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박상륭이 국민학교 5학년 시절, 박상륭의 담임은 젊고 예쁜 여교사였다. 여교사는 반장인 데다 공부도 잘하고 말도 잘 듣던 박상륭을 무척이나 아꼈다. 박상륭 또한 그 여선생을 "세상에 무엇하고도 견줄 수 없는 여신"으로 여겼고,
또 일종의 모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어릴 때부터 노쇠한 데다 병약한 어머니를 통해 죽음의 공포를 느꼈었다"고 말한 박상륭이기에, 이 애정은 분명 심상치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애정도 잠시, 한 소문이 학교를 떠돌아다니게 된다. 그 소문이 무엇인가 하니, 같은 학교의 남선생과 염문이 났다는 소문이었다. 이 소문은 날개를 달고 퍼져 학부형들이 들고일어날 정도로 여론화되고 말았다. 교육구와 장학사에 투서가 날아들고, 교장은 이틀이 멀다 하게 군교육감에게 호출을 당했다. 결국 여선생은 멀리 좌천되고, 새 학기가 시작되자 새 담임이 박상륭의 반을 맡게 되는데...
그 새 담임이 여선생과 염문이 난 남선생이였던 것이다. 박상륭은 이 때문에 학교에 가기도 싫어졌고, 공부도 내팽개쳐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토요일 방과후 남선생은 박상륭을 운동장 구석으로 끌고 가더니 가느다란 두루마리 하나를 내밀며 심부름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박상륭은 드디어 그 여선생의 행방을 알 수 있었다. 버스로 한 시간만 나가면 있는 C면의 C국민학교에 있었던 것이다. 박상륭은 설렌 마음을 안고 장날이라 미어터지는 버스를 타고 C면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게 웬걸, 누가 훔쳐갔는지, 아님 어디 떨궜는지, 두루마리가 온데간데 없었던 것이다.
이튿날 담임이 박상륭에게 심부름을 잘 했냐고 물어보자, 박상륭은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 동안은 비밀이 지켜졌으나, 결국 들키게 되었다. 담임은 그때부터 박상륭을 몽둥이로 팼다. 매일 한 차례씩 두들겨 맞았다. 심지어 졸업하던 전날까지 맞았다. 박상륭은 빠따를 맞으면서 자신이 잃어버린 두루마리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여선생의 생일 선물로 보낸
한산 세모시 한 필이였다.
그 모시 한 필로 인해 둘의 사랑은 중간에서 깨어졌고, 서로 남남이 되었다. 그 여선생은 남선생이 생일 선물을 주지도 않고, 어린 애가 잃어버렸다는 거짓말만 한다며 완전히 돌아서버렸던 것이다. 그 실연의 울분을 담임은 어린 박에게 몽둥이질을 하며 풀어보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박상륭은 잘 견디어냈다. 그때 겪은 시련과 다져진 정신력이 그를 상대방이 제풀에 꺾일 때까지 기다리는 투사로 만들었으리라.
소년 시절의 정서와 순결은 한 학기 동안 계속된 그 무지막지한 실연의 가학적 매질에 깨끗이 짓밟혀버리고 말긴 했지마는.
이거 근데 출처가 어디임
@ㅇㅇ 이문구의 문인기행이라는 책에서 나옴
개폐급이네 ㅋㅋ
이걸 정신분석학적으로 해석해 보자면, 말실수, 혹은 실수는 결코 실수가 아니라는 말이 있지. 남선생과 여선생의 사랑을 용납할 수 없었던 어린 박상륭은, 그러한 무의식적 욕망에 따라 두루마리를 잃어버리고 만 것.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