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하고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하여야 한다고 하였음.
여기서 말할 수 있는 것이란 수학 과학과 같은 입증가능하고 명료한 학문이고
말할 수 없는 것은 형이상학, 철학, 문학, 예술 윤리, 종교과 같은 말장난 같은 학문임.
비트겐슈타인의 이러한 발언으로 그는 비엔나 써클이라는 곳에 초대됨.
비엔나 써클은 검증이 가능하고 형이상학을 거부하는 논리실증주의를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비트겐슈타인의 '말'이 곧 자신들의 사상과 일치하는 것 처럼 보였기에 그를 비엔나 써클에 초대한 것이었음.
하지만 그는 비엔나써클에 초대되자 비고르의 시를 읽다가 자리를 떠나버렸음.
비엔나 써클은 형이상학을 혐오하는 집단이기에 시를 읽는 비트겐슈타인을 못마땅해하다. 그가 나가자 그는 우리의 편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함.
비트겐슈타인은 처음부터 형이상학을 혐오하기에 해당 발언을 한 게 아니었던 것임.
그가 언어 철학자라고 불렸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 됨.
"말할 수 있는 것"인 수학과 과학은 명확한 기호와 문자로 해당 지식을 그 어떤 사람에게도 왜곡 되지 않게 전달하는 것이 가능한 분야임.
하지만 "말할 수 없는 것."인 형이상학, 철학, 문학. 예술. 윤리, 종교 등은 명확한 글자가 기호가 없어 사람마다 같은 글자가 전혀 다른 뜻으로 쓰이기도 하며 말하고자 하는 맥락과 상황 시대에 따라 변질하고 사라지는 분야임.
그렇기에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는 말의 본뜻은 형이상학이 의미 없는 말장난이다가 아니라 "침묵'을 통해 언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상실하고 왜곡시키는 것을 막고, 그 고유의 가치를 상실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뜻임.
비트겐슈타인은 비엔나 써클의 초대가 곧 자기 생각을 반증하는 사례처럼 느껴졌을 것임.
그는 단지 분야를 구분하여 해당 분야에 맞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태도를 밝힌 것인데 그 말조차 왜곡되어 형이상학을 혐오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기까지 하였으니 글자가 얼마나 쉽게 죽는지를 몸소 체험하였다.
그렇기에 그는 형이상학적을 혐오하는 사람들과말로 토론하지 않고 시를 읊는 행동을 통해서 자신이 진실로 하고 싶은 말을 대신 전한 것임,
한편 그는 수학과 과학이라는 명확한 기호와 문자로 전달되는 지식처럼 형이상학적인 지식도 글자로 명료히 전해지도록 할 수는 없을지를 연구하다 언어철학을 세우게 되었다고 필자는 생각함.
내가 쓴 글인데 솔직히 좀 잘쓴거 같아서 올려봄.
- dc official App
잘썼다 요새 세상 돌아가는거 보면 말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이는지 , 침묵해야겠다
고마워 행복해 - dc App
다시 읽어보니 형이상학을 혐오했다는 너무 과격한 해석인듯하다 - dc App
논지가 명확하고 재밌는 일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바를 잘 전달해주셔서 좋았습니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