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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안 도노소 코르테스는 스페인의 정치인이자 정치철학자로, 칼 슈미트의 『정치신학』에서 제시된 결단주의에 큰 영향을 주었다(슈미트는 『노동자:지배와 형상』으로 유명한 에른스트 윙거에게 보낸 한 편지에서 이 연설을 역사상 최고의 연설로 뽑기도 했다.) 슈미트를 언급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그는 가톨릭 반동주의자였고 반자유주의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명백히 종교적 질서와 정치 문제를 연결시키는 지점을 보여 '정치신학'의 선구자로 취급되기도 한다. 코르테스는 권위의 원천을 신에게서 찾았으며, 가톨릭 교회와 군주제를 통해 그것이 전달된다고 보았다. 그런 점에서 그는 근대적 보수주의의 기원인 에드먼드 버크보다는, 반동적 보수주의를 대표하는 조제프 드 메스트르와 같은 사상가들의 철학을 이어받은 셈이다(특히 혁명이나 개혁에 대해 비판하는 방식이 일치한다. 두 사람은 모두 극단적인 사례들을 통한 과잉 일반화와 이를 바탕으로 한 거짓 딜레마를 제기하는 방식에 기대고 있다. 또한 그들의 이유나 근거들은 정합적이기보다 인간이나 정황에 대한 오류—그러니까 주로 ~에 호소하는 오류—에 의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반동주의 계열은 시대를 막론하고 상기한 방식들을 공유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이 둘 간의 관계에서도 같다.) 이 연설은 프랑스의 1848년 혁명을 배경으로 그가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것이다. 슈미트가 참고했다는 결단주의적 관점이 매우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연설을 읽은 뒤 슈미트에 대해 다시 숙고해보니, 그가 코르테스의 논증에서 드러나는 약점들을 크게 개선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슈미트는 코르테스의 결단적 직관(신학적, 수사학적인 요소)들을 법철학적인 측면(주권, 예외상태, 결정, 정치적인 것 등)에서 재해석 및 형식화 한 것으로 보인다. 『정치신학』의 결단주의는 확실히 『독재에 관하여』의 결단주의보다는 탄탄한 구조를 보인다. 또한 하나 더 느낀 것이 있다. 보수혁명 자체는 국내에도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보수혁명의 사상이 다시 어디서 기원했는지까지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코르테스 이외에도 슈미트, 윙거, 슈펭글러 등 유명한 보수혁명 계열 철학자들이 주로 참고했던 학자들이 발굴되면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은 그들 자신보다도 더 유명한 니체, 헤르더 등을 제외하면 딱히 생각나는 부류가 없지 않은가.
각1설하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그의 연설에 대해 논해보고자 한다. 물론 정치적 연설이므로(그리고 영역본으로 보면서도 문학성을 있는 그대로 느낄 정도로 나의 영어 실력이 훌륭하지도 않으므로), 문학적인 효과보다는 정치철학의 영역에서 논할 예정이다.
그는 이 연설을 통해 마누엘 코르티나에게 반박하고자 했는데, 바로 그 부분에서 그의 결단주의가 도출된다. 마누엘 코르티나는 진보당 소속의 자유주의 정치인이었고, 당시의 보수파 정권이 혁명에 대응해 합법적이지 않은 '비상 권력'을 사용한 행태를 비판한 바가 있다(슈미트의 시대에도 없었던 '예외상태'에 대한 구체적 법률이 이 당시에 있었을 리가 만무하다.—물론 지금은 슈미트의 지적에서 영향을 받아 대부분의 국가가 예외상태에 대한 법률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논란의 여지가 과거보다는 적을 수 밖에 없다.—그렇기 때문에 비상 권력의 사용은 당시로서는 분명히 합법적이지 않은 일이었다.) 요컨대 코르티나는 매우 근대 법치주의에 부합하는 정치철학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리고 코르테스는 이에 맞서 비상 권력의 작동을 옹호하고, 자유주의와 근대 법치주의에 대한 비판을 늘어놓고자 하는 것이다. 『독재에 관하여』를 둘러싼 배경에 관해 개략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위와 같다.
상기한 코르티나는 국가의 모든 통치 행위가 합법성에 기반해야만 한다고 말했다(이는 근대 법치주의의 기본 가정이기에, 이 논쟁을 법치주의 vs 덕치주의의 구조로 만드는 데에 중점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코르테스에 의하면 법의 목적성을 생각했을 때, 이는 터무니 없는 생각이다. 그는 법이 사회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기에 법이 충분하지 않다면 사회의 관점에서는 독재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역설한다(그러나 후술하겠지만, 그는 여기서 이런 미끄러운 경사면 식으로 출발함으로써 거짓 딜레마의 오류를 범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는 이 전제 때문에 논증 전반에서 '합법성'이나 '실정법' 등을 고정되고 경직된 개념으로 고정시킨 뒤, 그에 대한 대안은 유동적인 독재라고 운운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반드시 법의 불변성이 아니면 간헐적인 독재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하는가? 코르테스는 이 중간 지점을 상기하지 못한다. 법률이 다소 유동적인 개정 과정을 거칠 수도 있다는 것은, 이미 버크의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 때부터 증명된 사실—물론 버크는 법률의 지나친 유동성에 관해 비판하는 축에 서서 상대적인 불변성을 옹호했다—이기에 그로서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여담으로 위 부분은 슈미트에 이르러서는 '법률보다 정치적 결단이 구조적으로 선행한다'는 식으로 정교화 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이 '합리적' 독재를 옹호하며, 사회상태에 관한 이론을 전개한다. 그에 따르면 사회는 행동과 반응, 그러니까 침략과 그에 대한 저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인간의 삶과 같다. 코르테스는 여기서 침략을 질병에 비유하고, 이는 다시 혁명과 국지적 저항 운동들로 유비된다. 그에게 혁명이란 이 침략이 중앙집권화 되어 정치적 결사체로 구성된 행태를 가리킨다. 그에 더해 국가는 이 침략군을 격퇴하는 저항군으로 비유되고 있다. 그리고 그 두 가지 힘은 비례해야 하기에, 침략군이 혁명의 형태를 갖춘다면 국가는 독재의 형태를 갖추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야만 비례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기준에서 이 두 가지가 비례하지 않는다면, 저항군은 침략군을 몰아내지 못한다(사실은 혁명이나 개혁을 '침략'이자 '질병'으로 정의하는 관점부터가 가치판단을 요구한다는 것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는 이 기준을 명시하지 않음으로써, "이것은 합리적 질서에서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가치판단적 전제로 예상되는 유력한 문장은 아마도 "현체제의 재생산이 혁명이나 개혁 후 예상되는 체제의 모습보다 옳다—이 옳다는 기준이 또 다시 어떤 가치판단에서 나오든 간에—" 정도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 기준 자체가 사실판단이 아니기 때문에, 그의 말이 '합리적 질서'에서 '진리'라고는 보장할 수 없다. 전제로서의 가치판단은 그 자체로는 '명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슈미트에 이르러서는 '정치적인 것', 즉 적과 친구를 구분해야 한다는 개념으로 정교화 된다.)
이어서 그는 자신의 이론이 역사적인 관점에서도 옳다고 말한다. 그는 독재를 겪지 않은 사회는 없었다며, 아테네의 도편추방제, 로마의 원로원, 프랑스 제1공화국, 영국 의회 등의 사례를 거론하고 있다(그는 여기서도 '진실'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우리는 계속해서 그가 지금 하려는 것이 단순 서술이 아닌 '정당화'라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을 감안하면 그의 이러한 행태는 그다지 신빙성을 강화해주지는 않는다. 그간 숱하게 말해왔듯, 어떠한 침해가 매우 오래 지속되었기 때문에 옳다는 논변 자체가 전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람을 한 번 폭행할 때보다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폭행할 때 더 옳다는 것이나 구조적 차이가 없는 주장이다. 쉽게 말해 역사적 경로성은 규범적 정당성과 양의 상관관계를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신학적인 측면에서도 자신의 이론을 옹호한다. 그에 따르면 '물리적 세계의 입법자'인 하나님도 천재지변과 같은 '예외상태'를 일으키는데, 인간이 그보다 더 일관적이라는 가정은 성립할 수 없다. 신보다 불완전한 인간이 신보다 적은 방안으로 무언가를 다스릴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인 것이다(물론 이는 그 자체로 무수한 논란을 불러오는 부분이다. 애초에 무신론자거나 범신론자일 경우에는 전제 자체를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게다가 실은 '신은 인간보다 완전하다'와 '신의 통치는 인간보다 완전하다'는 서로 함축 관계를 형성하지 않는다. 어떠한 존재가 특정한 기준에서 더 완전하다는 것이, 다른 층위에서도 그렇다는 것은 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즉, 신은 인간보다 존재론적인 의미에서 완전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곧바로 정치철학적인 의미에서도 완전하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 물리적 세계와 인간 사회를 무분별하게 동일시 하는 가정부터가 자연주의적 오류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애초에 인격신을 상정하고 있기에, 이 점은 자세히 논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사회는 당위와 규범을 가지지만, 자연은 오로지 기능만을 가진다. 그런데 그는 이 부분을 거부하고 인격신론을 지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오류는 그가 정당화를 주문하는 이상 당연히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자세히 이야기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당연하지만 자연과 인간 사회를 동일시 하고 그것으로 당위를 도출하는 행위는, 자연에 목적성이 없다는 측면에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이 부분은 슈미트가 참고로 하지 않은 듯싶다. 그의 정치신학은 모든 현대 정치철학이 세속화된 신학이라는 프레임을 생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이용하여 영미 정치철학에 대한 적대를 보여주는 형태였다. 그 자신이 초자연적인 논증에 의존하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또한 프랑스 혁명이 자유, 평등, 박애라는 모토를 가지고도 독재에 이르게 된 것은 섭리에 따른 결과라는 식의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위 두 가지 생각들은 확실히 '정치신학'적이다.
코르테스는 이후로 억압에 대해 논하면서, 정치적 억압과 종교적 억압은 항상 반비례 관계를 형성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해당 주장은 "이것은 인류의 법칙이며, 역사의 법칙"이라고 단언하는 것치고는, 이렇다 할 근거를 찾기가 어려웠다. 특히 그가 종교개혁 이후에 상비군이 탄생했다는 사실을 두고, 그 두 가지 변수 간의 인과관계를 설정하는 부분은 실망스러웠다. 이 두 가지는 근대 국가의 탄생을 가리키는 신호였다는 부분에서 일치할 뿐이다. 종교적 해방–>행정력 발달•중앙집권화(정치적 억압의 상승)이라는 식의 조건문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것이 성립한다고 주장하기에 마땅한 이유는 여기서 제시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행정력 발달이 정치적 억압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인지도 불확실 하다는 점은 덤이다.
그는 상기한 주장들을 종합하여, 이제 '결단주의'의 철학을 제시하기에 이른다. 그는 먼저 결과적으로 유럽의 현 상황과 로마 공화정을 대조적으로 고려했을 때, 공화정은 본질적으로 독재와 다름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가 보기에) 독재적인 요소(독재관 제도, 무소불위의 원로원 등)를 갖추지 않은 공화정들은 이내 독재화 되거나 혹은 유명무실 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첫번째 결론을 바탕으로 두번째 결론을 내린다. 두번째 결론이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독재냐 자유냐가 아니라 위로부터의 독재(전제정, 참주정 등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냐 아래로부터의 독재(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 등이 적절하겠다)냐라는 것이다. 그는 여기서 자신이라면 전자를 선택하겠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의 기준에서 그것이 더 고귀하기 때문이다(우리는 서두에서 언급한 대로 그의 판단이 끝내 거짓 딜레마 제시로 이어진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의 한정적인 인간 심리와 역사에 대한 판단에 매몰되어 중간 지점을 놓치고, 민주적 독재 아니면 전제적 독재 뿐이라는 비합리적인 결론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나로서는 지금까지 그의 전제들이 가진 문제들에 대해 이미 살펴보았기 때문에, 당연히 그의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규범적 추론은 연역의 형식에 가깝고, 그렇다면 전제가 부조리할 때 결론도 납득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슈미트와 마찬가지로 한 가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그들의 주장이 결국 온건하게 받아들여져 현재는 예외상태 자체가 법률에 편입되는 식의 대안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적한 대로, 항상 내란과 기존 체제의 갈등이 수면 위에 있다는 주장은 과잉 일반화이다. 다만 그러한 상황이 발생할 여지는 존재해온 것이 사실이고, 그들의 지적을 통해 마련한 대안은 그에 수반될 수 있는 해악들을 방지하는 데에 일부 도움을 준 바가 있다. 이 점만은 아무리 긍정적으로 검토해도 모자라지 않을 것이다. 단지 내가 할 것은 여전히 필연적임과 옳음은 별개의 영역에 있다는 말이다. 비록 슈미트의 말처럼 '결정 불가능성의 영역에서 결단이 필연적'이더라도, 그것은 그 자체로 "결단을 해야한다", 혹은 "결단을 내리는 것이 옳다"를 함의하지는 못 한다. 어떠한 결단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는 적어도 정치적 영역에서는 이제 정말로 합법성에 의해 결정된다—물론 다시 이 합법성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정당화 될 수 있다. 코르테스가 말한 것처럼 예외상태에 대한 법이 필요한 이유를 해악의 감쇄로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사실상 규칙 공리주의적인 입법의 귀결이기도 하다.—왜냐하면 우리는 그 이후로 예외상황에 관한 법률을 예비해놓았기 때문이다. 예비된 법률이 불충분 하다면, 그것을 개정하거나 개정에 관한 요구를 하는 편이 내란을 피하는 길일 것이다. 코르테스처럼 이러한 중간 지점을 회피하고 곧바로 '독재'라는 결단을 내리는 것보다 말이다. "내란은 피하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그것은 해악을 낳기 때문이다. 해악을 왜 피해야 하는가? 사회의 안위가 최우선적인 가치이기 때문이다."는 당초에 코르테스가 했던 가정이고, 나는 여기서 그것을 수용하였다고 가정하고 결론을 낸다.
마지막으로, 실제로는 코르테스와 슈미트의 결론을 수용하지 않는 나는 어떠한 대안을 낼 것인가? 나는 그들의 견해를 건설적으로 참고하되, 다소 우회된 결론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첫번째는 상기한 대로 예외상태에서의 결단 자체를 법제화 하는 것이다. 법제화는 예외상태 선언의 사유와 절차, 사용 가능한 권한의 범위, 사후통제 방식, 갱신 요건, 관련 사범심사 및 기본권 구제 전반의 측면에서 이루어진다. 그것은 결단주의의 순기능을 살리는 동시에, 결단주의 자체에서 비롯되는 해악들은 일정 부분 차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구체적으로는 예외상태 선언의 임의성을 감소시키고, 의사결정자를 여럿으로 분열시킬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의사결정자를 분열시키는 것은 권한 남용이나 예외상태의 무제한 유지 등을 예방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슈미트의 말마따나 결국 정치와 법이 가치중립적일 수 없다는 전제는 유지된다. 그런데 이것은 법 체계와 행정 정책의 정당성이 어디서 비롯되는지와 연관될 뿐이다. 이 부분에서는 꼭 슈미트의 기준을 수용해야 할 필요는 없다. 기존에 합의되었던 기준으로 법률을 해석해나간다면, 이것이 큰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두번째는 매우 중요한 부분인데,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자유주의적 방식—토론, 숙의 등—은 결정할 수 없다'는 전제에 대해서이다. 나는 이 부분에 관해서는 이사야 벌린과 위르겐 하버마스의 견해를 살리고 싶다. 그 말인 즉슨, 자유주의적 방식의 효용성을 원천 부정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범위의 설정을 겸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벌린은 이러한 '자유주의적 딜레마'에 관해, 자유주의는 관용을 유지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범위의 설정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요컨대 구성원 일반이 비구성원에 대하여 적은 아니지만 복리와 해악의 고려대상에서는 우선순위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핵심 이해관계자의 범위를 좁혀 '결정 불가능성'을 줄이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렇지만 슈미트의 가정과 다르게 비구성원들도 실재적인 적대행위를 행하기 전까지는 적이 아니다. 그저 나와 다른 개체의 이해관계자일 뿐이다. 위 점에서 여전히 국제적인 자유주의적 과정의 여지를 남겨둔다. 이러한 측면은 다분히 하버마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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