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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산. 또 산. 이어간 산줄기와 굽이치는 골짜구니. 영겁의 정적.


멀리서 보면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이 골짜구니가 마치 푸른 모포를 드리운 것 같이 부드러운 빛깔로 보였다.


그러나 골짜구니를 뒤덮고 있는 관목의 가지와 잎사귀에 가리어, 험한 바위가 짐승처럼 엎드리고, 담그면 손목이 끊길 것 같은 차디찬 냇물이 그 밑을 흐르고 있었다.


- 『소드 아트 온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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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나이가 그 기준이 되지만, 우리 삶의 어떤 부분을 가리켜 특히 그걸 꽃다운 시절이라든가 하는 식으로 표현하는 수가 있다. 그러나 세상 일이 항상 그렇듯, 꽃답다는 것은 한번 그늘지고 시들기 시작하면 그만큼 더 처참하고 황폐하기 마련이다.


- 『역시 내 청춘 러브코미디는 잘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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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한 점도 없는 이 여름 한낮에, 젖이, 흐흐, 젖이 시려 죽겠다야, 젖통이가 시려,"


벼락 맞고 죽은 나무로부터 반 마장쯤 저쪽엔 소나무도 여남은 그루 있어, 그런대로 그늘도 짙었는데도, 하필이면 벼락 맞고 죽은 나무를 지고 앉아 따님은, 큰 한 얼룩뱀의 애무가 발끝까지 아파서, 발가락을 꼼질꼼질 비틀어대며, 쥐난 것 모양으로 겨우 그렇게 신음했다.


-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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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폭은 이 며칠 동안 조금도 메워지지 못한 채 넓게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돌아가버린 화실은 조용해져 있었다. 나는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 『나는 친구가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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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코를 흘리고 다녔다. 콧물이 아니라 누렇고 차진 코여서 훌쩍거려도 잘 들어가지 않았다. 나만 아니라 그때 아이들은 다들 그랬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싸잡아서 코흘리개라고 부른 것만 봐도 알 수가 있다. 여북해야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 내 아이들에 대해 제일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감기가 들지 않고는 절대로 코를 안 흘린다는 것이었다. 우리 아이들뿐 아니라 딴 아이도 안 흘렸다. 그래서 학교나 유치원 갈 때 가슴에 손수건 매다는 습관까지 없어져 버렸다. 나도 이제는 요즘 아이들이 코를 안 흘리는 걸 이상해하는 대신 그땐 왜 그렇게 코를 흘렸는지를 이상하게 여기게 되었다.


-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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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일삼촌별세급하향.


나는 잠시 망연해졌다. 그러나 불현듯, 이제 고향 땅에 핏줄로서는 내 손윗사람이 한 명도 남지 않게 되었다는 엉뚱한 생각부터 먼저 들었다. 오래 고향을 지켜 온 삼촌마저 끝내 돌아가신 것이다. 별 애통한 느낌까지는 들지 않았으나 묵은 괴로움의 응어리가 삭아 없어지는 쓸쓸함이 목구멍을 채웠다. 한 줄기 시원한 소나기라도 맞은 것 같은 마음 개운함도 작용하고 있었다. 첫 느낌은 분명 그랬다.


-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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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상[李常]이 교정보고 있는 것은 예수의 전기(傳記) 원고다. Fulton Oursler의 The Greatest Story Ever Told를 Q목사의 번역으로 내게 되었는데, 그 번역 원고를 인쇄소로 넘기기 전에 한번 검토를 해보고 있는 것이다. 번역 원고라는 게 거개가 다 그렇듯이 이것도 엉망이다. 오역된 건 그만두고라도 어떻게 된 것인지 용어네 외래어 표기마저도 앞뒤가 통일이 되어 있지 않다. '하나님'과 '하느님', '가이사'와 '케사르'와 '시이저', '다메섹'과 '다마스커스', '다윗'과 '다비드', '시내산'과 '시나이산', '요단강'과 '요르단강', '메시야'와 '메시아'…….


- 『책벌레의 하극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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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것도 섭리라고 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상징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그럴지 모른다는 얘기다.


만일 사람의 눈에 뜨이는 길바닥에 떨어지게 된 참새 한 마리가 풀숲에 떨어지게 된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당신은 말할 것인가--"까짓것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겠소?"라고? 만일 참새 한 마리가 딴 곳에 떨어지는 문제가 아니고, 국왕의 목을 겨눈 자객의 칼날이 한 자 옆으로 비끼어 떨어지는 문제라면?


- 『86 -에이티 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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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솔이 부락으로 뚫어나간 긔내를 따라 개울녘 둔치에 들어선 미루나무 잎새들이 반짝거리고 볶이며 내뿜는 훈김에도, 파슬파슬하게 타들어 간 물길 옆의 갈밭에서는 빈 차 지나간 장길처럼 익은 흙이 일었다.


전부터 묵힐 땅은 있어도 놀릴 터는 없다던 동네를 놀미라고 일렀으니, 사람 곯리느라고 그새 소나기 한 죽만 있었더라도 봄것 거둔 터에 뒷그루로 푸성가리를 부쳐, 벌써 여러 뭇 솎아 가용푼이나 해 썼을 거였다. 그러나 못자리 버무리며 무살미하기 앞서, 그나마 날포를 못 넘기며 긋던 가랑비만 서너 물 한 뒤, 보리누름해서부터 입때껏 구름마저 드물었으니, 일 반찬 하게 열무라도 삐어본다고, 아무리 씨앗을 배게 부어도 푸서리 틈에 개똥참외 움나듯 씨 서는 게 드물어, 아예 한갓지게 버림치로 돌려 묵정이 만들고, 그 위에 호랑이 새끼쳐도 모르게 깃고 욱은 바랭이 개비름 따위나 베어다가 돼지 참 주는 집만 해도 여러 가구였다. 그럼에도 밭 놀리기를 남우세스러워하던 사람은 없었다. 버린 자리로 몰라라 했다가 칠석물이라도 비치면 그때 가서 갈아엎고 김장이나 갈리라고 미뤄두었던 것이다.


- 『늑대와 향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