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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읽었던 책 중에 각 달마다 기억에 남는 것들을 소개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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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박성룡, 『풀잎』(창작과비평사, 1998)


올해 초 들어 시인들이 쓴 산문집을 읽어보는 것에 대한 관심이 생겼었는데, 학교 도서관에 있던 것 중에 민음사의 '오늘의 산문 총서' 중 하나로 나왔던 박성룡의 <시로 쓰고 남은 생각들>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음. 솔직히 말하면 평범한 책으로, 비교적 흥미를 돋우는 시론과 관련된 부분은 서두의 몇 편에만 들어 있고 나머지는 대체로 문학기행, 예술기행 성격의 글들이 위주였음. 그러다가 생각해보니까 정작 이분 시를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는 거임.


박성룡의 대표작 선집이라고 할 수 있는 <풀잎>은 이분이 생전에 낸 시집 중에 유일하게 절판되지 않은 시집임. 웬만한 지역 도서관이면 볼 수 있었던 걸로 봐서 나름대로 스테디셀러였던 것 같음. 시인 자신의 에세이를 먼저 읽고 봐서 그런지 몰라도 서정시를 계승하면서 미세하게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해왔던 점이 느껴졌음. 모더니즘이니 참여시니 하는 것들이 유행하면서 비주류 취급을 받는 해방 이후 서정시의 역사에서 나름대로 자신의 역할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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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김병익 외 3인, 『현대한국문학의 이론』(민음사, 1972)


작년부터 문지 4K(김병익, 김주연, 김치수, 김현)를 제대로 파보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그러자니 이 양반들의 출발을 알린다고 할 수 있는 <현대한국문학의 이론>을 안 볼 수가 없었음. 생각보다 고봉밥으로 평론을 모아 놔서 1, 2월 동안 심심할 때마다 거의 그때그때 끌리는 대로 아무 데나 펴서 읽었던 것 같음. 4K를 파보려고 생각한 계기라는 게 처음부터 '4K에는 김현만 있는 게 아니다!'라는 생각을 증명해보고자 한 것이었는데, 그런 생각 때문인지 이 책만으로 보면 네 사람 중에서 가장 눈에 들어온 인물이 김현이 아니라 김주연이었음. 김현만큼 날카로우면서 상대적으로 논리적 비약이 덜한 편이라는 생각이 듦.


다만 다른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너무 자기들 앞 세대인 50년대 작가들을 내려치고 60년대 작가들을 띄우려는 경향이 보이긴 함. 나중에 기회가 되면 쓰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가령 이 책에서 60년대 10년 동안 상당한 양의 작품을 발표했던 박경리에 대한 언급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점은 매우 재미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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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이성미, 『우리 옛 여인들의 멋과 지혜』(대원사, 2002)


이 책은 별다른 계기가 있어서 읽게 된 책은 아닌데, 그림에서 자수, 화장품 등 공예에 걸친 조선시대의 여성 미술을 전반적이면서도 간결하게 정리해주고 있어서 좋았음. 근래 들어서는 우리나라 여성들의 문화나 예술에 대해 알아보려면 자꾸 요즘의 그런 거와 엮여 있는 것에 대한 소개가 먼저 떠서 좋은 책을 찾기가 많이 번거로운데, 간만에 극단주의와는 무관한 여성 문화 관련 책을 접하고 보니 정화되는 느낌까지 들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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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박은순,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돌베개, 2024)


올해 호암미술관에서 열렸던 겸재 정선 전시를 계기로 읽어본 책임. 진경산수화의 정의나 분류를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음. 위 책 같은 개설서라기보다는 논문집에 가까워서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다소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음. 진경산수화를 잘 모르는 입장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겸재 정선이 진경산수화의 알파일 수는 있어도 오메가는 아니라는 점일 것 같음. 겸재가 대가인 것은 틀림없지만 겸재가 아닌 방향으로도 새로운 진경산수화의 가능성이 없진 않았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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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조남권·박동욱 역, 『혜환 이용휴 산문전집』(소명출판, 2007)


예전에 심경호 교수의 안평대군 평전을 읽고 감탄에 잠겼던 적이 있음. 한문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사람만의 특권인 고문(古文)의 행간 읽기가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음. 꼭 그 책 때문은 아니지만 몇 년 전부터는 그래도 일 년에 몇 번은 옛날 문집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음. 그래서 올해 읽어본 책 중의 하나가 이용휴의 문집임. 조선시대의 문인 중에서도 제일 파격적인 문체를 구사했다는 매력적인 평가에 끌린 것이었는데, 창피한 일이지만 해설 없이 그런 파격성을 알아채기가 쉽지는 않았던 것 같음. 내 자신의 부족함을 다시금 느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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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문명대, 『세종시대의 미술』(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86)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조선 전기 미술을 주제로 하는 전시가 있었는데, 시대가 특이해서 혹시 이 시절을 다룬 책이 있을까 찾아보다가 알게 된 책이었음.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낸 '세종 문화 문고'라고 세종 시절의 문화 이모저모를 총서 식으로 출간한 시리즈 중의 한 권임. 이 책에서는 좁게는 안견의 <몽유도원도>로 대표되는 세종 시기, 넓게는 조선 전기 전체를 대상으로 이 시절의 그림과 조각, 공예, 건축에 대해 다루고 있음. 40년이나 된 책이라 지금의 입장에서는 너무 오래된 면이 없지 않겠지만 이런 주제로 다루어진 책이 근래에는 의외로 찾기 어려운 것 같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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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송호정, 『처음 읽는 부여사』(사계절, 2015)


아 그냥 부여사 GOAT ㅋㅋㅋ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나왔던 '신편 한국사'의 부여 파트를 증보해서 만든 책 같은데, 고구려 백제 신라에 비해 생소하기 그지없는 부여에 대해 입문하기에 아주 좋은 책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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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허만하, 『별빛 탄생』(문학동네, 2025)


허만하는 개인적으로 동년배의 시인 가운데 가장 독특한 행적을 보여 온 인물로 여겨졌음. 첫 시집을 60년대에 내고 무려 30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낸 뒤로 지금까지 활발하게 활동한 분인데, 그래서 그런지 동년배에 비해 거의 두 세대는 더 젊은 시인으로 느껴짐. 90대에 선보인 이 시집에는 이분 특유의 문체를 가진 산문시들이 많은데, 여전히 좋긴 하지만 이전의 시집들과 비교했을 때 다소 비슷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없지는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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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이현혜, 『마한·진한의 정치와 사회』(일조각, 2022)


앞에서 부여 관련된 책을 읽다 보니까 어떻게 고대사 관련 책을 찾아보다가, 이 분이 코로나 이후 두 권의 새 논문집을 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음. 이 책이 대체로 마한이 백제가 되고 진한이 신라가 되는 것에 대한 주제의 논문을 묶은 것이라면, 다른 한 책은 보다 거시적인 주제의 논문을 묶은 것 같음. 고대사 관련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아주 모호했던 것이 점점 뚜렷해져 갈 때의 쾌감 같은 것을 다시금 느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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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조요한, 『관심과 통찰』(숭실대학교출판부, 2003)


조요한은 아마도 오병남과 함께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미학자가 아닐까 싶음. 이분이 작고한 후 유고집이 나왔다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는데, 이 책은 그 중에서 논문집에 해당함. 서두에서 짧게 편집 경위에 대해 적고 있는데 생전에 계획했던 논문이 모두 완성되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어서 안타깝게 느껴졌음.. 후반부의 미학 관련 파트도 좋았지만 의외로 전반부에서 한국 정신사에서의 근대화의 실마리를 찾는 부분이 있는 것이 흥미로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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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이기철, 『청산행』(민음사, 1982)


김우창의 <보편 이념과 나날의 삶>에서 이분의 시에 대한 평론이 있었던 것을 계기로 이 책을 찾게 됐음. 앞서 본 박성룡의 경우처럼 이분 역시 이름만 알고 시집을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결과적으로는 개인적인 취향에 많이 맞는 시라는 생각이 들었고 너무 늦게 읽게 되어서 죄송스럽다는 생각도 들었음.. 이 책은 이기철의 초기 시에서 대표작을 고른 선집인데, 대체로 유장한 템포가 격조를 가지면서, 평범한 주제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안 좋은 서정시의 특징 중 하나인 상투성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음.






12월:


나중에 생기면 추가해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