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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을 감내하는 인간, 미도리- 와타나베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는 인간- 살자한 사람들
책임을 감당하지 않는 인간- 나가사와
0.
어릴 때 상실의 시대는 합법적 야설이었다.
나는 야설을 들고 다니면서도 제법 교양있는 학생이라는 어른들의 눈길도 좋아했고, 동급생들의 시선도 제법 좋아했었다.
왜인지 중2 소년의 사고방식과 비슷한 면이 있는 와타나베를 따라서 읽고 있자면 내 삶은 충분히 괜찮은 것처럼 느껴졌다.
일단은 대리만족, 둘째로는 뭐 하나 특출나지 않더라도 충분히 괜찮은 삶(예쁜 여자랑 어울릴 수 있고, 생활력도 강해질 수 있으며, 주변에서 칭찬도 잘 들으면서도, 우월한 상급생의 인정도 받는)을 살 수 있다는 안도감을 얻었다.
어쨌든, 상실의 시대를 읽은 것은 평판적인 면에서도, 실질적인 면에서도 수지맞은 장사였다. 재미도 있고.
두 번째 읽었을 땐, 4년 전이다. 길거리 행상에서 약간 지저분한 노르웨이의 숲을 천원에 팔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실의 시대에 대한 추억이 있었기 때문에, 추억 삼아서 한번 보자고, 하루키는 섹스씬을 넣기 위해 소설을 쓰는 듯한 과대평가된 작가이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커피가 4천원인 시대에 된 지가 6년이 지난 시점인데. 천원 정도 아낄 것도 없었다.
하지만 어렸을 때 어렴풋이 지나치게 감상적이라고 느꼈던 등장인물들은 더 이상 그렇게까지 감상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분위기는 어릴 때 읽었던 것과는 달리 산뜻했고, 주인공은 중2병이 아니라 평범한 하나의 인간이었으며, 읽고 나니 왜인지 힘이 나는 소설이었다.
어쨌든, 노르웨이의 시대를 읽은 것은 수지맞은 장사였다. 재미도 있고.
세 번째로 읽고 나니, 훌륭했다. 4년 동안 내게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세번째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구조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모든 게 매력적이었고, 서술 방식도 좋았다. 갤주센세는 오랫동안 내가 오해했었지만, 정말 제대로 된 분이셨군요, 이 정도면 타인에게 훌륭히 고전으로 추천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노르웨이의 시대를 다시 읽은 것은 수지맞은 장사였다. 감동도 있고.
1.
너무나 쓸 게 많아 중구난방이 될 것 같아서 등장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만 하려고 한다.
책임을 감내하는 인간인 와타나베와 미도리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는 기즈키와 나오코
책임을 감당하지 않는 나가사와
2.
작중 나오코가 있는 보호원에서는 스태프들도 뭔가 정신이 반쯤 맛이 간 상태로 있다고 묘사된다.
작중 나오는 대사로는 '그들과의 차이점은 우리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뿐'이라고 말이다.
자신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차이점만이 그들이 사회생활을 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인간은 자신이 비정상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비정상이라는 것은 남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는,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공격한다. 일본과 비슷한 문화권인 우리는 상당히 쉽게 수긍할 수 있을 것 같다.
3.
다름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의미가 있을 수 있는데.
단순히 남들보다 키가 더 클 수도 있고(2m), 키가 더 작을 수도 있고(1.5m), 정서적으로 유약할 수도 있고, 뭐 기타등등 하여튼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은 그것을 공격할 수 있는 구조이다. 따라서 '지나치게 약하다' 또는 '지나치게 강하다'는 것 또한 다름이며 공격대상이다.
다름을 부정하는 사회는, 모두 정답을 흉내 내면서도 이득을 챙기려고 애쓰는 안쓰러운 사회이다.
쉽게 얘기하면, 사회규범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떡은 치고 싶으니까, 그렇게 sns 패션 사상가들이 많은 것이다.
4.
이런 약(소수)육강(다수)식의 사회에서 아담과 이브는 살 수 없다. 나오코와 기즈키.
그들은 둘만의 낙원에서 살았기 때문에 일종의 항체가 형성되지 않았다.
항체가 형성되지 않았기에 타인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기즈키와 나오코 모두 남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두려워 살자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의 약한 부분만을 병적으로 의식하고, 더 나아가서 자신을 바람직하게 바꾸지 못한다.
나오코에게 레이코가 와타나베도 같이 치료에 참여하게 하자고 했을 때, '약한 모습을 와타나베에게 보여주기 싫다'라는 반응이나(표현 정확히 기억 안 남)
나오코가 기즈키에 대해서 '와타나베 앞에서만 의젓하게 보이려고 노력했다'라는 회상 등이 이것을 뒷받침한다.
재밌는 점은, 기즈키에 대해서도 나오코에 대해서도, 와타나베 자체는 참 부러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을 따름이라는 것이다.
특히 기즈키에 대해서는
왜 저런 재능을 가지고도 더 넓은 영향력을 가지려 하지 않는지, 또 왜 하필 나를 선택했는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식으로 나오는데.
더 넓은 영향력을 가질 수 없던 것이고(타인이 두려워서), 와타나베만 선택할 수 있었기 떄문이다.(타인이 두렵기 때문에)
이런 점에서는 참 채식주의자가 많이 생각나는 책이었다.
영혜도 남들이 봤을 땐 참 멀쩡한 여자였다는 걸 상기해보라. 내면은 부서져가면서도.
하지만, '더 나아지는 것'보다 타인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다고 살자해버리는 건.
아무리 봐도 정상이 아니다. 삶을 부여받은 책임을 저버린 것이다. 같은 살자라 하더라도, 이건 도피일 뿐..
레이코한테 옷을 맡긴 의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레이코 성격에 나오코의 옷을 보면 뒷수습은 분명히 해줄 테니까.
5.
그러면 아담과 이브에게 선택받은 와타나베라는 인간은 무엇인가?
비인간적이다.
비인간적으로 인간적이다.
이 평범한 남자는 단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감내하려고 최선을 다 한다는 그 사소한 차이점 때문에
비인간적으로 인간적이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감내하려 하기 때문에 남들을 지배하려들지 않는다. 작중 등장인물들이 와타나베만 만나면
모두 수다쟁이가 되고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 것은 단지 그뿐이다.
행동에 대한 책임을 감내하는 인간은 책임질 수 없는 일은 하지 않으므로, 그러므로 남들에게 쉬이 개입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주체적으로 생각한다. 자신의 책임에 대해서 언제나 생각하고 있으므로.
그래서 그가 보기에 일본 사회는 제 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항상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려는 인간이 거대한 패션에 따라 흘러가는 인간군상들을 보고 있으면 무슨 생각이 들겠는가.
오죽했으면 휴학을 지속하지 않고 수업에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는 전공투에게 다가가서 왜 휴학을 지속하지 않냐고 물어봣겠는가.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것 뿐이다. 토끼가 육식을 하는 것을 본 것처럼.
6.
나가사와는 반면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는 너무나 능력적으로 우월해서, 자신이 강자라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삶을 게임으로 만들었다.
책임이 따르는 게임을 그는 회피한다. 그래서 사랑을 하지 못한다.
자신에게 과분한 여자가 나타나도 회피할 따름이다.
놔주지도 못하면서, 오로지 여자에게 모든 행동의 책임을 떠넘기고,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나가사와의 말대로 사랑하지 않는 것이었다면, 그리고 나가사와의 성격이었다면,
일단 뻥 차고, 전 약혼자의 죽음에도 상처를 받지 않았어야 될 것이다.
인간 이상은 되지도 못할 놈이 인간이기는 거부해서 벌어진 촌극이다.
바로 자신의 이상함(약함, 추함)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나가사와는 역설적으로 자신이 까던 사람들과 비슷한 범주 내에 있다.
하지만 그가 남들과 다른 점이라면, 그는 인간 사회의 그러한 구조를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남들은 몰랐다는 핑계가 가능하지만, 나가사와는 책임을 회피했을 뿐이다.
그래서 그도 따라서 인간적일 뿐이다.
'이상이 아니라 필요한 건 행동규범이야. 행동규범은 신사적으로 행동하는 것이지. 신사적이라는 것은 해야할 일을 하는 것이지.'
인간의 의무가 무엇인가?
7.
그것은 행동의 책임을 감내하는 것이다. 특히 관계에서. 왜냐하면 상처는 되돌릴 수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나가사와가 와타나베를 동경했다고 생각한다.
능력의 문제는 아니다. 패럴림픽이 올림픽보다 못하다고 그것을 매도하는 인간을 보면, 사람들이 도끼눈이 되는 것처럼.
삶에 대한 태도의 문제다. 나가사와는 책임을 지는 것이 무서웠기 때문에 책임을 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신사적인 것은 해야할 일을 하는 것이지.'
그가 여자에게 한 행동들은 모두 게임에 지나지 않지만, 모두 그들을 도구로 취급할 때 가능한 일이다.
단순한 쾌락주의자라면 그냥 개나 고양이처럼 즐거워하며 잘 살았을 것이다.
문제는 자신의 도덕과 쾌락을 모두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타인을 도구로 취급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인간적이다. 힘든 길을 피했기 때문에.
8.
와타나베는 작중에서 세 가지 잘못을 했다.
a.특공대를 기숙사의 웃음거리로 만든 것(본의는 아님)
b.여자를 낚고 다닌 것.
c.전 여친을 도구처럼 이용해버리고 만 것
a의 경우, 죄의식은 있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버린다.(b와 c에 비해서 큰 일도 아니긴 하다.) 이것은 잘못이긴 하나 무시해도 될듯하다.
b의 경우 늘 죄의식은 있었다.
c의 경우 별 신경도 쓰지 않았다.
여친도 없는 와타나베가 여자도 낚고 다니면 어떠랴, 도의적인 측면에서는 맞는 말이나
와타나베라는 인간상을 생각하면 틀린 말이다. 그가 친밀한 관계가 아닌 여자와 야스를 해서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경우는
그 대상을 위로할 때뿐이었다는 걸 생각하면.(나오코, 시부야에서 만난 여자, 레이코)
작중에서 나온 말대로 '이렇게밖에 전할 수 없는 의사표현'이기 때문이다.(기억이 안나서 표현은 내맘대로 대충 바꿈)
그렇게 예스러운 인간이 여자가 야스가 딱 야스로 끝나는 인간들이 아닌 걸 알면서도 야스를 그렇게 많이 하고 다녔으니 죄의식이 생길 수밖에.
놀라운 점은, 그가 작품 내에서 그것을 반성했고 고쳤다는 점이다.
b같은 경우는 나오코의 도움을 통해서, c같은 경우는 나오코의 죽음 이후 방황 속에서 자신이 한 일의 막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참회했다는 것이다.
9.
위대한 개츠비 리뷰에서 말했듯이,
나는 미방이 미방하는 것을 보고, 유비가 유비하는 것을 보고, 조홍이 조홍하는 것을 봐왔다.
예외는 거의 없었다. 그만큼 자신의 그릇을 벗어나기는 힘든 것이다.
하지만 와타나베도, 과연 작중에서 줄기차게 나오는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와 비슷하게도,
인간적이다. 의리를 지키려하고, 그 의리를 왜 지켜야하는지 생각하고 느끼고,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그런 행동을 하면 안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반성한다.
훌륭하다. 더 나아지는 인간을 본다는 것은, 정말 훌륭하다는 말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와타나베는 나오코와의 금욕적인 관계를 감내했고
미도리와의 모호한 관계도 감내했고
미도리와 나오코 사이에서 자신이 취해야 할 행동에 대한 고통도 외면하려 하지 않았다.
그것을 단 한 순간도 외면하지 않은 인간이기에
'하츠미의 죽음은 나같은 인간에게조차 상처였다.'라고 말하는 쌉소리를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릴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10.
어려서 읽었을 떄는 감상주의적이라 생각했지만, 지금 읽어보니 정확히 반대로 읽힌다.
감상주의를 오지게 까는 내용이었구나.. 삶을 살아가자는, 훌륭한 내용이었구나.
위대한 개츠비를 빨면서 쓸 소설이었구나....
ps.미도리에 대해서는 굳이 안 써도 될 거 같아서 안 썼음. 작중에서 둘이 가장 비슷함, 책임을 피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가장 다름. 감성과 이성. 둘이 끌릴 수밖에 없음, 완벽하게. 글이 재밌게 써지지 않은 건 아쉬운데, 나도 감상문 쓰면서 스트레스 받긴 싫어서 붓가는데로 쓰기만 한당. 그럼 안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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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까지가 제가 5년 전에 쓴 놀숲 감상문이었습니다.
'살자'의 어순을 반대로 썼더니 0.1초만에 잘리는 걸 봐서는 그 단어가 올라오면 광속으로 지우게 설정되어 있나봐요.
아무튼 그 단어 하나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재탕하는 이유는
이 감상문만 때가 되면 하나씩 새 댓글이 달리길래 놀숲은 독갤에서 스테디인 거 같아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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