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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크래프트에게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정작 본인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게재비로 푼돈을 받는 펄프 작가로 평생 살다가 죽은 사내가 현재 하나의 거대한 계파의 사조로 취급받는다는 데에는 뭇 창시자가 겪는 안타까움이 함께한다. 무언가 진정으로 새로운 것은 결코 당대에는 인정받지 못하며, 시대가 그 새로움을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이미 변화했을 때 더 이상 새롭지 않은 동시대적인 것으로 재차 등장한다. 창시자에 대한 이야기가 늘 고고학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추하는 새로움. 이 현상에 대한 예시와 설명은 참으로 허다한데, 벨벳 언더그라운드가 얼마나 다양한 펑크 하위 장르를 선취했는가와 후대 밴드들의 유명세가 '과거가 현재화되는 사건'(벤야민)이라고 할지 아니면 '현재에서부터 재구성되는 과거'(리오타르)라고 할지는 보는 방식에 따라 다르리라 믿는다. 어느 쪽에서 보든 중요한 것은, 현대에는 꽤나 익숙해지고 널리 퍼진 것이 과거 누군가에 의해 시도되어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러브크래프트의 호러 소설이 어떤 점에서 특별히 새로운 것이었는가는 분명하다. 인간에게 불가해한 우주적 공포. 러브크래프트가 본받고자 했던 에드거 앨런 포가 주로 고딕적 원천으로부터 공포를 자아냈다면, 러브크래프트는 공포 문학이 뿌리 내릴 수 있는 새로운 영토를 가져왔다. 러브크래프트의 글쓰기가 얼마나 투박한지-혹자는 단순히 글을 못 쓴다고 표현한다-와는 별개로 그 성취는 대단하며, 비유하자면 개인 측면에서는 볼품없지만 혼약의 대가로 가문에 엄청난 땅을 들고 온 사위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벗어나면, 러브크래프트의 글 자체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그리 좋지 못하다. 비평가 에드먼드 윌슨이 낸 비평서 <Tales of the Marvellous and the Ridiculous>는 당대 문학계에서 러브크래프트의 글에 보여주던 태도를 요약하며, 현재도 공포 문학 계보의 대표 작가로 꼽히는 스티븐 킹이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러브크래프트의 글쓰기를 꽤나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그 글은 너무 의고적으로 옛 낭만주의 시절을 연상시키며, 대화문은 시체처럼 뻣뻣하기 짝이 없다.
러브크래프트를 옹호한다는 것은 여기서 시작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러브크래프트의 전기를 쓴 S. T. Joshi와 미셸 우엘벡은 (스티븐 킹이 코즈믹 호러의 관점에서 강조한 바 있는) 러브크래프트식 글쓰기의 강점과 매력을 논한다. 그것은 러브크래프트가 다뤄야 했던 주제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형식으로서의 공포 소설과, 그런 공포 소설에서 반드시 필요한 양식의 문제이며, 러브크래프트 본인의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겪었던 감정과 이주민들에 대한 불안 가득한 혐오가 자연스럽게 깃들 수밖에 없다. 우엘벡은 그 스스로도 비슷한 글을 쓰는 작가로서 좀 더 과감한데, 쇼펜하우어와 비슷한 인간혐오자 중 하나로서 러브크래프트의 혐오를 글쓰기의 강한 동력으로 배치하는 동시에 이 혐오를 차별적인 혐오 이상으로, 자신을 배척하는 주류 사회와 이 사회에서 받아들이는 이주민 모두에 대한 혐오로 확장시킨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이 혐오스러운 속성이 자신의 가계도에도 늘 깃들어 있었고, 가장 공포스러운 것이 주위 자연 속에서 이미 함께하고 있었다는 실존적 공포를 여기에 곁들인다. 그는 자신이 혐오하는 모든 이들과 다를 것 없는 사회의 낙오자였고, 그것을 늘 인식하고 있었다.
그레이엄 하먼은 이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러브크래프트를 옹호한다. 러브크래프트는 서구 고딕 문학의 전통을 다루는 에세이 <공포 문학의 매혹>에서 자신을 비롯한 작가들이 공포 문학을 쓸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논했는데, 그러한 방식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일상과는 거리가 먼 공포가 있기 때문이다. 세속적인 글쓰기는 세속적인 것 밖에 표현하지 못하며 공포 문학이라는 형식은 현재까지 문학에서 이 표현 대상에 가장 적합한 형식으로 남아 있다. 하먼은 이 에세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러브크래프트가 표현하고자 한 대상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에 주목한다. 러브크래프트는 사실주의가 오직 현실 일상만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공포 문학 형식을 택했다. 하먼은 이 문학의 변경백과도 같은 공포 문학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있고, 러브크래프트의 글은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표현에 실패한 문학'을 보여주는 메타적인 글쓰기라고 논한다.
이 메타성은 러브크래프트 소설 속 화자가 대부분 일종의 믿을 수 없는 화자와 같다는 가정과 함께한다. 독자는 화자가 들려주는 서술을 통해서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전달받는다. 그러나 화자는 늘 서술에 실패한다. 우리는 화자의 의식이 공포로 인해 산산조각나는 과정을 볼 뿐 아니라, 화자가 언제나 감정적이고 경멸적인 수사법으로 자신의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본다. 화자는 자신이 본 것이 그저 검고 축축하고 길다는 각각의 표현의 합으로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이러한 속성들의 다발을 묶어보는 것뿐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 결과,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단지 경험들의 다발의 연합에 불과하다는 흄의 경험론을 비웃듯, 화자의 서술은 늘 서로 묶여 있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상반되는 속성의 다발이거나, 심지어 그 다발로는 화자가 본 것을 전혀 전달할 수 없는 무언가 빠진 서술로 남는다. 러브크래프트는 우리가 객체로부터 감각으로 경험하는 우연한 감각적 속성만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실재적 속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비스듬하고 거창한 묘사들의 중첩을 통해 이 묘사가 실패하는 것을 보여줬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은 하먼의 <쿼드러플 오브젝트>에 담겨 있겠지만, <기이한>에서 하먼은 러브크래프트를 통해 자신의 객체 지향 존재론을 설명한다. 우리가 결코 닿을 수 없는 심연 속의 실재적 객체, DNA처럼 그 객체의 본질을 결정하지만 우리가 감각으로 포착할 수는 없는 실재적 속성, 우리가 어떤 객체를 경험할 때 떠올리는-아마도 후설의 지향적 대상에 가까울-감각적 객체, 그리고 이 감각적 객체가 매 감각마다 다르게 띠는 감각적 속성. 엄밀히 말해 하먼이 러브크래프트를 본보기로 잡은 것이 부자연스럽지는 않은데, 러브크래프트가 우주적 존재를 다루고자 사용한 방식을 하먼은 그저 모든 객체에 확장시켰을 뿐이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하먼이 러브크래프트를 하이데거의 횔덜린과 같은 작가로 부르는 것도 일리가 있다. 하이데거가 횔덜린의 언어에 주목하며 현존재와 사물을 논하듯, 하먼은 러브크래프트의-데리다의 차연처럼-미끄러지는 언어에 주목한다. 우엘벡이 실존했던 초라한 공포 소설가 러브크래프트의 실존적 공포를 다뤘던 것보다 판돈을 상당히 높힌 셈인데, 나는 이런 하먼의 비평에 동의한다.
다만 문학 비평으로서는 <기이한>의 신뢰도를 좀 하향할 필요가 있다. <기이한>은 러브크래프트의 대표작 8편에서 러브크래프트의 언어 사용을 잘 보여주는 예시 100개를 인용해 분석하는데, 여기에서 하먼의 메타적 시선이 문학 비평이라고 하기에는 과하게 남용되는 순간이 많다. 예를 들어, 화자의 너무나 평범한 부르주아적 시선, 부르주아적 감수성, 부르주아적 시선을 보여주며 이 화자가 실재하는 공포를 전혀 믿을 수 없는 범속하게 보수적인 화자라는 점을 지적할 때나, 웃음이 나올 정도로 과도하게 경멸적인 차별적 묘사를 사용하는 화자가 마찬가지로 그 스스로의 주관성을 강하게 내비치며 믿을 수 없는 화자로서의 면모를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할 때가 많다. 전자는 그럴듯하다. 무서운 것을 그저 무섭다고 표현하는 것보다 이것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던 화자가 점차 광기에 빠지는 모습을 보여주며 공포를 표현하는 방식은 실제로 공포 문학에서 효과적이다. 후자는 전혀 그럴듯하지 않다. 러브크래프트는 여러 편지가 보여주듯 꽤나 진심으로 이런 표현을 썼을 것이고, 그 차별적 화자를 무시할 수 있는 화자로 취급하는 것은 반어적으로 러브크래프트를 무시할 수 있는 작가로 취급하는 것이나 다를 게 없다.
그렇다면 <기이한>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기이하게도 <기이한> 자체가 러브크래프트라는 객체를 하먼의 존재론처럼 다루고 있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하먼은 러브크래프트의 글을 제외한 그의 삶을 거의 거론하지 않으며, 러브크래프트의 글 속 화자의 서술과 묘사만을 통해 러브크래프트의 철학을 분석한다. 물론 우리는 러브크래프트라는 사람을 어느 정도-<기이한>에서 가려지는 것보다는 더 많이-알고 있다. <기이한> 속 러브크래프트는 어떨 때는 부르주아적이고 어떨 때는 반-부르주아적이며, 사실 대체로 동시에 그렇다. 또한 <기이한>에서 설명하는 러브크래프트의 글쓰기의 속성이 그것만으로 러브크래프트의 본질을 포착하지도 못한다. 아마 <기이한>은 일종의 메타-비평서라고 할 수 있을 테다. 자신이 비평 대상으로 삼은 글에서 분석으로 끌어낸 속성들이, 그대로 그 분석을 구성하고 있는. 상당히 흥미로운 책이다.
그래서 비평 대상인 러브크래프트의 글을 저자인 하먼이 자신의 철학(OOO)를 설명하는 용도로 사용하면서, 동시에 문학적으로 분석해서 메타-비평서인 건가…?
아니 그 분석이 미묘하게 객체 러브크래프트한테 도달하지 못하고 미끌어진다는 점에서
@수고양이무어 ㅇㅎ ㄱㅅㄱㅅ
이런 평이 온라인 서점에 있다면 바랄게 없겠네.
어려울 건 없어서 알라딘에도 올림
@수고양이무어 ㄱ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