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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곳은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었다. 이제는 추억이 된 한컴 타자 연습에서 나는 곧잘 「별 헤는 밤」으로 (또래 사이에서는 제법 빨랐던) 타수를 과시하고는 했다. 그러다 보니 프랑시스 잠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라는 이름을 외우게 됐다. 독서를 취미로 삼으며 언젠가는 릴케의 작품을 읽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어째서인지 프랑시스 잠이라는 이름은 잘 떠오르지 않았다.) 처음으로 이름을 접한 뒤 정말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말테의 수기」를 읽을 기회가 오니 미루던 혼자만의 약속을 지키게 된 것 같아 소소한 기쁨을 느꼈다.


「말테의 수기」는 유명세에 비해 꽤 어려운 작품이었다. 「말테의 수기」에는 정말 다양한 이야기들과 그로부터 나온 정말 다양한 성찰들이 산발적으로 등장한다. 이들 사이에 직접적인 유기성이 없어서 주제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얼마 전에 읽은 「토성의 고리」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전체 주제를 파악하는 일은 제쳐두고 일단 말테의 시선에 이입하여 작품 속 세계를 함께 둘러보다 보니, 어느샌가 말테가 좋아하는 무언가에 대해 갈피를 잡게 됐다. 말로 옮기기는 힘든, 어떤 이상이 점차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수기를 다 읽을 즈음에 마침내 단어 하나가 떠올랐다. '조화'라는 단어였다.


나에게 조화란 이런 의미다. '모든 요소들이 저마다의 의미를 지닌 채, 조금의 손상도 없이 전체를 완성하여, 마침내 단순한 총합보다 더 큰 아름다움을 실현해 내는 경지.' 즉 아름다운 큰 그림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조화가 아니다. 그런 것은 차라리 충성이라 부르는 것이 낫다.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들은 저마다 서사와 지향이 있다. 지향을 향해 자신만의 서사를 쓰며 나아가는 과정이 삶이고, 자유분방한 삶들의 우연적인 얽힘이 곧 세계의 조화를 만들어낸다. 따라서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심지어 폐허와 무덤도, 저마다의 삶을 간직하고 있다. 「말테의 수기」는 이에 관한 증명이라고 할 수 있다. 말테가 사소한 사물에도 해석을 덧붙이고, 끝없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무언가 의미를 찾는 것은, 결국 만물에 존재하는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체화해 내는 존재가 되기를 원해서였다. 다시 말해 세계와 한몸이 되어 조화를 노래하는 시인이 되고자 하는 열망 때문이었던 것이다. "세상 모든 일이 나와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쉽게도 효율을 중시하는 사회가 도래하고 관계를 무기로 쓰는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조화'라는 가치는 퇴색하고 말았다. 사람들은 생존하기 위해 가면을 쓴다. 심지어는 자기 맨얼굴을 직접 잡아뜯어가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제도적으로는 역사상 가장 자유로운 이 시대에 정작 진정한 자유를 맛보는 사람은 얼마 없다. 자기만의 개성을 발휘하는 조화의 일원이 되기보다 충성을 다하는 신하로 남는 것이 더 쉽고 안정적이니, 마냥 원망하는 것도 부당하다. 하지만 사람들이 남들이 쓴 이야기에 자신을 맞추느라 스스로 작아지기를 선택하는 것은 정말 아쉽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을 알아보지 못하고 우리 자신이 가진 어마어마한 크기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구체적으로 어떤 삶을 추구해야 할까? 사실 어떤 일이든 결국 사람 사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만큼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이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타인에게 겁을 먹지 않는 것이 조화를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태도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사랑받기를 기다리는 사람보다 사랑을 먼저 실천하는 사람이 원하는 바를 먼저 이룬다. 그러므로 행복을 남이 가져다주기를 바라는 것보다 직접 지향을 향해 달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랑받는다는 것은 불타서 사라지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아무리 써도 마르지 않는 기름으로 밝게 빛나는 것이다. 사랑받는다는 것은 사라지는 것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지속하는 것이다." 모든 삶을 그 자체로 존중하고, 그중에서도 자신의 삶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건강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가장 아름다운 세계, 즉 조화로운 세계를 만들어낼 것이다.


말테가 끝내 스스로 생각한 시인의 경지에 이르렀는지는 알 수 없다. 말테를 릴케와 동일한 존재로 보면 이루고도 남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릴케가 자신에게 어떤 결핍을 발견해서 이를 밝혀내고자 말테라는 거울상을 창조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릴케에게든, 말테에게든, 「말테의 수기」를 이제 막 읽은 나에게든, 번잡한 세상에서 함께일 때에도 홀로일 때도 아름다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인생은 한번뿐이기에 화려하게 불태워보자는 생각도 최대한 오래 불을 유지해 보자는 생각도 정당하다. 단 세상을 정원으로 만들고 그 속에서도 나만의 아름다움을 발하는 꽃이 되려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을 사랑하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세상을 아름답게, 그리고 나를 특별히 아름답게 하기 위해 말테의 생각들을 되새겨야겠다.


마지막으로 「말테의 수기」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구절을 인용해 본다. 시인의 산문인 만큼 「말테의 수기」는 미문의 바다였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이다. "7월이면 늘 만날 수 있는 어느 이른 아침이었던 것 같다. 잠을 푹 잔 뒤 곳곳에서 즐거운 일들이 툭툭 터져 나오는 새로운 시간이다. 수백만 개의 억누를 수 없는 작은 움직임들이 모여 인상적인 생명의 모자이크를 만들어내는 시간이다. 온갖 기운들이 허공을 향해 나부끼고 그것들에 배어 있는 서늘함이 그늘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주고 햇살에 경쾌함과 정신을 심어준다. 이때는 정원의 그 어떤 것도 다른 것들보다 더 우위에 있지 않다. 모든 것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다면 그 모든 것들과 함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