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도 극찬하는 괴상한 이름의 폴란드 작가 비톨트 곰브로비치.
초기 민음사 문학전집에선 불어 중역본으로만 소개되었지만, 최근엔 그의 희곡집과 소설까지 폴란드어 전공자에게 번역되는 등, 한국 독서가들의 그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것 같다.
오늘날은 브루노 슐츠, 비트키에비치와 더불어 폴란드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로 자리잡았지만, 사실 그의 삶 또한 무척이나 기묘한 구석이 있었다.
어린 시절,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풍족하게 자란 곰브로비치는 학생 때부터 무언가 비범한 학생이었다.
당시 폴란드는 막 독립하여, 자연스럽게 민족주의에 집중하고 있을 때였고, 문학 수업 또한 이런 폴란드 민족주의 문학 중심이었다.
그런 수업시간에 곰브로비치는 선생에게 대놓고 불만을 표시한다.
"폴란드 문학 열라 구린데, 그냥 잘 쓴 셰익스피어나 배우는 게 진짜 문학 아닌가요?"
물론 혼났지만, 이는 곰브로비치의 과도한 민족주의에 대해 경계하는 그의 작품관이 어린 시절부터 형성되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법학도 공부하고,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도 작가를 꿈꾼 곰브로비치는 단편들을 발표하며 주목을 끈다. 물론 어그로도 함께 끈다.
이미 이 당시부터 곰브로비치의 글은 그 시기엔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다.
"좀 기괴하고, 뭔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모더니즘이다 뭐다, 다들 쓰니까, 우리 폴란드도 이런 작가 한둘은 슬슬 있어야하지 않을까?"
아마도 이런 논리로, 어찌되었든 곰브로비치는 문단에 주목받는 젊은 작가 중 하나가 된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 그와 비슷한 미래의 거장들이 출현하고 있었고, 이들은 어울리며 친목질을 하기 시작한다.
(브루노 슐츠 - 폴란드산 카프카)
"당신 글을 읽어봤는데, 뭘 좀 아는 친구 같네요.
제가 친한 선배님을 소개해드릴 게요. 비트키에비치라고, 개쩌는 선배님임."
(비트키에비치(비트케이) = 오늘날 부조리 문학의 선구자로 추앙됨.)
이렇게 미래의 폴란드 문학의 얼굴이 될 이들과 서로 친목질을 하며,
브루노 슐츠는 곰브로비치의 첫 장편 <페르디두르케>의 표지를 그려줄 정도로 친분을 과시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들의 우정은 오래 가지 못한다.
외적인 이유로.
1936년, 곰브로비치는 홀로 취재 등의 이유로 아르헨티나로 난생 처음 여행을 떠난다.
1936년에.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 해에 폴란드를 향하여 누군가가 고개를 들이민다.
"테에엥! 폴란드가 당한테치잇! 일가실각인테차아앗!"
곰브로비치가 아르헨티나에 도착했을 때, 독일과 소련이 폴란드를 점령한 것이다.
참고로 비트키에비치와 슐츠 모두 유대인이었다. 독일과 소련 모두 반유대주의 정책이 있었기에,
늙었던 비트키에비치는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였고, 브루노 슐츠 또한 게토에서 생활하던 중 게슈타포에게 총살당하고 만다.
폴란드 모더니즘을 이끌던 대가 2명이 동시에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 위협은 이제 곰브로비치에게도 손을 뻗고 있었다.
"아....망했네...?"
곰브로비치의 상황을 살펴보자.
폴란드로 돌아갈 수 없다.
가지고 온 재산은, 당연히 잠깐 여행온 것이었으므로 없다.
아르헨티나에 폴란드 교민들도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곰브로비치 자신은 스페인어를 할 줄 몰랐다.
돈도 없고, 말도 안 통하고, 아는 사람도 없다. 나라는 망했다.
이때부터 어떻게든 먹고 살기 위한 곰브로비치의 눈물 겨운 궁핍한 생활이 시작된다.
폴란드 교민 사회에서 교민 신문에 글을 쓰거나, 은행원 일 등을 전전하며 작품활동도 제대로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2차대전이 끝난 이후에도 폴란드는 공산화되었고, 곰브로비치의 작품들은 체제에 불순하다는 이유로 금지된다.
사상이 불순하다는 이유로 책도 못 파는데, 자살희망자도 아닌 이상, 곰브로비치가 폴란드로 돌아갈 리도 없었다.
결국 그대로 그는 아르헨티나에 머물다가, 프랑스로 이주할 뿐, 폴란드로 돌아가지 못한다.
신문에 자신의 일기도 연재하고, 어떻게든 스페인어를 배우며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작품을 스페인어로 번역하여 팔려고 시도하는 등,
곰브로비치는 작가로 살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하였고, 다행히 말년엔 결실을 맺었고, 여러 지원을 받으며 책도 쓰고, 실존주의를 예견한 대가로 프랑스에서 예찬받으며 재평가를 받게 되었다.
이런 곰브로비치에겐 특이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무엇보다 기억할 만한 것은 그의 제목 짓는 방법이었다.
"선생님, 이번에 단편집 <바카케이>를 내셨는데요, 원래 선생님의 첫 단편집이었던 <미성숙한 시절의 회고록>을 개정하시며 제목을 바꾸셨습니다.
대체 이 '바카케이'엔 어떠한 심오한 의미가 있는 건가요?"
"우리..."
"우리...폴란드에 대한 상징인 걸까요?"
"우리....집이 바카케이 거리에 있어."
"예?"
"우리 집이 바카케이 거리에 있더라고. 굳이 제목 생각하기도 귀찮고 그래서 바카케이라고 지었어."
"아니, 그래도 제목이 중요한데, 그렇게 대충 지어도 되는 건가요?"
"사람들도 자기가 키우는 개를 다른 개와 구별하기 위해 이름 지어주잖아."
실제로 이렇게 말했다. 곰브로비치에게 있어, 작품에 제목을 지어주는 것은, 자기가 기르는 개들을 서로 구별하기 위한 것에 불과했다.
"<미성숙한 시절의 회고록>도 내가 미성숙할 때 쓴 거라 그렇게 붙인건데, 자꾸 이상하게 해석하더라고. 그래서 이번에 제목을 우리 집 거리로 바꾸었어."
"아...예.... 잠깐만요, 설마 <포르노그라피아>도?"
"외국어를 그대로 써서 포르노와 다른 단어의 결합처럼 보이지만, 그냥 '포르노그래피'의 폴란드어가 '포르노그라피아'인데? 사랑 이야기니까 <포르노>라고 붙인 거지."
"......"
"<대서양-횡단>은 대서양 횡단에 관하니까 <대서양-횡단>."
"아...네..."
이렇듯, 곰브로비치 본인은 심오하고 기묘한 소설 내용과 달리, 정말로 대충 제목을 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아, 그럼 선생님의 첫 장편 <페르디두르케>는 어떤 뜻이죠? '페르디두르케'란 건 책에 안 나오던데."
"아.... 그거?"
"예, 많은 연구가들이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대체 무슨 이유로?"
"안알랴쥼."
안타깝게도 곰브로비치 본인이 <페르디두르케>의 뜻이 무엇인지는 알려준 바는 없다.
하지만 오늘날 연구자들이 유력하게 추측하기론, <페르디두르케>를 쓸 당시 곰브로비치가 좋아했던 작가 중 하나로 싱클레어 루이스가 있었단다.
그리고 루이스의 소설 <배빗>엔 '프레디 더키'란 인물이 등장한다.
그렇다.
'프레디-더키'란 미국식 이름이 폴란드어를 거치며 '페르디두르케'가 되었다는 것이 오늘날 연구자들의 유력한 추측이다.
<배빗> 자체가 중년 주인공의 유년 시절 등이 언급되므로, 이를 중년 주인공이 난데없이 어린아이로 변신하는 <페르디두르케>와 어떤 연관이 있는게 아닐지
추정하는 연구자들도 있지만, 그냥 귀찮아서 가져다 쓴 것인지, 정말로 의미가 있는 것인지는 곰브로비치만이 알 것이다.
참고로 민음사 곰브로비치 소개엔 4편의 장편을 썼다고 나오는데, 곰브로비치 공식 사이트에서도 나와있지만, 원래 <페르디두르케>를 쓴 직후, 익명으로 고딕 패러디 소설 <악령>을 출판했었는데
죽기 며칠 전에야 자기가 썼다는 걸 고백해서, 오늘날 공식적으로 공인된 곰브로비치가 쓴 장편은 5편이다.
쿤데라도 좋아하는 유쾌한 곰브로비치의 책들을 책장에 장식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 사람도 나중에 읽어야 하는데
님 근데 곰브로비치 영역본어떰? 민음사가 중역이라 좀 걸리는데 큰 차이가 있음?
난이도는 어떰? 쿤데라 말 들어보니 디게 정신없는 소설 같던데 좀 힘든가?
글쿠먼 나중에 킨들로 사봐야겠다 ㄱㅅㅅ
이분 하루에 한번씩 글쓰시는듯 꿀잼
잘롭 소설보다 작가 썰이 더 재밌잖어..
ㄹㅇㅋㅋㅋㅋㅋㅋ 오프 더 레코드 같음
이분은 보배다.....
폴란드는 소설 인형이 국민소설 아인교
뭔가 이제는 출발 비디오여행 보는 것 같은 느낌임 ㅋㅋ 꿀잼이라고 막상 직접 책 읽어보면 재미 없을 듯한
근데 잘롭이 추천한거 보면 다 번역 엿같다는 소리만 나오는 작품들 뿐임. 너무 마이너 해서 출판사가 신경 거의 안쓰는 작가들 ㅋ
곰브로비치??? ㄹㅇ 처음 들어 보는데 글 재밌게 읽었다.
워크룸프레스에서 희곡집을 번역함=힙하다!
썰이 너무 재미있습니다
않이 이거 독갤에서 힛갤 또 나올 수도 있겠는데 - dc App
작명법 레전드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