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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연대’란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군대에서 간부들이 흔히 들먹거리는 연대책임, 집안을 망하게 하는 연대채무, 흔히 말하는 연대는 과도하게 개인의 책임을 무한정 넓히려 든다.
뿐만 아니라 ‘연대하라’는 슬로건은 ‘나는 옳다. 내 말을 따라라. 따르지 않으면 너는 그른 것이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폭력을 합법적이고 정의로운 것처럼 둔갑하려 드는 과감하지만 주제넘은 시도다. 인간을 지배하고 착취하려는 권력욕이 연대란 이름을 빌어 ‘좋은 것’으로 둔갑해 옥죄려는 시도가 진실되지 못하고 가증스럽기 그지없다.
스베틀라나 알렉셰이비치의 <아연 소년들>은 냉전 시기의 소련의 ‘연대’란 이념에 착취당한 소련인들의 이야기다.
아프가니스탄엔 사회주의 괴뢰정권이 들어섰으나, 사회주의는 깊이 뿌리내린 알라의 이념과 조화를 이룰 수 없었다. 신의 가르침과 배치되는 사회이념은 심각한 위험에 직면한다. 궤를 같이 하는 체제에 대한 맹목적인 ‘연대’의식은 소련으로 하여금 1979년부터 1989년 10년 동안 수많은 소련인을, 살아생전 보지 못했을 아프가니스탄의 강렬한 태양이 내리쬐는 사막으로 몰아넣는다.
수많은 군인들(일부 지휘관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군사학교를 갓 졸업하거나 재학중인 학생들로 18세 언저리의 소년이었다), 군대에서 필요한 일을 할 민간인 복무자들까지.
그들이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통해 바란 건 무엇이었을까? 누군가는 권태로웠던 생활에 새로운 자극을 주기 위해, 누군가는 국가에 대한 충성을 위해, 누군가는 극한 상황에서 드러날 진정한 자기 자신을 만나기 위하여, 자신만의 동기를 위해, 자신의 삶을 위해, 삶을 파고든 자신만의 강렬한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부푼 기대를 끌어안고 머나먼 땅으로 향했다는 사실에는 다름없다.
그들은 죽고 죽이며, 죽어간다. 종전 후 귀향하고 나서야 존재들은 살아있음을 체감했을 테다. 목숨은 구@원받았음에도 존재들은 아직도 구@원받지 못했다. 인간의 근원적인 허무 ㅡ 그들은 왜 죽고 죽였는지, 서늘한 아연관에 담긴 뜨거운 피의 의미와 간신히 존재하는 자들이 행했던 의미는 무엇인지, 그들의 가족들은 왜 사랑하는 가족을 잃게 되었는지, 그리고 체제의 폭정에 맞서 싸운 아프가니스탄인들의 희생의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ㅡ 는 그 어떤 것도 환하게 밝힐 수 없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지독한 허무, 가장 치열한 극한 상황에서 왜 그들이 그래야만 했는지 의미를 깨닫지 못한 채, 그들의 존재는 여전히 멈춰있음에도 시간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흘러 지금에 이르렀다.
그들은 존재가 멈춰있음을 넘어 존재하지 않았음을 강요받는다. 그들은 아프가니스탄 파병은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당의 비판을 더해 이국만리의 땅에서 죄없는 타국민을 살해한 잔혹한 살인귀, 어떤 대의도 없는 의미 없는 살생을 저지른 부정한 존재로 매도당한다. 그들을 향한 폭력은 아직도 멈춰지지 않았다. 존재는 부정의한 것으로, 사회에 의해 부정당한다. 그들은 과거에 잊혔어야 할, 더 나아가 원시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어야만 했다.
그러나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과거의 존재들을 결코 잊지 않는다. 잊혀야 할 존재들의 목소리를 통해 과거를 불러온다. 멈춰있던 과거는 현재의 시간에서 되살아난다. 우리는 과거 존재들을 상상한다. 상상은 과거의 존재들을 현실로 만든다. 스베틀라나는 멈춰있는 잊혀진 과거들에 숨을 불어넣는다. 스베틀라나의 숨에 따라 우리는 그들이 존재했음을, 그들이 삶의 근원을 부정당하고 공허의 심연 속에 살아 숨쉬고 있음을 안다.
스베틀라나의 작업은 상상을 현실로 만들고, 우리에겐 생경한 사실, 상상의 영역에서나 가능한 진실을 낭만적인 꿈과 같은 나른한 있을 법한 사실이 아니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지독한 현실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잊혀야 할 존재들은 잊히지 않고 살아 있다.
이 책에 전면적으로 등장하는 연대는 폭력의 또 다른 이름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연대’ 속에서 진정한 연대가 피어난다. 그것은 권력욕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존재를 진정으로 알고 그 존재의 고통에 공감할 때만 발생하는 특이한 감정이자 욕구다.
그들의 고통은 나에게 전이되어 내가 그 고통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심정과 같이 그들도 그 고통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심정, 그것이 진정한 연대의 씨앗의 시작임은 틀림 없다.
고통받는 존재들은 살아 있고 나는 그들의 고통을 느낀다. 그들의 고통은 상상 속의 관념을 넘어 현실 속의 고통이 되어 목을 옥죈다.
그들은 삶의 의미의 공허 속에서 시들시들하지만 그들이 심은 고통의 씨앗은 영원할 것이고 그 고통이 살아 숨쉬는 한 그들을 향한 진정한 연대는 앞으로도 불멸할 것이다.
꽃은 질지언정 영원히 지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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