은 방금 말한
이런 주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다 얻으려 한다. 그들은 효용의 문제가 전적으로 진리의
문제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신의 주장이 부인할 수 없는 '유일
진리' 이므로 그것에 대한 믿음이나 지식은 필수불가결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일수록 한쪽 면에만 치우쳐 논의하면 그것이 얼마나 유용한지 정확하게 따져볼 수 없다.
법이나 대중의 정허가 어떤 한 의견의 옳고 그름에 대해 따져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상황에
서는, 그것의 유용성을 부인하는 것도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기껏해야 그것이 꼭 필요하다거나,
그것을 부인하는 것은 분명한 잘못임을 밝히는 것 정도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 생각에 더 들어볼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어떤 주장을 공론에 붙이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것이
얼마나 나쁜 결과를 낳는지 분명히 보여주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사례를 분석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일부러 가장 극단적인 경우------진리와 유용성이라는 두 가지 이유를 내세워 생각의 자유를 가장
심각하게 침해하는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미래의 어느 시점, 어떤 한 국가에서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비난의 대상이 된다고 가정해보자. 아니면 사람들이 흔히 받아들이는 어떤 도덕관
을 놓고 이야기해보자. 위에서 말한 그런 근거를 가지고 이 싸움을 벌이게 되면 공정하지 않은 상대방
에게 큰 힘을 실어주는 셈이 된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보나마나 (그리고 불공정한 이득을 취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도 속으로는) 이렇게 말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법의 이름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확신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그 주장인가? 신의 존재에 대해 당신은 절대 확신하는가?
그러나 내가 절대 확실하다고 여기는 주장은(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게 아님을 분명히 밝혀야겠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문제에 대해 반대되는 의견을 못 듣게 한 뒤, 그들을 위해 그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 것과 같다. 나는 나의 확고한 신념에 따라 이런 가식을 나무라고 비난할 수밖에 없다.
<질문>
1. 비난의 대상이 되는 어떤 생각을 변호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가 없다면, 그 생각이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지
아닌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틀렸는지 틀리지 않았는지 판정할 때만큼이나 완벽한 재판관이 필요하다.
이게 무슨 의미임?
2. 그러나 내가 절대 확실하다고 여기는 주장은(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게 아님을 분명히 밝혀야겠다.
여기서 '내가 절대 확실하다고 여기는 주장'이랑 '그게'가 의미하는 게 뭐야?
1.내가 나 자신의 생각을 변호할 자유가 없다면, 그 생각의 해로움이나 이로움을 판단할 수 있는 완벽한 근거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야 나 자신을 변호할 이유가 없어지니까요. 2. 이건 좀 더 읽어봐야 알겠네요.
'이것이 바로 당신이 법의 이름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확신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그 주장인가? 신의 존재에 대해 당신은 절대 확신하는가?'라는 식으로 말해서 단정적으로 내 자신의 의견을 이분법으로 나누어버린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식의 몰아가기에 대해서 나 자신의 의견이 그렇게 확실하지 않음을 밝혀야겠다고 말을 하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내 의견에 대해서 단정지어버리는 것은 결국 그 주장에 뒷받침되는 내 근거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그 근거에 반대되는 의견을 못듣게 함으로써 그들 대신에 그들의 결정을 정한다는 뜻 같습니다. 책세상 판본이 아니지요?
책세상이에요 2000년대 버전요
이해 되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막혀서 진도를 하나도 못 나갔네요 휴;
몇페이지이신지 알려주시면 내일 제가 읽고 다시 답드리겠습니다.
@fafa 52쪽에서 54쪽까지 내용입니다.
1. 여기서 유용성은 utility를 번역한 말로, 공리功利 또는 효용으로도 번역되는 말입니다. 밀은 공리주의자입니다. 그리고 공리주의자는 도덕의 근본 원칙이 사회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밀은, 무슨 생각이든 간에 아예 공론 자체를 금지시키는 것은 공리주의 관점에서 부당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금지를 공리주의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생각의 유용성 여부를 따져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우선 그 생각이 진리인지 아닌지를 따져야 하고, 우리가 (완벽한 재판관이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들인 이상, 어떤 생각이 진리인지 아닌지는 그 생각이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되어 공론의 대상이 되는 가운데 비로소 판정할 수 있는 것이라고 밀은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해당 문장은, 어떤 생각을 진심으로 진리라고 여기며, 진리라고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열렬한 옹호자, 변호사도 동석한 가운데 판정을 해야 하는 거지, 단지 재판관만으로는 (그 재판관이 완벽한 게 아닌 이상) 그 생각의 유용성을 제대로 판정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2. 여기서 밀이 확신하는 주장은, (신이 존재한다는 주장도 아니고, 신이 부재한다도 주장도 아니고) 사회의 다수가 확신하는 주장에 반기를 드는 주장은 애초에 공론의 장에 들어올 수도 없게 하는 게 부당하다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매끄럽게 이해가 되네요. 이후부터는 아직까진 술술 읽어집니다.
1에 대해서, 어떤 생각(의견, 주장 등)을 명제로서 참과 거짓을 확실하게 나눌 수 있다면 그건 그 생각의 유용성에 대한 충분조건입니다. 객관적으로 맞다, 틀리다를 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완전한 객관성은 수학적 명제가 아닌 이상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에 자유롭고 치열한 토론은 이에 대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인데, 그 생각을 변호할 자유가 없다면 그 최소한의 필요조건조차 충족시킬 수 없고, 이에 대한 간접적인 필요조건(완벽한 재판관)은 충분조건(그 생각의 명제화)에 한 없이 가까울 수 밖에 없다는 말 같습니다. 그러니까 변호의 자유에 대한 당위라는 필요조건은 이를 충족시키지 않으려면 필요한 더 높은 당위가 필요하고, 이는 그 생각에 대한 절대적 판단이라는 충분조건에 한 없이 근접하다는 뜻 같습니다.
밀이라는 사람에 대해선 윗분 댓글을 보고 조금 알게 되었는데 그렇게 보면 불완전한 인간은 불완전성을 보완하는 방법을 찾아야지 완전성을 상정해서는 안 된다고도 읽히네요. 재판관 얘기를 꺼낸 것은 작가가 쓴 생각들 또한 절대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꺼낸 것 같습니다. 다만 자신은 피고인으로서 남겠으니 '완벽한 재판관'이 돼야 한다는 당위에서 자유롭다는 뜻 아닐까요? 2는 다른 분들이 말씀하신 대로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을 보지 말라는 것 같네요.
@도독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