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사르트르는 좋은데 카뮈는 별로인 사람 있나요
익명(211.234)
2025-11-29 22:53
추천 0
댓글 39
다른 게시글
-
진지하게 수능 준비한답시고 책읽지마라 ㄹㅇ [6][일반] 익명(118.176) | 25.11.29추천 5
-
수능 국어 공부법 [12][일반] 익명(floor1973) | 25.11.29추천 10
-
영미 소설 직역은[일반] 익명(211.243) | 25.11.29추천 2
-
소설 읽으면서 공감 잘하는 방법좀 [6][일반] 익명(121.160) | 25.11.29추천 0
-
님들 미디어이론 [2][일반] 익명(9u3yjqqgkwqc) | 25.11.29추천 0
-
이문구가 goat급임? [5][일반] 익명(61.72) | 25.11.29추천 0
-
디킨스 올트 vs 두도시 [3][일반] 익명(61.72) | 25.11.29추천 0
-
롤랑 바르트의 저자의 죽음 아는 사람?[일반] 익명(106.101) | 25.11.29추천 0
-
어린이 집에 자연도감 많이 있으면 이과갈까? [22][일반] 익명(219.255) | 25.11.29추천 0
-
보닌 책 안읽힐때 쓰는법[일반] 익명(223.38) | 25.11.29추천 3
카뮈가 실존주의가 아니라 부조리철학 주장하는 애라 그런듯
아하
난 정확히 그 반대
오 혹시 이유가 어떻게 되시나용
까뮈는 본인 책에서 본인이 밝히고 있듯이 사상적으로 독자적인 이론이랄게 없습니다. 부조리주의라는 것도 그냥 니체적 허무주의 극복의 변주일뿐이죠. 그래서 까뮈의 문학은 사상적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독자의 해석이 유효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사르트르의 문학은 당시 유행하던 앙가주망이라는 이상한 사조에 경도되어 사상적도구로 전락해버린 느낌입니다.
@ㅇㅇ(211.234) 그래서 사르트르의 문학작품들은 본인이 당시의 자신작품에 대한 비평가들이 한 비평을 재비평하며 ‘오독’이란 단어를 난발한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사상을 모르면 그의 문학을 오독하게 되어 버립니다.
더하여 그 이론의 대표작인 존재와무의 기이한 이론은 저에센 텅비고 공허한 느낌만 줄 뿐이었습니다(읽은지 몇년되서 지금 읽으면 또 다를지는 모르겠습니다)
@ㅇㅇ(221.145) 아하 감사합니다 그런데 혹시 존재와 무의 이론이 어떤 점에서 공허하다고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사르트르의 존재론과 타자론에 흥미를 느끼고 있는 참이라...
@ㅇㅇ(211.234) 여기에 쓰기엔 너무 방대한 내용이 될 것 같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을 더듬어 간략히 써보자면, 사르트르의 철학은 코제브의 헤겔언어와 하이데거 특유의 급진적인 현상학(본래성의 철학이랄까요)을 짬뽕한 느낌이였습니다.
@ㅇㅇ(221.145) 그의 ‘타자론’. 본래적 자아 행위와 대조되는 대자, 즉 개인이 자기를 세계에 내던짐(기투라고 번역된)으로써 자기 자신과 자기의 세계를 함께 창조해내는 자유행위와 대립된다는 것인데 이 과정(제가지금써놓고도극도로추상적인;;) 묻지 말라는 겁니다. 중요한건 참여(앙가주망)라는 거죠. 또 그 참여란것도 본래성의 전제에 반하여 그 참여가 무엇인지 답해서도
@ㅇㅇ(221.145) 안된답니다. 객관적 정당성을 상징하는 가치치계를 채택하는 것은 곧 객체의 세계에 나의 자유를 부여하는 시도가 되고, 그로써 자유가 상실된다는 것. ’객관성‘에 대한 욕구는 자기기만과 자유의 상실이 표출된 것이며, 따라서 스스로 직조한 도덕성을 선택하라는것. 그런데 자유가 상실된 상황에서 그 어떤 도덕성이 가능할까요? 왜 그에 대한 이론적기반은 앞에서
@ㅇㅇ(221.145) 설명했듯이 ‘그건 말할수없다’라며 어물쩡 넘어가는 걸까요? 존재와 무에 형이상학 대로라면 ‘자신만을 위한 법으로 상정이 가능한 무언가’에 앙가주망 하는 것이 자유라면서, 왜 사르트르는 카뮈의 비좌.파(그나마도 좌.파적이지만)적인 행위는 변절 행위라며 우.파라고 비난하는 걸까요? 답변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ㅇㅇ(221.145) 일관적인 부정적 판단이라는 부르주아 논리를 설파하면서도 일말의 양심으로 진보 정체성이 남은거지
@ㅇㅇ(221.145) 그는 이러한 불확정성에 다소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대중적인 소책자에서 그는 "우리에게 좋지 않은 것은 누구에게도 좋지 않다"고 말하며, 또 다른 곳에서는 "내 자유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타자의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 나의 의무이다. 타자의 자유를 목표로 삼지 않으면, 내 자유를 목표로 삼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말은 매우 훌륭하게 들린다. 그러나 사르트르에게 이것은 실존주의에 대한 일종의 절충적 삽입으로, 계몽주의의 윤리 원칙과 칸트 철학의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칸트는 주관성을 일반화하여 객관적인 윤리를 확립하는 데 실패했다. 청년 시기 헤겔은 이 실패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그러나 칸트의 이러한 일반화는 그의 사회 철학의 첫 원칙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반면 사르트르에게 이 일반화는 전통적
@ㅇㅇ(221.145) 인 철학적 의견과의 절충적 타협으로, 그의 존재론적 입장과 모순된다고 할 수 있다. — 루카치.
@ㅇㅇ(221.145) 그래서 사르트르의 존재론과 타자론은 엄밀한 이론이 아니고 서로 충돌함 차라리 사르트르 대신에 헤겔을 읽고 마르크스를 통해 헤겔의 오류를 극복하는 것이 올바름
@ㅇㅇ(221.145) 왜냐면 비합리주의에 일말의 가능성을 내놓게 되면 칸트든 뭐든 어떤 형식의 주관주의라도 이러한 객주관의 불일치라는 근본문제를 피할 수 없기 때문임 현대철학사에서 헤겔이 이 문제를 최초로 지적했고, 마르크스가 최초로 이 문제를 극복함.
@ㅇㅇ(221.145) 다른 현상학류도 마찬가지임 얘내는 유아론을 벗어나서 관념론과 유물론에 대립한 제 3의 이론을 만들어내려하지만 변증법의 논증은 완전한 관념론과 완전한 유물론 이외에 다른 결론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상기시켜줌 결국 현상학도 유아론에 불과함
@ㅇㅇ(211.234) 무슨 말인진 알겠는데요 그게 사르트르의 문학적 세계관과 무슨 상관인지는 모르겠네요. 그리고 저는 마르크스가 뭘 극복했는지도 잘 모르겠는데요. 하부구조 상부구조같은 인위적인 이론과 그에 따른 역사이론(유물사관이라부르는)도 완전히 오판으로 느껴집니다.
@ㅇㅇ(221.145) 유물사관이 잘못됐단건 틀렸지만 애초에 유물사관은 사회학 이론이고 여기서 나는 마르크스의 존재론, 인식론, 논리학 등등 철학 분야(변증법적 유물론)을 말하는거임 그리고 문학적 세계관과 철학적 세계관이 별개라고 말하고 싶은거임?
@ㅇㅇ(221.145) 네가 유물사관이 틀렸다하는건 그 전제가 되는 철학적 세계관을 모르기 때문임
@ㅇㅇ(211.234) 근데 왜 여기서 이런 논의가 나와야하는지 모르겠네요. 제 요지는 1.까뮈의 책은 재밌다 2.사르트르의 몇개의 희곡은 읽을만은 하나 대표작을 포함하여 대부분 작품이 텅빈깡통(스스로도‘무’라하는) 사상에 매몰되어 의미도 재미도 없다 3.(이게뭔상관인지모르겠으나)헤겔의 사상을 본인의 뇌피셜을 첨가해 변형한 마르크스의 이론은 극도로 작위적이다.
@ㅇㅇ(221.145) 2번의 연장선으로 왜 내가 사르트르가 잘못된 이론가라고 보는지 설명을 한거임
@ㅇㅇ(211.234) 그리고 님이 유물사관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냥 사상적으로 저랑 다른것 같네요. 저도 독일이데올로기를 포함하여 마르크스의 저서를 탐독한 기간이있었습니다. 얼마나 유물사관에 대해 잘아시는지는 몰라도 ‘ 그것을 부정한다면 그것을 몰라서 그렇다’ 라는
@ㅇㅇ(211.234) 사상적 광신도와는 더 할 말이 없겠군요
@ㅇㅇ(221.145) 독일 이데올로기 말고 경철수고나 자본론 같이 마르크스 변증법이 전개되는 곳을 보셈 독일 이데올로기야말로 유물사관이 중점인 책이고
@ㅇㅇ(221.145) 얼마나 읽었는지 모르겠는데 내용을 모르고 동의안한다 하는 것도 충분히 광신도적임
@ㅇㅇ(211.234) 이미 다 읽은 저서들입니다. 제가 느끼기에뉴유물론적 변증법이라 부르는 방법론은 결국 유물사관이라는 역사적 흐름을 설명하기 위한 세계관 창조의 일부로 느꼈습니다. 그 결과는 현시대의 흐름이
@ㅇㅇ(211.234) 알려준다고 생각하고요. 제가 오독했을진 몰라도, 사르트르도 결국 마르크스 주의자입니다.
@ㅇㅇ(221.145) 마르크스 변증법은 실천 영역에서의 방법일 뿐만 아니라 이론 영역, 즉 사실의 해석에서도 결정적인 중점임 하지만 네 말대로 물론 유물론적 역사관과 변증법은 함께 가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정도 서로 내적 필연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음 유물사관은 2가지 의미로 경험적으로 검증되어가고 있는데, (1)마르크스-레닌이 말한 역사적 단계가 이행되어가고 있다는 것과, (2)노동계급의 개별 투쟁에서 그것의 정치, 경제 이론이 결정적으로 효과적인 전술이 된다는 것임 첫번째를 빼놓고 보더라도 마르크스주의는 이미 그 전술적 유용성을 증명했고, 따라서 마르크스의 해석이 정확함을 보여주었음. 마르크스주의를 뭘로 정의하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마르크스주의 = 변증법적 유물론이라 보고 사르트르는 변증법에도 유물론에도 적대적임
@ㅇㅇ(211.234) 사르트르가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스스로 이야기했습니다. 후자로 언급하신 노동계급이 스스로를 인지하여 전술적 유용성이 생겼다는건 동의합니다. 그런데 서술해놓으신 역사적 이행이 어느 세계에서 진행되는지 모르겠군요. 공상사회로의 이행이 진행된다고 믿고계신가요? 오늘날에 지젝같은 마르크스주의자들도 그렇게 믿고있는 것 같진 않던데요
@ㅇㅇ(211.234) 공상x 공산o 오타
@ㅇㅇ(221.145) 난 지젝도 사르트르도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생각안함 예컨데 베른슈타인도 자기를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신칸트주의를 수용하고 변증법적 유물론을 배격했음으로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님 공산주의를 부정하는데 마르크스주의자라고 할 순 없지 이게 진보 진영에서 19세기와 20세기 이후의 차이임 이전에는 마르크스주의와 완전히 독립적인 사조(무정부주의 등)가 투쟁하였지만 20세기 이후로는 마르크스주의와 그것을 수정하거나 퇴행시키려는 자칭 마르크스주의와 투쟁하고 있다는 것. 이것 자체가 마르크스주의가 노동계급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되었다는 뜻이기도 함
@ㅇㅇ(211.234)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요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된 모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단이며 공산주의로의 이행은 진행중이라고 믿으신다는거죠? 하하..그렇다면 처음부터 무의미했지만 더더욱 무의미한 얘기를 하고 있었군요;;
둘 다 별로
나도 반대로 좋아함
변증법적이성비판을 맛보아랏
변증법적 이성 비판도 변증법 부정임 사르트르는 총체적 인식을 비판하는데 여기엔 대상의 변화와 발전을 각각의 고립된 성질이지 운동이 아니라고 보는 전제가 깔려있음 근데 헤겔 변증법에 기초하여 보면 대상을 운동을 통해 바라보지 않으면, 그러니깐 총체적으로 인식하지 않으면 실은 대상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으며, 대상은 단지 추상이 될 뿐이라는걸 알 수 있음 그래서 실은 사르트르는 변증법적 이성을 극복하지 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