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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이야기하는 부분은 간단하지만 이걸 보면 될 듯)

1.

문득 내가 아들 대신 딸 중의 하나를 잃었더라면 이보다는 조금 덜 애통하고, 덜 억울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해보는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이 떠오른 것 자체가 두려워 나는 황급히 성호를 그었다. 행여 또 그런 생각이 떠오를까 봐 속으로 주모경을 외웠다. 그래도 두려워 화장실에 가서 울며 용서를 비는 기도를 했다. 오랜만에 해보는 기도였다. 그래도 두려움과 가슴의 울렁거림은 가라앉지 않았다.




2.

나는 신이 생사를 관장하는 방법에 도저히 동의할 수가 없고, 특히 그 종잡을 수 없음과 순서 없음에 대해선 아무리 분노하고 비웃어도 성이 차지 않지만 또한 그런고로 그분을 덧들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오직 그분만이 생사를 관장하고 있다고 신의 권위를 믿고 있었고, 불쌍하게도 깊이 공구하고 있었다.




3.

저만치서 노파가 앉아서 김을 매듯이 땅을 뒤지고 있다. 무엇을 하고 있나 궁금해서 가까이 가보니 자루에다 돌을 골라 담고 있다. 그 쪽은 모래사장이 아니고 작고 매끄러운 돌이 깔려 있다. 자세히 보니 조개껍질 같기도 하고 아기 이빨 같기도 한 연분홍의 예쁜 돌이 그 일대에 쫙 갈려 있다.  화분 같은 데 깔면 보기 좋을 것 같다. 그러나 노파는 그런 용도에 쓰기에는 너무 많은 돌을 마대자루에 골라 담고도 한눈 한 번 안 팔고 그 일에 골몰하고 있었다. 하도 이상해서 그걸 다 무엇에 쓸 거냐고 물어보았다. 기념품을 만드는 공장에 갖다 팔 거라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노파는 앞니가 두 개밖에 없었고, 나이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주름이 깊었다. 아무리 없이 살아도 헐벗지는 않는 세상이라 그런지 노파의 입은 옷은 좀 너무하다 싶을 만큼 남루했다. 머리카락도 센 건제 바랜 건지 말총 빛깔로 헝클어져 있었다. 그런 노파의 노동을 보면서 기껏 자기 집 화분을 장식하려고 극성을 떨자고 밖에 생각 못한 내 한심한 상상력에 나는 수치감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해변에서 파는 싸구려 액자나 거울 틀에 그런 돌을 박은 걸 본 적이 있었다. 그런 걸 만드는 공장에서 노파의 수고비를 얼마나 박하게 쳐줄지는 물어볼 것도 없이 뻔했다. 그렇지만 밑천은 안 드는 돈벌이였다. 9월 중순의 한낮 햇볕은 사정없이 이글거렸다. 노파는 여름내 그 밑천 안 드는 돈벌이에 종사해온 듯 드러난 팔과 종아리는 새까맣고도 기름기라곤 없어 비듬이 히끗히끗했다. 나는 밑도 끝도 없이, 그러나 확신을 가지고 노파에게 몹쓸 병이 들거나 술주정뱅이 아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같이 늙어가는 영감을 위해서라면, 또는 의지할 데라곤 없는 처지여서 자기 한 몸 입에 풀칠하기 위해서라면 양로원에 가고 말지 그 보잘것없고 영세한 돈벌이에 그렇게 전력으로 종사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오로지 아들을 위해서만 그 보잘것없는 일이 타당하고도 거룩하게까지 보였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미친년처럼 화끈한 열정으로 그 생각에 탐닉했다. 조금도 거짓없이 나는 그 노파가 부러웠다. 아들의 약값을 위해서든 아들에게 뜯기기 위해서든 아들을 위한 일 외엔 눈에 보이는 게 없는 노파가 부러웠다. 나는 나도 모르게 노파의 일을 돕기 시작했다. 그 일은 보기보다 수월하지 않았다. 분홍빛 예쁜 돌만 쫙 깔려 있는 것 같아도 역시 모래와 잡석 속에서 추려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노파는 내 서툴고 미미한 도움을 의식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마대자루가 차자 질질 끌고 말없이 가버렸다. 나는 노파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배웅했다. 어쩌면 나는 내 내부의 교만이 무너진 자리를 응시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에미 눈에 자랑스럽지 않은 자식이 어디 있을까마는 자식들마다 건강하고 공부 잘해 한 번도 속 안 썩이고 일류학교만 척척 들어가고 마음 먹은 대로 풀릴 때, 그 에미의 자랑은 기고만장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그랬었다. 기고만장 정도가 아니라 서슬 푸른 교만이었다. 그래서 남의 공부 못하는 자식, 방탕하거나 버르장머리 없는 자식을 속으로 은근히 깔보았었다. 그것도 학교라고 허리가 위게 번 돈을 등록금을 대야 하다니, 이런 마음으로 내 눈엔 도무지 차지 않는 대학에 보내고도 좋아하는 친구나 친척을 겉으론 축하해주는 척하면서 속으론 불쌍해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뇌성마비로 태어난 남의 자식을 보고 차라리 죽는 게 나았을 걸 하는 모진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런 내가 노파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가장 못난 최악의 아들을 가정해도 역시 노파가 부러웠다. 가슴이 아리게 부러웠다.

내가 받은 벌은 내 그런 교만의 대가였을까. 하느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게 교만이라니 나는 엄중하지만 마땅한 벌을 받은 것이었다. 조금 마음이 가라앉는 듯했다. 나는 내 아들이 이 세상에 없다는 무서운 사실을 견디기 위해서 왜 그런 벌을 받아야 하는지 영문을 알아야만 했다. 아들을 잃은 것과 동시에 내 교만도 무너졌다. 재기할 수 없을 만큼 확실하게. 그러나 교만이 꺾인 자리는 겸손이 아니라 황폐였다. 내 죄목이 뭔지 알아냈다고 생각하자 조금 가라앉는 듯하던 마음이 다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교만의 대가로 이렇듯 비참해지고 고통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치자. 그럼 내 아들은 뭔가. 창창한 나이에 죽임을 당하는 건 가장 잔인한 최악의 벌이거늘 그 애가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런 벌을 받는단 말인가. 이 에미에게 죽음보다 무서운 벌을 주는데 이용하려고 그 아이를 그토록 준수하고 사랑 깊은 아이로 점지하셨더란 말인가. 하느님이란 그럴 수도 있는 분인가. 사랑 그 자체란 하느님이 그것밖에 안 되는 분이라니. 차라리 없는 게 낫다. 아니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시금 맹렬한 포악이 치밀었다. 신은 죽여도 죽여도 가장 큰 문제거리로 되살아난다. 사생결단 죽이고 또 죽여 골백번 고쳐 죽여도 아직 다 죽일 여지가 남아 있는 신, 증오의 최대의 극치인 살의. 나의 살의를 위해서도 당신은 있어야 돼. 암 있어야 하구말구.


4.

내 아들이 없는데도 온 세상이 살판난 것처럼 들떠 있는 올림픽의 축제 분위기가 참을 수 없더니, 내 아들이 없는 세상 차라리 망해버리길 바란 거나 아니었을까. 내 무의식을 엿본 것 같아 섬칫했다. 아아, 천박한 정신의 천박한 꿈이여. 내 아들아, 어쩌면 에미를 이렇게까지 비참하게 만드니.



5.

하느님도 너무하십니다. 그 아이는 이 세상에 태어난 지 25년 5개월밖에 안 됐습니다. 잔병 한번 치른 적이 없고, 청동기처럼 단단한 다리와 매달리고 싶은 든든한 어깨와 짙은 눈썹과 우뚝한 코와 익살을 잘 부리는 입을 가진 준수한 청년입니다. 걔는 또 앞으로 할 일이 많은 젊은 의사였습니다. 그 아이를 데려가시다니요. 하느님 당신도 실수를 하는군요. 그럼 하느님도 아니지요.




종교적으로도 가치있는 처절한 이야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