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단은 한글 전용 이후에


'정수'라는 수학용어를 한글로만 써 놓으면 구분하기가 어렵게 되었다는 것




한국어의 정수에는 최소 세 가지 의미가 있었음(1. 整數 2. 正數 3. 定數)


1번은 integer, 2번은 양수의 다른 말, 3번은 상수의 다른 말임


하필 쓰이는 맥락이 비슷한 데다가 수학에서는 문장을 군더더기 없이 가장 간단하게 쓰는 걸 미덕으로 삼는 문화가 있기 때문에 훨씬 더 헷갈림 




그래서 한글로만 표기하기 위해선 발음이 다른 새로운 용어로 교체할 필요가 있었음 


3번 정수를 상수로 바꾼 것까진 잘한 일인데




2번 정수를 동양의 음양의 세계관을 과학적으로 재해석해서 양수, 음수라는 처음 떠올린 사람은 자기가 천재라고 느꼈겠지


참고로 조선시대로 가서 양수 음수라는 말을 쓰면 홀수, 짝수로 알아들음 


새로운 용어가 정착되고 한자 없이 한글로만 써도 다시는 헷갈리지 않으니 잘 된 일이지


지금까지는 말이야




그런데 화학으로 넘어가면 재앙에 가까운 일이 벌어짐


캐소드(cathode)와 애노드(anode)를 양극과 음극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번역하면서 벌어지는 일인데


영어에선 캐소드와 애노드가 한 가지 의미밖에 없음


캐소드는 외부회로를 기준으로 전자가 들어오는 곳, 즉, 전기회로적 관점에선 플러스극


애노드는 외부회로를 기준으로 전자가 나오는 곳, 즉, 전기회로적 관점에선 마이너스극


그런데 한국어에선 맥락에 따라 음극과 양극의 의미가 오락가락 해서 겁나 헷갈림


만약 캐소드에서 전기분해시에는, 전해질쪽 관점에선 양이온이 흘러오니까 음극이라 불러야 마땅함


전기회로적으론 전자가 들어오니까 양극이라 불러야 마땅하니 모순인 거




일본어에선 음수(陰數), 양수(陽數)라는 표현을 봐도 플러스(正數), 마이너스(負數)를 연상하진 않기 때문에 


캐소드와 애노드를 음극(陰極), 양극(陽極)이라고 직역해도 무방함


그리고 전기적 극성을 기준으로는 정극(正極)과 부극(負極)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어서 의미를 더 명확하게 할 수 있음


그런데 한국어에선 일본어 공학문헌을 직역하면서 지식을 습득하던 옛날 관습 때문에 


일본어의 음극도 부극도 똑같이 음극이라고 번역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겁나게 헷갈리는 거 


솔직히 나는 음극, 양극의 의미가 뭔지 아직도 헷갈린다










그리고 또 이상하게 번역된 과학용어가 있는데 


속도와 속력. 이건 학교에서 속도는 벡터, 속력은 스칼라 개념이라고 세뇌시키듯 못박아서 가르치기 때문에 헷갈릴 일은 없음. 


그런데 의미를 보면 뭔가 좀 이상함. 


속력의 력은 힘이고, 힘은 벡터 개념임. 그래서 벡터인 속도는 원래 속력이라 불렀어야 함. 


그리고 속도의 도는 물리학에서 항상 스칼라 개념을 가리킬 때 쓰는 말임. 온도, 습도, 고도, 강도, 경도, 농도,  조도 등. 그러니까 속력은 원래 속도라고 불렀어야 마땅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