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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의 <페스트>를 읽었다. 코로나 시대를 겪었던 사람으로서 유사한 점도 있었고 다른 부분도 존재했다. 치사율이나 감염경로 등에 차이가 있을지라도 그때나 지금이나 전염병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대응을 했을 테니 둘의 유사성이 딱히 특이한 일은 아닐 것이다.


페스트와 코로나가 보여준 세상이란 상당히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것이었다. 우리는 항상 그 인과를 찾으려 한다. 왜 우리는 이런 고통스러운 세상을 마주해야만 하는가? 전염병의 가장 무서운 점은 우리의 가치관과 전혀 다른 무차별적인 선별이라 볼 수 있겠다. 우리는 흔히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법치적인 사고 속에서 세상을 살아간다. 벌을 주는 것은 판사나 경찰, 부모 같은 사람일 수도 있지만 종교적인 가치일 수도 있겠다. 기독교에서는 흔히 선악을 나누고 악을 행하면 벌을 받는다고 교육하니까 말이다. 소돔과 고모라에서는 선한 자가 단 한 명도 없었기에 도시가 그대로 멸망하는 벌을 받는다. 작 중 파늘루 신부도 이를 신이 내린 벌이라고 연설한다. 그러나 오랑을 삼킨 페스트는 선악을 구별하지 않는다. 정의로운 사람도 죽었으며 심지어 아무 죄가 없는 어린아이조차 페스트에 걸려 고통스럽게 죽는다. 작 중 인물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왜 우리는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삶의 가치였던 종교가 흔들리고 붕괴하는 순간이다.


우리는 또다시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작 중 서술자이자 주인공인 리유는 우리는 성실성을 가지고 페스트와 싸워야 한다고 말하며 의사활동을 한다. 외지인 타루도 자원봉사에 가담한다. 코타르처럼 페스트를 이용하여 밀수로 돈을 버는 사람도 존재한다. 이렇듯 모두가 공유하던 가치인 선악이 희미해진 오랑이라는 공간에서 저마다 별개의 가치를 찾고 행동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던가? 사회가 정해준 가치대로 살아가던 우리에게 페스트는 자신만의 가치를 찾고 시험하는 큰 무대를 제공한다.


페스트라는 전염병은 사람들을 갈라놓게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가 되기 때문에 접촉을 피하려 하고 사람들은 저마다 고립되기에 이른다. 이 소설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부분인 사람들이 고립될수록 사람들은 뭉치려 한다는 것이다. 그저 세상을 살아가고 페스트를 이겨내기 위해서 말이다. 오통 판사도 아이를 잃고 자원봉사대에 합류했고 무시받던 말단 공무원 그랑도 합류한다. 누구보다 이 도시에서 탈출하고 싶어 했던 랑베르는 혼자만 행복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도시에 남아서 함께 싸우려 다짐한다. 페스트는 신이 내린 형벌이라던 파늘루 신부조차 자원봉사대에 합류한다. 물론 혼란에 빠져 집에 불을 지르고 페스트를 이용하여 돈을 버는 사람도 존재한다. 그렇지만 주목해야 하는 것은 남을 돕기 위해 자원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신도 영웅도 가치도 존재하지 않는 혼란의 세상에서 보인 딱 한줄기의 희망. 그것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어떤 연대의식이나 사랑에 가깝다.


현대에 와서는 사람들을 한데 묶는 공통된 가치를 찾는 것이 예전에 비해 쉽지 않다. 요즘은 나쁜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본인이 천벌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는 어쩌면 이미 페스트의 시대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공통 가치가 전복된 페스트의 시대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카뮈는 <페스트>에서 예리하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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