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조이스는 오늘날 너무나도 즐겁고, 야하고, 독서 초보자들이 읽기 좋은 유익한 소설들로 유명하지만,
사실 본인은 대가들이 그러하듯, 굉장히 기괴한 인간이었다.
그가 <율리시스>를 연재했던 잡지 <리틀 리뷰>가 있다.
이 잡지를 만든 마거릿 앤더슨은 모더니즘의 훌륭한 공헌자인데, 그녀는 잡지를 만들며 한 가지 슬로건을 매 호마다 내걸었다.
[대중의 취향과는 타협하지 않는다]
이 슬로건은 모더니즘을 상징하면서도, 조이스를 상징하는 문구이기도 하다.
조이스는 말 그대로 타협하지 않는 고집불통이었다.
더블린 중산층에서 태어난 조이스는 어린 시절부터 문학에 재능을 보이면서도 기괴한 고집을 보여준다.
조이스의 문학적 재능을 보여주는 일화는 9살 때부터다.
그가 9살 때, <힐리, 너마저?>란 제목의 정치 시를 썼는데, 그럴싸한 시를 9살 꼬마가 썼다는 것이 조이스의 아버지는 너무 기특하게 여긴 나머지, 자비출판을 하여 주변에 뿌린다.
안타깝게도 오늘날까지 이 자비출판한 책은 전해지지 않아 시를 알 순 없지만, 조이스 연구자들 사이에서 '잃어버린 성배' 취급을 받으며, 이 책이 발견되면, 최소 수십만 달러에 거래될 수 있을 거라고 추정된다.
아무튼 어릴 적부터 조이스는 무언가 비범한 모습을 보여준다.
청소년 시절 조이스는 셰익스피어 이후 가장 위대한 극작가 입센 덕질을 시작하였고, 공교롭게도 그때 입센은 아직 살아있었다.
문학에 심취했던 조이스에게 있어 입센은 그 비범한 수염만큼 살아있는 신이었고, 조이스는 어떻게든 이 신과 친분을 쌓고 싶었다.
어린 조이스는 입센의 작품이 번역되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여 노르웨이어를 독학으로 익히곤, 입센에게 노르웨이어로 팬레터까지 보내서 답장까지 받아낸다.
여러모로 성공한 오타쿠의 표본일 것이다. 거기에 조이스의 언어적 재능을 보여주는 일화일 것이다.
이 언어적 재능으로 그는 훗날 수십 개의 언어를 <피네간의 경야>에 쏟아낸다.
이런 기묘한 성장 속에서 대학생이 된 조이스는 의사가 되는 것을 시도하는 등 방황을 겪으면서도, 글을 쓰는 것은 멈추지 않는다.
이미 이 당시부터 예술에 관해선 자신의 의견을 절대 타협하지 않는 고집불통을 보여주는데, 대표적으로 예이츠와의 만남이 그걸 보여준다.
이제 막 20살이 된 조이스는 그 당시 아일랜드의 중견 시인 중 한 명의 집으로 찾아간다. 물론 서로 직접 만난 적도 없고, 미리 약속을 잡은 것도 아니었다.
뜬금없이 새벽에 찾아가선, 자던 시인을 깨우더니, 대학생 조이스는 자신이 쓴 시 원고를 그에게 보여주었다.
화가 날 법도 하였지만, 이 시인은 그 원고를 찬찬히 살피며 이 무례한 청년이 뜻밖에 재능이 있다는 걸 깨닫곤, 그를 곧바로 예이츠에게 소개시켜준다.
예이츠는 오늘날까지 가장 위대한 시인 중 하나로 평가되지만, 이 당시 아일랜드에서의 예이츠의 위상은 남달랐다.
영국에서조차 성공적인 중견시인이었지만, 아일랜드에서 예이츠는 독립운동가이자 아일랜드 민족 예술과 문학을 보존하는 중심이었다.
재능 있는 아일랜드 청년이 있다는 말에 예이츠는 아일랜드 문화를 부흥하려는 지식인 답게 제임스 조이스라는 청년과 만난다.
그리고 뜬금없이 첫 만남에서 조이스는 예이츠가 얼마 전 썼던 예술에 관한 견해를 두고, 키배를 뜬다.
예이츠가 회고하기를, 서로 의견을 굽힐 기세를 보이지 않던 도중, 뜬금없이 조이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삿대질을 하며 외쳤단다.
"당신 지금 몇 살이야?"
"어? 어....사십 좀 넘었지?"
이걸 또 호구 같이 대답해준 예이츠에게 한숨을 내쉬며 조이스는 뒤돌았다.
"존나 늙었네. 더 이상 떠들어봤자 소용없겠네. 난 간다."
예이츠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감상을 쓰진 않았지만, 이후 그의 행적에서 짐작할 수 있다.
내게 뺨을 때린 건 네가 처음이야, 같은 감동이라도 받았는지, 예이츠는 이후로 이 당돌한 젊은이를 도우며, 그를 에즈라 파운드에게도 소개하고, 조이스는 파운드 등의 지원을 받으며 작가로서 먹고 살 수 있게 된다.
조이스의 막가는 성향은 그의 아내이자 뮤즈였던 노라 바나클과의 일화에서도 드러난다.
오늘날도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를 하며 자식을 낳는 것은 파격적이게 느껴지는데, 조이스는 이걸 20세기 초, 아일랜드에서 실행했다.
아일랜드는 극도로 보수적인 카톨릭 국가고, 조이스의 글에 외설적인 표현이 있다는 이유 만으로 성난 더블린 시민들이 조이스의 책을 보관하던 창고를 손수 태우던 곳이다.
물론 나중에 노라를 위해서 결혼을 했지만, 이미 자식들도 다 컸을 때였고, 이런 일을 태연하게 아일랜드 조까라며 실행한 조이스의 기묘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더블린 시민들과 조이스의 일생을 건 투쟁 또한 그의 작가적인 고집을 잘 보여주는 일화일 것이다.
조이스는 언제나 아일랜드의 독립운동이 과격화되고, 과도하게 민족주의적이게 되는 것을 경계하며 비판했다.
이는 당시 대부분의 아일랜드인들에겐 탐탁지 않았는데, 거기에 조이스는 장작을 넣으며 더블린 시민들을 소재로 한 소설들을 쓰기 시작한다.
부도덕한 카톨릭 신부나 아일랜드 소시민들의 기묘한 일상 등을 그대로 드러내는 걸 더블린 사람들은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이 당시 더블린 시민들은 극장에서 공연되는 연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거리로 뛰쳐나가 반영 폭력 시위를 벌이던 사람들이다.
자연스럽게 조이스는 아일랜드를 떠나 '자기-유배'를 떠나게 되었고, 더블린 시민들은 조이스의 책을 인쇄하는 인쇄소를 습격하고, 서점으로 갈 준비를 마친 그의 책들을 불태우는 일을 반복한다.
물론 파리 등에서 살며 조이스는 계속 더블린 사람들을 소재로, 그들의 신경을 건드는 글을 계속 썼다.
이 인간은 미국에서 검열을 하겠다고 하자, 외설적인 요소를 2배로 늘리던 인간이다.
물론 조이스와 아일랜드 사이의 기나긴 투쟁은 조이스의 승리로 끝났다.
가장 마지막까지 <율리시스>를 판매금지하고, 조이스가 죽었던 당시, 그의 유해가 조국으로 돌아가는 것까지 거부했던 아일랜드는----
제임스 조이스가 국제적인 아이콘이 되고, 조이스 순례를 위하여 더블린으로 찾아오는 수많은 덕후들의 돈에 이기지 못한 채,
오늘날 더블린 곳곳에 조이스 동상, 기념 박물관을 세워두곤, <율리시스>의 배경이 되는 6월 16일을 '블룸스데이'라는 거의 국경일에 가까운 행사를 하며 관광객의 돈을 끌어모으고 있다.
보수적인 카톨릭이라도 돈 앞에선 종교고 나발이고 아무 것도 없다.
무엇보다 조이스는 글을 써서 돈을 버는 것 말고는 다 잘 하는 인간이었다.
그는 프로급으로 노래를 잘 불러서 학생 시절, 생활비를 번 적도 있고, 그의 아내 노라는 차라리 가수가 되기를 원할 정도였다.
거기에 외국어를 배우고, 가르치는데에도 능통하여, 이탈리아에서 거주할 당시, 이탈로 스베보라는 사람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생활비를 벌기도 하였다.
어느 날 스베보가 친해진 조이스에게 묻는다.
"조이스야, 너 사실 작가라며?"
"그렇지."
"헤헤...사실 나도 젊을 때 작가를 꿈꿔서 어떻게든 소설을 출판은 했는데,,...망했어."
"그래? 뭐 썼는데? 한 번 보자."
"아니, 그..볼 정돈 아닌데?"
"야, 너 개쩌는데? 넌 계속 작가 해야한다!"
"그...그래? 쑥쓰럽네. 사실 이번에 <제노의 의식>이란 제목으로 계속 쓰는 게 있는데-"
"이게 더 쩌네, 내가 홍보도 해줄 테니까, 꼭 완성해서 출판해라!"
이렇게 제임스 조이스의 응원으로 자신감을 회복한 이탈로 스베보는 <제노의 의식>을 무사히 출판하였고, 모더니즘 연구자들을 괴롭히는 연구과제가 된다.
조이스가 행한 악행 중 하나일 것이다.
참고로 이후 스베보는 <율리시스>에서 레오폴드 블룸의 모델이 된다.
이렇게 막나가던 조이스에게도 끝내 죽음은 찾아오게 된다.
이미 <율리시스>와 <피네간의 경야>로 문학의 신이 되었던 조이스는 스위스에서 입원하여 여러차례 정신을 잃는 등 죽음에 직면한다.
이 대가가 마지막에 무슨 말을 남겼는지는 안타깝게도 전해지지 않는다.
조이스가 마지막으로 쓰러졌을 당시, 그의 아내 노라는 의사를 부르러갔고, 아무도 없는 사이, 조이스는 그대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하지만 노라와 조이스의 가족들이 적어도 마지막으로 들은 조이스의 사실상의 유언은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정말....아무도 이해 못하는 거야?"
조이스는 자신의 최후의 대작 <피네간의 경야>가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한다는 것을 죽을 때까지 이해하지 못하였다.
아니, 이걸 왜 이해 못하지? 왜?
조이스는 그렇게 가족들에게 의아해하며 묻곤 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조이스도 이해하는 <피네간의 경야>를 다 같이 읽음으로서 이 황소고집 아일랜드 대가와 같은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어떠할까?
모더니스트의 기묘한 모험
- 20세기 최고 시인 예이츠의 환상록과 자서전 읽으쉴?
- <율리시스>는 어떻게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책이 되었는가?
진짜로 개또라이라서 개같은작품만 썻던거구나
정성보소
나는 지금 월리엄포크너 '소리와분노'도 소화못하겠는데 피네간경야 는 너무 큰 산이다.
다음엔 프루스트 얘기 해주삼
글을 너무 재밌게 잘쓰시네요
남다른 천재이긴 했나보네 저런 성격, 저런 일화 속에서 인정받았다니 - dc App
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모더니스트 시리즈 재밌다 야
단숨에 읽었다 ㅋㅋㅋ개꿀잼
꿀잼
훌륭한글인데 재미두있네 - dc App
님님 무질 관해서는 무슨 썰 없음??
조이스는 막나가는 일화가 진짜 많습니다. 대표적인 게 '파리똥' 일화... 율리시즈 17장은 모든 문장이 의문형 문장과 물음표(?), 그 다음에 대구를 이루는 답형 일반문장 마침표(.)로 끝나는데, 율리시즈 17장 맨 마지막 문장이 "어디로(Where) ?" 가 나온 후 그 다음에 아무런 문장없이 마침표(.)가 바로 나오면서 챕터가 끝납니다. 인쇄업자는 원고 중에 문장 없는 마침표를 잉크 얼룩인 줄 알고 삭제하였는데, 이것을 발견한 제임스 조이스가 "내 파리똥 어디 갔냐?"면서 시비를 걸며 펄펄뛰며 화를 내어서, 질려버린 출판사가 "그 파리똥 인쇄해 줄께"라고 하면서 물러섰죠. 더 웃긴 것은 범우사 율리시즈 2판 번역본 17장 마지막 부분에 이 파리똥 마침표가 사라졌다는 겁니다(범우사 번역본 초판에는 있음)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