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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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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핀천은 일전에 <제49호 품목의 경매>를 읽어본 것이 다다. 그러나 그를 읽으면서 거대한 음모론을 파헤치는 듯한 느낌,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정보의 파도 속에서 허덕이는 듯한 느낌이 매력적이었는데, <V.> 역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V.>의 줄거리를 명료하게 정리한다는 것은 어렵지만, 간단하게만 정리해 보자면, <V.>의 주인공은 두 명이라 할 수 있다. 하나는 슐레밀(일이 잘 꼬이는 불운한 사람)이자 인간 요요인 제대 군인 ‘베니 프로페인’이며, 하나는 아버지(시드니 스텐슬)의 일기에 적힌 의문의 존재 ‘V.’를 추적하는 ‘허버트 스텐슬’이다. 이 둘의 이야기는 V라는 글자의 모양처럼, 시작은 별도로 진행되지만, 이야기가 정점에 다다르며 서로 만나게 된다.

<V.>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다루는 시공간의 범위가 정말 광대하다는 점이다. 1898년부터 1956년까지 약 반세기의 사건이 비선형적으로 작품에 배치되어 있으며, 공간적으로는 미국을 비롯해 유럽부터 아프리카까지 종횡무진한다. 다만 작품의 주인공들이 활동하는 시기는 1955년 크리스마스이브~1956년에 해당하는 시기이고, 그 이전의 시간대는 스텐슬의 아버지인 시드니와 과거의 일화들에 관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둘이 활동하는 시기는 실질적으로 얼마 되지 않는다. 물론, 그사이의 구분이 엄격하지는 않으므로, 읽으면서 헷갈리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 중에서 특히 중요한 장소는 몰타이다. 몰타는 스텐슬의 아버지가 죽은 곳이자, V.의 마지막 행적(V.를 사람이라 본다면)과 연관된 섬이며, 둘의 이야기가 만나는 접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것의 마무리이자, 새로운 시작이 되는 장소이다.

그리고 이 넓은 시공간 속에서, 다양한 사람이 등장하고, 무수한 사건이 발생한다. ‘모든 병든 족속들’의 일화, 코를 ‘이상적인’ 형태로 성형하는 여성, 뉴욕 하수도에서의 악어 사냥, 하수도의 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신부, 다중인격자, 식민지에서의 학살, 전쟁 속 폭격과 참상 등등. 이러한 일들이 제각각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에 담긴 정보는 계속 새롭게 주어지며, 정보의 과잉으로 독자를 어지럽게 만든다.

<V.>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정체를 알 수 없는 V.일 것이다. V.는 사람일 수도, 장소일 수도, 관념일 수도, 무생물일 수도, 우리가 알 수 없는 그 무엇일 수도 있으나, 명확한 정체는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V.에 관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얘기해 보고자 한다.

“V.의 배후와 내부에는 우리 중 누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비밀이 숨어 있다. 그것은 ‘누구’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올바를 것이다.”(83p)

<V.>의 등장인물은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의미를 상실하고 방황하며, 중심을 잃은 채 해체된 인간들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주인공인 베니 프로페인과 허버트 스텐슬은 물론, 뉴욕에서 생활하는 ‘모든 병든 족속들’, 파우스토 마이스트랄, V.(사람으로 볼 경우)에 이르기까지 모두 해체된 인간들이며, 어쩌면 인간이 아닌 그 ‘무엇’일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해체를 가장 잘 보여주는 문장이 다음의 문장이다. ‘절대’라는 것은 없고, 단일한 것도 없다.

“이제 와서는 기억은 배신자와 같다. 그것은 계속해서 미끄러져가면서 형체를 바꾼다. 슬프게도 말이란, 아무 의미 없는 현상일 뿐이며, 정체성이라는 것이 단 하나라는, 그리고 영혼이라는 것이 항구적이라는 잘못된 가정 위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다. 한 인간은 자기 기억을 진실인 것처럼 내세울 아무런 권리도 없다.”(490~491p)

먼저 베니를 보자. 그는 제대한 군인이다. 하지만 슐레밀이자 인간 요요인 그는 방황하며 술집을 전전한다. 그렇게 목표 없이 방황하며 떠돌던 베니는 레이철을 따라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의 ‘모든 병든 족속들’을 만나러 가게 되고, 뉴욕에서 일자리를 얻게 된다. 하지만 그 일자리라는 것은 하수도의 악어를 사냥하는 것이다. 이 괴리감 있는, 의아한 설정이 보여주듯, 베니는 현실에서의 삶과는 떨어져 있다.

내게 <V.>에서 가장 재밌던 장면이 바로 이 부분이다. “뉴욕 하수도에는 버려진 애완 악어가 살고 있다”는 음모론이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말하더니, 당연하게도 사냥 팀을 조직적으로 꾸려서 악어를 사냥하러 다닌다. 이처럼 정말 ‘뻔뻔한 거짓말’의 극치를 볼 수 있는 작품은 드물며,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소설가에게 있어 최고의 탁월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 거짓말 속에는, 역설적으로 보기 싫은 진실이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 <V.> 역시 그렇다.

본래 악어란 하수도에 있어서는 안 되는 동물이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과 변덕에 의해서, 맹수인 악어는 애완동물이 되어 도시로 오고, 또 버려진 것이다. 버려진 악어들은 도시의 오물이 모이는 하수도에서 살아간다. 하수도는 문명의 요람인 도시 바로 밑에 존재하는 것으로, 감추기에 급급한, 그러나 뉴욕의 하수도처럼 거대한 인간의 야만성과 이기적인 추태를 보여주는 동물이라 할 수 있겠다.

“뜯어내는 자와 뜯기는 자. 아마도 이 착취적인 인간관계야말로 이 섬 도시의 기반을 이루는 근본 원리인지도 몰랐다. 도시의 밑바닥, 즉 하수도 바닥에서부터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의 안테나 끝까지 모두 이 원리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지도 몰랐다.”(78p)

이때, 악어를 사냥하는 인간 요요 프로페인은 그저 악어 사냥을 반복할 뿐이다. ‘요요’가 아무 의미 없이 풀리고 감기기를 반복하듯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거친 1950년대 사람들의 상실된 의지와 무의미한 삶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네가 모든 이름 없는 방랑자, 광장의 거주자를 볼 때 사랑을 느끼는 것은 그들 속에 네가 발견하는 대공황의 아이, 유산되지 않은 덩어리, 1932년 후버빌의 한 판잣집 마룻바닥에서 의식으로 화한 그 프로페인이기 때문인 것처럼 말이지.”(578p)

“넌 슐레밀이 아니야. 넌 특별한 누구도 아니라고. 사실은 누구나 일종의 슐레밀이지. 네 그 소라 껍질에서 나와 보면 알 수 있을 거야.”(620p)

이처럼 베니가 자아의 해체로 인한 의미의 상실과 방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해체된 인간이 인간성을 지키고자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은 스텐슬이다. 스텐슬은 아버지의 일기에 적힌 의문의 존재, V.를 추적해 나가고, 오직 그것에만 몰두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스텐슬이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인데, 그는 스스로를 3인칭, 즉 ‘스텐슬’이라고 지칭한다. 왜 스텐슬은 자신을 ‘나’라고 부르지 않는가? 그것은 이 세계에서 ‘나’라는 개념이 더 이상 존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 속에서 하나의 인간으로서의 ‘나’는 해체되었다. 이제는 ‘나’가 아니라, V.를 쫓는 인간으로서의 ‘스텐슬’만이 존재하게 된 것이다.

즉,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그 여파로 인한 자아의 해체, 그러나 그를 거부하기 위해 만들어낸 허구의 페르소나가 3인칭으로서의 ‘스텐슬’인 것이다. V.를 향한 추적이 끝나면 ‘스텐슬’도 사라질 것이고, 그 결과 분열된 정체성은 아예 상실해 버릴 지경에 놓이게 될 것이다. 따라서 스텐슬은 비록 그것이 허구일지라도, V.를 추적함으로써, 분열되어 버린 정체성, 일말의 인간성이라도 보존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마저 없다면, 삶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어쩌면 우리가 하는 짓은 전부 흉내뿐일지도 몰라. 우리가 애써 만들어 낼 수 있는 유일한 인간 조건이라는 게 가짜 자유와 가짜 위엄밖에 없는 것 같다고. 하지만 그럴 수는 없지. 만약 그렇다면 내 삶이란…….”(337p)

둘은 서로 조금 다른 결말을 향한다. 둘은 최종적으로 몰타에서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베니는 스텐슬의 집요한 V.를 향한 추적에 관해서는 이해하지 못한다. 어쩌면 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후 베니는 만난 지 하루밖에 안 된 브렌다의 손을 잡고 몰타의 밤거리를 달려 나간다. 핀천은 이들이 오직 ‘타성’ 때문에 달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베니는 의미를 상실하고 끝없이 방황하는 삶의 지속을 선택한 것이다.

반면, 스텐슬은 V.를 추적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자신이 찾던 V.라고 생각되는 것(또는 무언가)이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정황에도. 왜냐하면 앞서 말했듯, V.를 추적하는 것은 이제 생존의 문제이며, 그것을 그만두는 순간, 더 이상 ‘스텐슬’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베니는 자아의 해체 이후, 의미를 상실한 삶을 받아들이고, 그저 살아갈 뿐인 선택을 했다. 반면, 스텐슬은 분열된 자아의 해체를 거부하고, 허구를 만들어서라도 어떻게든 의미를 부여해, 일말의 정체성이라도 보존하는 선택을 했다. 둘의 선택에 가치판단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해체된 포스트모던의 사회에서, 정답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니까.

이외에도 ‘모든 병든 족속들’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병들었다. 파우스토 마이스트랄은 역사 속에서 여러 사건을 접함에 따라,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여러 인격을 가지게 되었다. 이들 모두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자신을 상실해 버린 이들이다.

V.(다시 말하지만, 인물이라 단정할 수 없는 것임에도, 인물로서 한정해 보자면)는 그 극한에 다다른 인물이다. 그녀는 때로는 빅토리아 렌으로, 때로는 베로니카 메로빙으로, 때로는 ‘나쁜 사제’로 등장한다. 그러나 점차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는 해체되어 가고, 끝내는 사람이 아니라, 무생물이 되어 가는 모습을 보인다. 폭격의 잔해에서 발견된 ‘나쁜 사제’의 모습은 의족, 의안 등으로 이루어져, 이미 사람이 아닌, 일종의 기계라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이런 면에서 V.는 의미를 상실하다 못해, 끝내 인간성까지 상실한 자의 말로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앞서 역사를 여러 번 얘기했는데, <V.>에서 역사는 아예 대놓고 언급되는 주제이기도 하다. 핀천이 그리는 1950년대의 사회는 역사적 과정(특히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친 결과, 사람들은 더 이상 단일하고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해체되기에 이른다. 역사 앞에서 인간은 매우 무력하다.

“인간 개개인은 자기 멋대로 원하는 짓들을 하지만 역사의 사슬은 계속되고 있어요. 나같이 미약한 역사적 요인은 그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 대해서 아무런 힘도 쓰질 못해요.”(73p)

역사적 사건들은 소설의 전개와 겹치기도 하며,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역사를 정의하기까지도 한다.

“’역사란’, 드누비에트나는 적고 있다. ‘의붓 기능(원문은 계단 함수, step-function)이다.’”(532p)

계단 함수는 일정한 값이 유지되다가, 한순간에 다른 값으로 바뀐 채 유지되는, 불연속 함수를 일컫는다. 이는 곧 역사가 연속적인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함의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역사란 ‘무의미하게 지속되는 삶’과 그것을 ‘단박에 바꾸어 버리는 사건(즉, 기존 삶의 전복)’의 도래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시각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파우스토의 인격 분열도, V.의 변화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역사적 사건들로 인해 발생한다. 하지만 사건이 언제 일어날지는 누구도 알 수 없고, 그때까지 그저 무의미하게 삶이 계속될 뿐이다. 그 역사적 진행의 끝은 정황이 암시하듯, 질서의 해체입니다. 즉, 한때 물리학을 전공했던 핀천답게, 역사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과정인 것이다. 무의미하고, 무생물만이 존재하는 것이 역사의 끝이 된다. 그런 세상은 급속도로 늙어간다고, 또는 병들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거든. 그건 내가 지금 여든 살 가깝게 되니까 전쟁 때문에 세상이 나보다 더 늙어 버렸다는 사실이야. 자꾸만 새로 깨닫게 되는군. 오늘날 세상은 진공 속에 사는 젊은이들에게 얼굴을 찡그린 채로, 사명감을 가지고 쓸 만한 인물이 되고 착취당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398p)

“하지만, 그렇다면, 만약에 말이죠. 만약에 시드니 스텐슬이 변한 것이 아니라 1859년과 1919년 사이의 어느 시점에서인가 세계가 병에 걸린 거라면? 그 병은 너무도 증후가 미약한 것, 즉 역사의 사건과 쉽게 혼합되어 버리는 것이 되어서 아무도 애써 진단까지 내리려 하질 않았던 것일 수 있단 말이죠.”(743p)

스텐슬의 집요한 추적은 이러한 혼돈에서 질서를 만들어 내려는 인간의 시도이고, 그것이 역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두 가지 갈림길에 봉착하게 된다. 엔트로피의 증가에 순응할 것인가, 아니면 스텐슬처럼 부정함으로써 억지로라도 삶의 의미를 찾아내고자 애쓸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제3의 길을 찾아 나설 것인가?

<V.>에서 ‘역사’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사랑’이다. 아예 14장은 제목부터 ‘V.는 사랑을 하다’이다. 또한 아버지와 자식의 사랑(특히 시드니의 경우)은 뜬금 없게도 마음을 울리는 부분이 있다. V.라는 인물(인물로 한정해서 생각하자면)의 전환점 역시 사랑과 그 사랑의 비극적 결말로 인한 것이다.

1913년, V.(베로니카 메로빙?)는 파리에서 무용수 멜라니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멜라니는 비극적인 최후(어떻게 본다면 전위적인 예술로서의 선택)를 맞이하고, V.는 점차 무생물이 되어 간다.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는 세상, 사랑이 자라나기 어려운 세상. 차라리 사랑을 아예 알지 못했더라면, 무감각하게 넘기고 말 것을, 사랑을 알아버린 이상, 그녀는 가만있을 수 없다.

그 결과는 V.가 ‘나쁜 신부’가 되는 것으로 발현된다. 그는 의안, 의족 등으로 자기 신체를 거의 완전히 기계로 대체해 버린 존재이다. 사랑의 비극을 겪은 그는, 무생물과 다름없는 상태가 된 채, 여자들에게 결혼도 하지 말고, 아이도 낳지 말라는 충고를 하고 다닌다. 즉, 죽음과 무생물화의 선도자가 된 것이다. 이는 어쩌면 자신이 겪은 아픔을 다른 사람은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온 행동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핀천은 ‘이 세상은 사랑이란 이루어질 수 없고, 정체성은 조각조각 나서,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라는 비관적 결론을 내린 것인가? 실제로 작중에서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기는 어렵다. V.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프로페인이나 스텐슬이 보여주는 태도 역시, 진정한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 사랑의 무생물화, 무의미화가 적나라하게 비춰집니다. 사랑도 해체되는 시대고, 남아 있는 사랑이란 물건 같은 것이다.

“등만 돌리면 인간이 인간의 원수가 되는 이 시대는 대체 어떻게 돼먹은 시대란 말이오?”(259p)

“’페티시’라는 게 뭔 줄 알아요? 그건 쾌감을 주는 여자의 한 부분 같은 것, 구두 한 짝, 로켓(*주석: 목걸이), 양말대님, 이런 거지. 당신도 그런 것과 같아. 진짜 사람이 아니고 쾌감을 주는 물건과 같단 말이지.”(653p)

하지만 여전히 사랑으로 인한 해결의 가능성은 존재한다. 아니, 우리는 믿어야만 한다. <V.>에서도 사랑이 부정적인 결과로만 이어지지는 않는다. 물론 그러한 경우, 사랑은 매우 부분적이고, 또 파편적이기에, 아주 미미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사랑을 믿는 순간만큼은 잠깐의 위안을 받고, 살아있음을 느끼며, 인간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이 무의미하고 무질서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제3의 길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의 논의와는 별개로, <V.>는 현대 사회를 예측한 듯한 통찰도 보여준다.

“우익은 과거라는 온실 속에서 밀봉된 가운데 그들의 삶을 살고 일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밖에서는 좌익이 폭도들의 폭력을 조종함으로써 자기들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미래의 몽상화 속에서밖에 살지를 못한다.
정말 현재는 어떻게 되었을까? 정치를 모르는 인간들, 한때는 존중받던 그 중용의 정신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것은 이미 퇴화되어 버리고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진 않다 하더라도 이미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런 극단적인 진영들이 지배하는 서방 세계에서 우리는 적어도 몇 년 이내에 고도로 ‘소외된’ 인간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755p)

핀천이 말하는 우익과 좌익의 무의미한 다툼, 중용의 상실, 고도로 ‘소외된’ 인간들은 오늘날에 너무도 흔한 현상이 아닌가?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논의를 정리하고자 한다. 책에 실린 해설의 표현을 빌리자면, 결국 해체된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지점은 ‘도피로부터 퇴각’하는 것이며, 그 방법은 다소 환상에 기대는 면모가 있더라도, ‘사랑’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결론지을 수 있겠다.

‘인간’은 존재할 수 있는가? 전쟁이 휩쓸고, 허무로 가득 찬 현대 사회에서 ‘의미’라는 것을 찾을 수 있는가? 아니 애초에 존재하는가? 결국 <V.>는 이에 관한 고뇌를 보여주는 소설인 것이다.

나름대로 느낀 점을 적고, 작품을 깊이 생각해 본다는 것이, 오히려 <V.>라는 작품의 가치와 매력을 떨어뜨려 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잘못 해석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일개 미흡한 독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부족한 글이지만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