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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아버지가 문둥이올시다

어머니가 문둥이올시다

나는 문둥이 새끼다

그러나 정말은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하늘과 땅 사이에

꽃과 나비가


해와 별을 속인 사랑이

목숨이 된 것이올시다.


세상은 이 목숨을 서러워서

사람인 나를 문둥이라 부릅니다.


호적도 없이

되씹고 되씹어도 알 수는 없어

성한 사람이 되려고 애써도 될 수는 없어

어처구니없는 사람이올시다.


나는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나는 정말로 문둥이가 아닌

성한 사람이올시다.



벌(罰)


죄명은 문둥이.....

이건 참 어처구니없는 벌이올시다.


아무 법문(法文)의 어느 조항에도 없는

내 죄를 변호할 길이 없다.


옛날부터 

사람이 지은 죄는

사람으로 하여금 벌을 받게 했다.


그러나 나를

아무도 없는 이 하늘 밖에 내세워놓고


죄명은 문둥이.....

이건 참 어처구니없는 벌이올시다.



목숨


쓰레기통과

쓰레기통과 나란히 앉아서

밤을 세운다.


눈 깜박하는 사이에

죽어버리는 것만 같았다


눈 깜박하는 사이에 

아직도 살아 있는 목숨이 꿈틀 만져진다.


배꼽 아래 손을 넣으면

37도의 체온이

한 마리의 썩어가는 생선처럼 멍클 쥐어진다.


아 하나밖에 없는

나에게 나의 목숨은

아직도 하늘에 별처럼 또렷한 것이냐.



보리피리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靑山)

어린 때 그리워

피–ㄹ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人寰)의 거리

인간사(人間事) 그리워

피-ㄹ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ㄹ닐리리.



파랑새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어

푸른 하늘

푸른 들

날아 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어 예으리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리



영가(靈歌)


지나간 것도 아름답다

이제 문둥이 삶도 아름답다

또 오려는 문드러짐도 아름답다.


모두가

꽃같이 아름답고

.....꽃같이 서러워라.


한세상

한세월

살고 살면서

난 보람

아라리

꿈이라 하오리.



최근에 한하운 전집을 읽었는데 좋았음. 현란한 기교 그런 것보다는 정말 감정을 담아서 쓴 그런 시들이 많았음.

자기 인생에 대해 쓴 산문도 수록되어 있었는데, 이거 가지고 감상글 올렸는데 잘림. 아마 자기 병세 악화됐을 때 증상들 표현하는 부분에서 잘린 듯. 대충 요약하자면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문학을 읽으며 자라났는데, 17살 때 처음으로 한센병으로 진단받음. 1937년엔 병세가 호전되어 일본 고등학교에 입학하지만 2년 뒤 다시 악화되어 귀국. 다시 상태가 호전되자 베이징대학에서 축목학을 전공하고 다시 귀국, 아버지의 권유로 개마고원과 용인군 등을 옮겨 다니며 근무함.

1945년 봄, 병세가 심하게 악화되어 고향으로 도망치듯 돌아옴. 사람들의 눈이 무서워 집에서 칩거, 한밤중에만 잠시 나와 눈물을 흘리며 시를 읊곤 했음. 이때 읊은 시가 바로 <파랑새>.

광복이 되자 처음으로 집 밖을 나가기 시작했지만 집안이 불로소득을 일삼는 부재지주로 몰려 전 재산을 몰수당함. 이후 책장사를 시작하나 3월 함흥에서 일어난 시위를 구경하다 체포됨. 돌아와 보니 장서 3천 권, 습작 소설과 시, 평생의 역작이 될 조선축산사 논문까지 전부 압수됨.

이후 국경을 넘어 한센병 요양원에서 약을 구해 원산으로 가던 중 불심검문에 걸려 유치장에 갇히지만 탈주, 남한 곳곳을 떠돌며 쓰레기통 옆에서 자고 낮에는 깡통을 든 채 구걸하면서 살아감. 나중엔 명동으로 거처를 옮겨 술집 등지에서 자신이 쓴 시를 팔기 시작. 이때 시인 정지용과 이용악을 만나기도 했음. 그러나 시단의 선배에게 수준 낮은 시를 보여줬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도망쳤음.

시인 이병철의 도움으로 첫 시집인 <한하운시초>를 출간. 이후 유명세를 얻고 한센인 정착촌에 8개월동안 지내기도 하고, 보육원을 창설하고 원장으로 취임하기도 함. 1959년엔 드디어 한센병을 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