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다른 어떤 매체보다 감각적이다. 감각을 끝까지 성실하게 파고들어,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독자와 저자 사이에 상상의 여백을 되도록 남기지 않고 저자의 감각을 재현하듯 정확하게 표현해내는 것을 소설의 일반적인 미덕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잘 쓰인 소설을 읽었을 때 독자는 저자의 흔적을 느끼고, 마치 작품 안에 들어가 직접 화자가 된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를 소설이라는 매체에서만 느낄 수 있는 건 아니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도 비슷한 효과가 존재한다. 그러나 소설만큼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감각의 해부에 치중하는 장르는 없다. 소설은 단 한 명이 집중해서 만들어내는 개인적인 노고의 결과이다. 구상, 표현, 편집 등의 전 과정이 한 사람의 손에서 끝난다. 여러 사람들의 감각이 복합적으로 섞여드는 타 장르들과 다르게, 소설은 온전히 저자 한 사람의 감각이 작품을 만들어낸다.
단 한 사람의 뇌에서 나온 감각을 지독히 파고든다는 자유로운 산문로서의 소설의 특징이, 감상자로 하여금 작품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매력을 느끼게 만든다. 이미지, 욕망, 사유 등, 작품에 흐르는 모든 것들이 창작자의 내면을 담고 있다. 그래서 소설을 읽으면 이 사람(저자)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깊이 다가갔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소설은 말의 본래의 기능, 사람 대 사람으로서 소통한다는 표현의 목적을 감각을 파고드는 행위로 인해 보다 내밀하게 수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기능을 누구보다 잘 활용하는 작가중에 하나가 바로 미시마 유키오다. 감각에 여백이 남았음에도 표현이 적당했다면 만족하고 넘어가는 다른 작가들과 다르게, 그는 자신의 감각을 지독하게 파고들어 자신이 느끼는 아름다움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기어코 파내고는, 그 사체를 문장으로 박제한다. 금각사를 펼쳐 아무 구절이나 가져와도 이러한 능력이 돋보인다.
'패전은 나에게 이러한 절망의 체험 그 자체였다. 지금도 내 앞에는 8월 15일의 불길 같은 여름 햇빛이 보인다. 모든 가치가 붕괴됐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나의 내부에서는 그와 반대로 영원이 잠에서 깨어나 소생하여 그 권리를 주장했다. 금각이 그곳에서 미래에도 영구히 존재하리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영원.
하늘에서 내려와 우리들 뺨에, 손에, 배에 달라붙어서 우리를 묻어버리는 영원. 이 저주스러운 것....... 그렇다. 주위의 산에서 들리는 매미 소리에서도, 전쟁이 끝나던 날 나는 이 저주 같은 영원을 들었다. 그것이 나를 금빛의 흙벽 속에 매장해버렸다.'
지독할 정도로 아름답다. 유미주의 문학가 답게 미시마 유키오의 문장은 그 스스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만,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어휘로 적어낸다. 그는 감각의 여백조차 아름답지 않다면 사용하지 않는다. 여백을 활용한 문장을 가져와보겠다.
'그 때 반질반질 광택이 나는 택시가 눈 앞에 멈췄다. 문이 열리고 여자가 먼저 올라탔다. 나는 무심코 그쪽을 보았다. 여자에 뒤이어 타려던 남자는 문득 나를 보더니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미시마 유키오가 여백을 활용한 문장에서는 다른 문장들 보다 유독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영향이 크게 드러난다. 문장독본에서 그 스스로 말했듯이, 야스나리 만큼 일문학에서 여백을 잘 활용하는 작가가 없는 것이다.
근데 글을 쓰다 보니까 힘들어졌다. 그냥 그만 쓰도록 하겠다. 사실 게임용 키보드 샀는데 게임을 안 해서 타자 좀 두들기고 싶었다. 읽던 책이나 읽어야지....
- dc official App
나는 유미주의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겟다
가와바타가 너무 조음..
첫문장부터 딱히 설득력 없음
ㅇㅈ
ㅇㅈ
ㄹㅇ ㅋㅋ - dc App
자신의 감각을 지독하게 파고들어 자신이 느끼는 아름다움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기어코 파내고는, 그 사체를 문장으로 박제한다 <이거잘썼네
독갤 미시마 팬들은 대개 미시마와 비슷하게 세상 모든 일을 탐미의 자세로 대하려는 태도가 있네. 독자와 저자 사이 상상의 여백을 되도록 남기지 않는 게 소설의 일반적인 미덕이라고 어디서 가르침? 소설과 같은 언어 예술은 추상성이 두드러지는 갈래지 구체성이 두드러지는 갈래가 아님. 상상의 여백이 적은 건 오히려 그림 사진 영상이고 문학은 상상의 폭이 매우 큼
글만 아름다우면 내용에 쓰인 준거와 별개로 글이 설득력을 가질 거라고 생각하나. 소설이 다른 매체보다 감각적이란 말도 개인의 경험에 불과한데.
일반적인 미덕이라는 것은 좀 과장된 표현이지만, 글쓴이의 의견도 자네 의견처럼 엄연히 존재하는 하나의 이론임. 대표적인게 대학 필독서로 널리 읽히는 마샬 맥루언의 미디어이론, 또 하나는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지. 맥루언은 소설이 핫미디어로서 높은 정세도를 가지고, 구체성으로 인해 독자에게 주어지는 상상의 폭이 이미지 보다 작다고 주장하지. 뭐 자네 말(추상성에 관한 주장)도 일반적인 대학의 문학론이나 기호학,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는 맞는 말이긴 해. 중요한건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지. 개인적으로 나는 활자 매체(구텐베르크 은하계)가 시각을 과도하게 발달시켜 인간을 파편화시켰다는 발상에 동의해. - dc App
@ㅇㅇ(1.248) 흥미롭네. 나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시작되는 언어의 추상성 개념을 소쉬르나 퍼스, 촘스키를 따라가며 읽었거든. 다만 이 개념을 비트겐슈타인이 후기에 들어서 비판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어. 네가 이른 두 책 모두 시간 되면 살펴볼게. 다만 언어의 추상성이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다는 것은 조금 과하지 않을까. 학계의 주류 입장이란 게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