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멸망의 날은 어떻게 찾아올까? 공룡들을 멸망시켰다는 운석의 재림일까? 아니면 핵전쟁으로 인한 멸망? 혹은 현재로써 가장 가능성 높아 보이는 기후재앙으로 인한 멸망? 여러가지 시나리오가 나올 수 있지만, 보통 SF적인 인류 멸망 시나리오는 적대적인 외계 지성체와의 조우에서 패배하는 상황 정도일 것이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그 시나리오를 조금 비틀었다. 외계 생명체와의 조우지만, 근본적으로 에너지문제로 인한 멸망이다.

퍽 참신한 주제 선정이지만,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재미의 중요한 요소는 그 주제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디테일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주된 재미는 주인공 행동의 묘사와, 능숙한 장면 교체, 익숙한 장면들의 오버랩에서 나온다.

SF에 대한 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하드 SF라고 불리는 그렉 이건의 <쿼런틴>과 비교해 보았을 때 오히려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더 하드 SF적이라고 느꼈다. 일단 주인공이 혼수상태에서 벗어나 현재 상황을 파악하고 행동을 정하는 데 이용하는 이성과 과학적 추론의 묘사를 ─ 이를테면 우주선 밖의 항성을 관측하고 흑점의 운동속도를 계산하여 자신은 태양계가 아닌 다른 항성계에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는 점 ─ 보면 숫자가 나오니깐 훨씬 더 SF적이라고 느껴진다. 그 외에도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진행하며 여러 과학자들이 대는 이론적 근거만 봐도 그럴듯 해 보여서 SF 독자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주기 충분하다. 즉 충분히 SF적임을 잘 보여주는 묘사에 성공했다는 의미다.

이 작품의 가장 뛰어난 점을 꼽자면 바로 외계 지성체와의 조우에 대한 묘사라고 할 수 있다. 이 부분은 정말 압권이라서 눈시울이 뜨거워 지고 콧잔등이 촉촉해질 정도였다. 외계 지성체와의 조우를 다룬 <유년기의 끝>이나 <라마와의 랑데부>를 비교해보자면, <유년기의 끝>은 외계 지성체가 너무 인간적이다. 외계인 거죽 뒤집어 쓴 사람이라고 할까? 물론 최초의 조우를 그린 소설은 아니어서 비교의 차원이 좀 다르다고 할 수 있겠지만, 처음부터 말도 통하고, 딱히 외계 문명을 잘 묘사하지도 않는 점에서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첫 조우와 비교하기에는 좀 부끄러운 수준이다.

<라마와의 랑데부>는 훨씬 낫지만, 말이 통하는 지성체를 찾았다기 보다도 지성체의 흔적을 찾았다는 점에서 역시 <프로젝트 헤일메리>와 비교할 바는 못된다. 라마 내부 묘사는 정말 압권이어서 독자가 직접 탐험하는 느낌이 들고, 마침내 바닥에 도달했을 때 대체 뭐가 있을까 궁금해서 정말 집중해서 읽었던 기억이 있지만, 아무래도 헤일메리호가 블롭A를 발견했을 때의 당혹감, 긴장감, 기대감과 비교하면 좀 뒤떨어지지 않나 싶다.

헤일메리호가 블롭A와 조우하고 랑데부에 성공하여 마침내 주인공과 록키가 대면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단순히 한두 페이지만에 소통에 성공하고 공동 목표인 자기 종족의 구1원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순수한 과학자적 호기심에 경도되어 서로에 대한 탐구를 지속한다. 물론 그게 실제 작중 시간으로는 길지는 않지만, 책에서는 거의 2~3챕터를 할애해서 묘사를 하는데, 위어는 인간종과 에이드리언이 서로를 이해하는데 일어 날만한 시행착오를 묘사하는데 거의 완벽하게 성공한다.

그리고 이쯤에서 서사 이야기를 안할 수 없다. 아무리 맛있는 소고기도 계속 먹다보면 물리는 법이다. 더 많은 소고기를 먹으며 즐기기 위해서는 맛의 변주가 필요한데, 위어는 이걸 혼수상태의 주인공이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회복하는 장면과 우주선에서의 생활하는 장면을 교차로 보여주며 노련하게 성공시킨다.

회상장면도 단순한 완급조절을 위한 장면이 아니라 그 나름의 재미가 있다. 이 장면들의 재미는 내게는 다소 익숙한 재민데, 어떤 종류의 재미와 비슷하냐고 하면 일본 만화나 라이트 노벨의 재미와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다. 둠스데이를 앞둔 인류는 스트라트라는 여성에게 ─ 이 여성이라는 점이 또 중요하다! ─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어준다. 스트라트는 다짜고짜 중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던 주인공 라일랜드를 다짜고짜 불러내서 현재 인류가 처한 상황을 밝히는데, 꽤나 일본 만화에서 많이 보던 내용같지 않은가. 동급생 여자애가 불러내서 우리는 우리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 괴물과 맞서야 해!하는 이야기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만나는 저항들을 스트라트가 부수는 장면들은 답답한 전개를 예상하던 독자에게 시원한 쾌감을 줄 뿐만 아니라, 예상되는 저항을 제기하는 라일랜드와 태연하게 헛소리 ─ 평시라면 말이다 ─ 를 하며 라일랜드의 말을 일축하는 스트라트, 그리고 그런 스트라트를 망연하게 쳐다보는 라일랜드를 보고 있노라면 전형적인 보케-츳코미 형태의 콩트가 생각난다. 전개상의 시원함은 라이트 노벨 혹은 웹소설의 그것과 상당히 유사한 것 같다.

여기에 개인적으로 재미를 느끼는 요소까지 더해졌다. 주인공의 행동 동기에 진부한 사랑이나 가족애같은 요소가 없다는 점이다. 그 덕분에 책의 내용이 굉장히 산뜻하게 다가왔다. 물론 아이들을 생각한다는 묘사가 군대군대 나오지만, 사실 주인공의 동기는 굉장히 개인적이다. 과학자로서 인정을 받고싶다는 욕구나, 과학자로서의 호기심, 생존욕구 등 개인적 이유가 주된 동기로 작용하고, 아이들이나 인류애 같은 보편적 이유는 보통 주인공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하려고 할 때 끌고오는 명분정도에 불과하게 묘사된다. 바로 이점 때문에 더 몰입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눈앞에 귀여운 5각형 포켓몬이 있는데 어떻게 의사소통을 시도를 안할 수 있겠는가? 인류고 뭐고 일단 의사소통이 먼저 아니겠는가. 우정은 뭔데! 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사랑보다 전우애가 앞서는 게 정상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해두겠다.

위어는 너무 깊지도 그렇다고 너무 얕지도 않는 과학적 서술과 최초의 외계 지성체와의 조우를 아주 높은 해상도로 써내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풍광 묘사보다도 주인공 내면의 심리서술에 더 집중하여 독자로 하여금 충분히 몰입되게 만들었다. 게다가 적절한 완급조절과 함께 익숙한 재미들을 적절히 배치해 놓아서 630페이지짜리 끝없는 엔터테인먼트를 만드는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