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와 신: 글마다 편차가 있음. 질의 차이라기 보다는, 뭐랄까, 연구자다운 설명에 치중한 글과 하이데거에 빙의한 듯한 도취적인 글로 양분됨. 가령 초기 하이데거의 신학적 뿌리, 후기 하이데거의 도달점과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관계를 다룬 파트는 꽤 읽을만 한데, <기여>와 궁극의 신 다루는 부분은 쉽지 않았음. <기여> 자체가 하이데거 자신이 출판을 목적으로 한 글이 아니었다보니 그런 걸 수도("이해된다는 것은 철학의 수어사이드"라는 대목).


사족: 아이러니하게도 하이데거는 또다른 사후 출판물인 <Das Ereignis>에서는 서문부터 <기여>에 대한 자기비판을 수행함


그것도 <존재와 시간>에 대한 반성의 양상 그대로. 거칠게 요약하면


1. 너무 교설적

2. 너무 형이상학적

3. 너무 인간중심적

4. 궁극의 신에 대한 사유는 아직 불가능

5. 인간의 본질은 아직 충분히 역-사적(geschichthaft)으로 사유되지 않음



정보사회의 철학: 제목만 보면 그저 그런 교양서인데, 의외로 건실함. 본격적으로 LLM이 부상하기 이전의 책이다보니 SNS, 빅데이터, 정보윤리 쪽에 치중된 감이 없잖아 있음. 그래도 범용지식에 대한 짤막한 지성사적 탐구와 루만(자기초월)-데리다(탈구축)을 엮어 정보사회를 위한 윤리의 철학적 기반을 다지는 부분은 생각해볼만 했음. 다만 재귀성과 연산불가능을 다루는 부분에 헤겔을 다뤄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 약간(레자 네가레스타니의 헤겔적 전회와 연결될만한 지점)


사족: 때때로 감정이 실린 구절들이 보여서 좀 웃김. 가령 사변적 실재론은 좋게 봐줘도 철학 판타지이며, 분석형이상학의 가능세계의미론과 양상실재론은 황당무계한 헛소리라는 식.



횔덜린 송가 - 게르마니엔과 라인 강: 낙지로부터 버림받아 방황하던 시기라는 배경과 국가와 민족 운운하는 책소개를 보며 살짝 경계심이 일었지만, 예상외로 만족스러웠던 독서. 여타 횔덜린 강의록이 그러하듯 표제작만 집요히 파고드는 대신 시, 서신, 일기 등을 최대한 긁어모아 논의를 개진하는지라 지루할 틈은 없음.

아마도, 하이데거 철학의 모티브를 드러내는 단락 하나: "운명 앞에서 어리석은 소망을 갖는 것은, 계산함과 간과함의 방식으로 존재하는 자의 방식이며, 질문-없음이라는 확실성 안으로 그들의 존재를 몰아넣는 자들의 방식에 불과하다. 그들에게 모든 질문은 하나의 방해이며, 그 때문에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다. 대답들이 더 편안하며, 그 때문에 그것은 올바르다. 비록 그 대답들이 질문에 대한, 단지 가상적인 대답일지라도, 소망과 ─이와 같은 의미로서─ 성취된 소망 안에서 포만을 느끼는 것은, 운명 앞에서 어리석으며, 운명을 이해하지 못한다. 운명이 이해될 수 있는 것은, 단지 운명이 하나의 과제로서, 넘어서는 의지를 자신의 근원으로 하는 의욕 안에서 원해질 때뿐이다."


사족: 역시 하이데거에게 위버멘시는 시인. 다분히 엠페도클레스의 그림자가 드리운, 반시대적 개체, 너무 이르고 또 너무 늦어버린 자, 재를 남긴 채 불타오른, 민족 내부의 이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