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스와 프루스트 모두 살아있을 적부터 주변에서 거장 취급을 받았는데

놀랍게도 이 두 사람은 동시기 파리에 살았고, 1922년에 스트라빈스키가 연 파티에서 직접 만난다.

예술 직종 너드작가들만 잔뜩 있으니 지켜보는 사람들은 둘의 업적을 너무도 잘 알았고, 자존심 강한 두 명의 살아있는 성격 개같은 신들이 뭔 재미를 보여줄까 기대하며 숨 죽였다.

두 사람은 서로 나 위장병 짜증남. 너두? 야나두. 난 눈병도 있어. 나두! 식의 시덥잖은 이야기만 나누고 끝남. 그해 프루스트는 죽었으니 이후 만남은 없었다.

이때 자존심인지, 진짜인지는 본인들만 알지만 서로가 누구인지, 뭘 썼는지 읽어본적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 둘은 제자로 재대결을 벌이는데 그게 바로 프루스트와 조이스에게 동시에 조교받은 사무엘 베케트다.

프루스트의 영향은 막강했다. 베케트는 초기에 출간한 프루스트평론에서 어떻게 이 죽은 천식 환자가 자신의 정신세계를 마개조했는지 고백하며 그후로도 쭉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그 조교 위력은 조이스가 조금 더 막강할듯하다. 프루스트는 글로만 베케트를 조교했지만, 조이스는 자기가 직접 아일랜드에서 온 촌놈을 데리고 다니며 아버지로 군림한다.

아일랜드에서 건너와 자기 글에 반했다는 초년생 청년에서 자신의 옛 모습이라도 봤는지 조이스는 베케트를 비서로 쓰며, 피네간 집필하는데 꼬봉으로 부려먹는다.

원고의 불어 번역을 맡기거나 피네간 평론모음집에 베케트의 평론도 끼워줄 정도로. 이게 베케트가 가장 처음으로 출간한 글 중 하나다.

거기에 조이스의 딸 루시아가 베케트에게 반해서, 둘이 사귀기까지 한다. 베케트가 자기 아버지에게 더 관심있는 것에 실망하여 둘은 헤어지지만 베케트는 조이스 사위가 될 뻔도 했다.

문학청년이 갑자기 자신의 우상을 만나 곁에서 그가 새로운 대작 집필하는데 도우며 옆에서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또 그 우상이 자신한테 일부를 번역해보라고 일 맡기거나 평론집 작업에 참여하라고 일까지 맡긴다고 생각해보자. 거기에 가족처럼 대한다.

베케트도 당연히 좋아죽는다.
베케트는 조이스를 아버지처럼 느끼며 그의 영향을 좋아하면서도 점차 작가로서 완전히 잡아먹힐까봐, 거장을 꿈꾸는 그는 두려움을 느꼈고, 끝내 조이스를 떠난다.


그러나 조이스가 죽은 이후로도 베케트는 프루스트처럼, 조이스 트라우마에서 제대로 벗어나지 못한다.

당장 고도에서 왜 포조가 장님으로 나오는지, 엔드게임에서 햄이 장님이고 포조는 럭키를 부리며 군림하고, 햄은 클로브를 부리며 군림할까?

여러 해석이 있지만, 베케트가 자신과 조이스의 관계를 그렸다는 해석도 있다.

아버지로서 자신을 키웠지만 그 영향력으로 군림하는, 눈병으로 장님에 가까웠던 조이스와, 밑에서 자랐지만, 독립하여 홀로 서고 싶어하는 베케트의 관계처럼.

이렇듯 한 아일랜드 청년을 두고 자존심 강한 두 천재는 영향력 과시로 대결을 지속했다.


그런 의미에서 워크룸에서 나오는 베케트 선집 모으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