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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의 '보르헤스' 가문 남자들에게는 아주 특이한 저주가 걸려 있었는데, 바로 시력이 악화되다 결국 눈이 멀어버리는 저주였다. 이 저주는 돌고 돌아 1956년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에게도 적중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보르헤스는 실명하기 1년 전에 국립도서관 관장에 임명된다.

80만 권이나 되는 책을 관리하면서도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못했던 것이다.


보르헤스는 자기 집안 남자들이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테니 나름 각오는 했을 것이다.

그래도 실명은 너무 큰 충격이었을까?

보르헤스는 이 시집과 동명의 시인 <작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아름다운 우주가 점점 그를 버렸다. 완고한 안개에 손

윤곽이 지워졌고, 밤하늘의 별이 사라졌고, 발밑에 있는 

대지가 불안정해졌다. 모든 것이 아스라해지고 뒤섞였다.

자신이 눈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는 비명을 질렀다.

(...)

그는 '이제 나는 신화의 공포로 가득한 하늘도, 세월에

변해 갈 이 얼굴도 보지 못하겠구나.' 하고 느꼈다.


실명에 대한 감정은 <축복의 시>에서 더 심화된다.


축복의 시 — 마리아 에스테르 바스케스에게

POEMA DE LOS DONES


누구도 눈물이나 비난쯤으로 깎아내리지 말기를.

책과 밤을 동시에 주신

신의 경이로운 아이러니, 그 오묘함에 대한

나의 허심탐회한 심경을.


신은 빛을 여읜 눈을

이 책 도시의 주인으로 만들었다.

여명마저 열정으로 굴복시키는 몰상식한 구절구절을

내 눈은 꿈속의 도서관에서 읽을 수 있을 뿐.


낮은 무한한 장서를 헛되이

눈에 선사하네.

알렉산드리아에서 소멸한 필사본들처럼

까다로운 책들을.


(그리스 신화에서) 샘물과 정원 사이에서

어느 왕이 굶주림과 갈증으로 죽어 갔네.

높고도 깊은 눈먼 도서관 구석구석을 

나는 정처 없이 해매네.


백과사전, 아틀라스, 동양과 서양,

세기, 왕조,

상징, 우주, 우주론을

벽들이 하릴없이 선사하네.


도서관에서 으레

낙원을 연상했던 내가,

천천히 나의 그림자에 싸여, 더듬거리는 지팡이로

텅 빈 어스름을 탐문하네.


우연이라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필시 이를 지배하리니.

또 다른 이가 희뿌연 오후에

이미 수많은 책과 어둠을 받았지.


느릿한 복도를 헤맬 때

막연하고 성스러운 공포로 나는, 

똑같은 나날, 똑같은 걸음걸음을 옮겼을

이미 죽고 없는 그라고 느낀다.


여럿인 나, 하나의 그림자인 나,

둘 중 누가 이 시를 쓰는 것일까?

저주가 같을진데

나를 부르는 이름이 무엇이 중요하랴?


그루삭이든 보르헤스든,

나는 이 정겨운 세상이

꿈과 망각을 닮아 모호하고 창백한 재로 

일그러져 꺼져 가는 것을 바라본다.


살면서 수많은 책들을 도서관에서 읽어 온 사람이, 정작 그 도서관의 주인이 되자 아무 책도 읽지 못하게 되다니!

<축복의 시>라는 제목부터 아이러니하다. しかし... しか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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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보르헤스가 누구인가? 여덟 살 땐 처음으로 단편소설을 쓰고, 아홉 살 땐 스페인어로 <행복한 왕자>를 번역해 잡지에 싣기까지 한 희대의 천재 아닌가?

실명 따윈 보르헤스의 문학을 막을 순 없다. 손이 없으면 발을 쓴다...눈이 없으면 입으로 쓴다...!


단어 몇 개를 구술하고, 이를 받아 적은 사람이 다시 읽어 주면 다시 수정한다...! 

듣기만 해도 비효율의 극치를 달리는 집필 방식이다. 이런 식으로 하다간 단편이나 에세이 하나 쓰려다 늙어 죽는 게 먼저일지 모른다.

어쩔 수 없이 보르헤스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다시 시인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그렇게 탄생한 시집 <작가>는 여러므로 재밌는 작품이었다. 보르헤스의 다른 작품을 읽으면 알겠지만, 호랑이 나오고 거울 나오고 반복 나오고 미로 나오고 돈키호테 같은 문학 나오고 망각 나오고 보르헤스 필수요소는 대부분 등장한다.

그런가 하면 이런 시도 있다.




<델리아 엘레나 산 마르코>

DELIA ELENA SAN MARCO 


우리는 온세 광장 모퉁이에서 헤어졌다. 

길 건너편 인도에서 나는 다시 당신을 쳐다보았다. 당신은 

이미 뒤돌아선 채였고 손을 흔들어 '아디오스'를 표했다. 

차량과 사람들의 강이 우리 사이를 흐르고 있었다. 

특별하지 않은 오후였고 시각은 다섯시였다. 그 강이 아무도 

두 번 건널 수 없는 슬픈 아케론강이었다는 것을 내 어찌 

알았으랴? 

그 뒤 우리는 보지 못했고, 당신은 일 년 후 죽었다. 

지금 그 기억을 더듬어 보고 응시해 보니, 그 기억이 

허위였다는 생각이 든다. 사소한 작별 뒤에 무한한 이별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젯밤 나는 저녁식사 후에 외출을 하지 않았다. 이런 

일들에 대해 이해해 보고자 나는 플라톤이 스승의 입으로 

말하게 한 마지막 가르침을 다시 읽었다. 육체가 죽으면 

영혼이 도망칠 수 있다는 글귀를 읽었다. 

지금 나는 모르겠다. 진실이 불길한 추후 해석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순진한 이별에 있는 것인지. 

영혼이 죽지 않는다면, 작별을 강조할 일도 없기 때문이다. 

'아디오스'라는 말은 헤어짐을 부정한다. 즉, '오늘 

우리는 헤어지는 유희를 벌이지만 내일 다시 만날 것이다'라는 

뜻이다. 인간은 자신이 우발적이고 덧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면서도 불멸의 존재이겠거니 생각하기 때문에

'아디오스'라는 말을 창안했다.

델리아, 언젠가 우리는 어느 강변에서인가 이 불확실한

대화를 다시 할 것이다. 그리고 자문할 것이다. 평원으로

사라지던 한 도시에서 우리가 보르헤스이고 델리아였는지.


환갑을 겨우 세 살 남겨둔 보르헤스는 여러므로 죽음이나 망각, 운명에 대해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


수많은 모래알의 쉼 없이 유려한 줄기가 

모든 것을 쓸어 가고 없애 버리네.

나도 구11원받지 못하리.

덧없는 시간의 우발적 산물이기에 — 모래시계


신은 대국자를, 대국자는 말을 조종하네.

신 뒤에 또 어떤 신이 숨어

티끌, 시간, 꿈, 임종의 드라마를 시작하는 걸까?


인간이 한낱 반영과 미망임을 깨닫도록

신은 꿈으로 수놓은 밤과

갖가지 거울을 창조하였네.

그래서 우리는 흠칫할 수밖에. — 체스



그러나 하나의 사물, 아니 무한한 숫자의 사물들이 한

인간이 죽을 때마다 함께 죽는 것이다. 신지학자들의

주장처럼 우주 자체가 기억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리스도를 보았던 마지막 눈이 눈을 감은 날이

있었다. 후닌 전투도 헬레네의 사랑도 한 인간의 죽음과

함께 죽었다. 내가 죽는 날에는 무엇이 나와 함께 죽을까?

세계는 어떤 애처로운 혹은 허약한 이미지를 잃게 될까?

마세도니오 페르난데스의 목소리, 세라노 길과 차르카스

거리가 만나는 공터의 암갈색 말 모습, 마호가니 책상 서랍

속의 유황 막대기를 잃을까? — 증인




플롯

LA TRAMA


친구들의 무자비한 비수 때문에 동상 발치로 몰린

카이사르는 여러 얼굴과 칼날 사이에서 피후견인이자 아들

같은 존재였던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의 얼굴을

발견하고 완벽한 경악을 느낀다. 카이사르는 방어하다 말고

외친다. "브루투스 너마저." 셰익스피어와 케베도가 연민을

자아내는 그 외침을 거둔다.

운명은 반복, 변주, 대칭을 좋아한다. 19세기의 세월이

흐른 후 부에노스아이레스주 남부에서 한 가우초가 여러

명의 가우초에게 공격을 받는다. 그는 쓰러지면서 자신의 

대자를 알아보고는 점잖은 질책과 느린 놀라움이 담긴

말투로 그에게 말한다.(이런 종류의 말은 읽지 말고 들어야

한다.) "하지만, 체!" 그는 자신이 동일 장면의 반복을 위해

죽게 되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죽는다.


이 시는 <셰익스피어의 기억>에도 나왔던 것 같다. 다시 읽어도 참 재미있는 발상이다. 내용 자체는 이미 나왔지만, 실명이라던지 죽음이라던지 이러한 요소를 알고 보면 지극히 개인적이게 느껴진다.

이 느낌마저 뭔가 보르헤스 작품의 내용 같다.




노란 장미

UNA ROSA AMARILLA


잠바티스타 마리노, 즉 명예의 전당(마리노에게

소중했던 이미지를 사용하자면)에 이미 오른 이들이

만장일치로 새로운 호메로스요 새로운 단테라고 선언한

그 저명인사가 죽음을 맞이한 때는 그날 오후도 다음

날 오후도 아니었다. 죽음이 임박했을 때 조용히 발생한

그 불변의 사건이야말로 그의 삶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천수와 영광을 한껏 누린 그는 널찍한 스페인산 장식 기둥

침대에서 죽어 가고 있었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서쪽으로 

난 평온한 발코니가, 그 아래로는 대리석, 월계수, 직사각형

연못에 투영되는 계단식 정원이 당연히 있었으리라. 한

여인이 포도주 잔에 노란 장미 한 송이를 꽂았다. 마리노는

불가피하게 시구를 읊는다. 솔직히 말하면 이제 자신에게도

다소 지겨운 행위이다.


정원의 자줏빛, 목장의 화려함,

봄의 싹, 4월의 눈[目]......


그때 깨달음을 얻었다. 아담이 낙원에서 장미를 볼 수 

있었듯이 미라노도 장미를 보았다. 그리고 느꼈다. 장미가

자신의 시 속이 아니라 장미 자신의 영원성 속에 있고, 우리

인간은 그 영원을 언급하거나 암시할 수는 있어도 표현할 

수는 없고, 방 한구석에서 황금빛 음영을 형성하고 있는 그

길쭉하고 도도한 물체가 (마리노 자신이 허영심에 사로잡혀

꿈꾸어 온 것처럼) 세계의 거울이 아니라 세계에 추가된 또

하나의 물건이라는 사실을.

마리노는 죽기 전날 이 깨달음에 이르렀다. 호메로스와

단테 역시 동일한 깨달음에 이르렀으리라.


시집 제목처럼 작가로서의 고뇌나 깨달음이 담긴 시도 있다. 보르헤스도 죽기 전에야 자기 삶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지 궁금했던 게 아닐까? 




문제 하나
UN PROBLEMA

톨레도에서 아랍어 글월이 적힌 종이 한 장이
발견되고, 고문서학자들이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낳은 시데 아메테 베넹헬리가 쓴 것이라고 선언한다고
상상해 보자. 그 글귀에는 영웅 돈키호테(모두가 알다시피
그는 칼과 창으로 무장하고 스페인을 떠돌아다니며 온갖
이유로 아무한테나 도전했다.)가 그가 임한 수많은 전투
중 하나에서 한 남자를 죽였다는 구절이 있다. 글월은 이
지점에서 잘린다. 문제를 하나 내겠다. 돈키호테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아맞히거나 추측해 보라.
내가 알기로는 세 가지 답이 가능하다. 첫 번째는
부정적인 성질의 답이다. 특별히 일어나는 일이 없다.
돈키호테의 환각적 세계에서는 죽음이 마법만큼이나
흔해서, 괴물 및 마법사들과 전투를 벌이거나 벌인다고
생각하는 그가 사람을 죽였다고 혼란에 빠질 일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연민이 담긴 답이다. 돈키호테는 자신이
공상적인 이야기들의 독자인 알론소 키하노의 투영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죽음을 접하고,
망상이 자신에게 카인의 죄를 범하게 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완고한 광기에서 깨어난다, 어쩌면 영원히.
세 번째 답이 아마도 가장 그럴듯할 것이다. 사람이 죽어도
돈키호테는 그 끔찍한 행위가 정신착란의 산물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리하여 결과 현실이 돈키호테로
하여금 이 사건을 빚어낸 원인 현실을 상정하게 만들 뿐,
그가 광기에서 벗어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스페인에서, 심지어 서양에서도 생소한 또 다른
추측이 남아 있는데, 이는 더 오래고, 더 복잡하고, 더
피곤한 영역의 것이다. 이제 돈키호테는 더 이상 돈키호테가
아니라 힌두스탄의 왕이다. 돈키호테는 적의 시신 앞에서
살육과 출생은 신 혹은 마법사의 행위이기 때문에 인간
조건을 훌쩍 초월하는 일이라고 직감한다. 그래서 죽은 자는
환영일 뿐이라는 것을 안다. 자기 손에 묵직하게 들려 있는
피 묻은 칼, 자기 자신, 자신의 모든 지난 삶, 온갖 종류의
신, 그리고 우주도 환영이듯이.

사실 읽으면서 제일 기억에 남은 시는 <문제 하나>였다. 뭔가 좀 섬뜩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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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하자면? 정말 재밌다. 보르헤스 테마파크나 다름 없다. 보르헤스 이 인간은 압축의 달인이다. 괜히 "단편으로 쓰면 될 거 뭐하러 장편으로 늘려 씀?"라고 말한 게 아니다.
내용은 짧은데 그 안에 들어있는 지식(?)은 너무 깊다. 보르헤스 그는 단편의 신인가?(체호프 안 읽어봄)

20세기 지성사에서 가장 박학다식한 작가, 아르헨티나의 자랑, 포모의 신, 호르헤 프란시스코 이시도로 루이스 보르헤스 선생님
은 안타깝게도 1986년에 노벨상 무관으로 사망하셨다. 안녕(V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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