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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다보면 누구나 사건적인 예술을 접하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 사건은 우리들 사이를 지나쳐가거나, 우리가 사건을 배반하거나, 잊혀진다.
그리고 곧바로 다른 책으로 이동한다. 새로운 정보들. 우리는 '사건'적인 책에 감동한뒤 그 '사건'을 배반한채 다시 다른 책으로, 다른 정보로 이동한다.
그리고 그것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사건이랑 아직 도달하지 않았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배반된 사건들, 또는 아직 도래하지도 않았던 사건들.
하지만 어떤 사건은 너무나 강렬하여 도저히 과거로 돌아가게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도 있다. 우리를 휘어잡고 도저히 놓아주지 않는 책.
파울 첼란의 격정적인 시 한 구절을 제목으로 가져온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은 바로 그러한 책이였다.
세계는 지금 끝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가난. 자학과 염세. 누구도 읽지 않는 것 같은 철학과 문학. 실패한 혁명들. 유나바머. 파이트클럽. 고진의 문학의 종말...
하지만 니체는 말했다. 이 기원을 파괴하더라도 거기에 남은건 희망의 미래가 아니라 황야라는 것을. 마치 청소를 잘하면 공부를 잘하게 된다랑 비슷한 사고이다.
너무나 많은 인문학적 담론이 이 종말과 파괴에 낭비되었고, 파괴적 향략에 빠져들었다.
이 책의 저자는 혁명은 결국 읽고 쓰는 것이 혁명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폭력이 아니라, 파괴가 아니라, 결국 우리가 해야할 일은 치열하게 읽고 쓰는것이라는 것을
음악은 7만년, 춤은 3만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불구하고 문자는 5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문자는 아직 젊은 매체이다. 그래서 아직 우리는 글을 다루는데익숙하지 않은건 아닐까?
현대의 모든 세련되 보이는 냉소와 의심들, 회의와 패배주의는 사실 게으름의 소산임을. 파괴의 충동은 사실 자살의 충동과 일치한다는 것을. 문학이 끝났음을 선언하는 것은
단순히 인내와 끈기의 부족임을. 현대의 모든 자기파괴와 비겁함이 우리를 책에서 멀어지게 한 것임을.
이 책은 이 모든 근거없는 패시미즘과 결별하게 해주었다. 미래 세대를 위한 고대 그리스의 책은 단 0.1%만 남아있다. 그리고 그 0.1%는 승리했다. 도스토옙스키는 문맹률이 90%인 러시아에서 책을 썼고 그 책들은 살아남았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40부를 찍어 고작 7부만이 팔렸을 뿐이다.
특히 저자가 분노하는 부분은 문학의 끝, 철학의 끝, 역사의 끝, 세계의 끝 이런 담론들이다. 철학은, 문학은 끝나지 않는다. 특히 고진의 문학은 정치성과 관계가 없다는
근대문학의 종언에 대한 비판이다. 혁명은 문학 그 자체이다. 세계를 뒤바꾼 혁명 뒤에는 언제나 위대한 책들이 남았다. 루터의 종교 개혁 뒤에 신약이 남았고 러시아 혁명 뒤에 맑스가 남았고, 68혁명뒤에 마르쿠제가 남았다. 결국 폭탄같은 책은 언젠가 터지게 되있다. 결국 책의 약빨이 다 되었다고 냉소할게 아니라 폭탄같은 책을 읽고 쓰는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희망을 잃지 말기를.
이 책 좋아서 공부하기 싫고 나태해질 때쯤 한번 씩 다시 들춰보게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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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난이도 쉬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