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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삶에서 있었던 몇 일화들이나 자기 생각들을 세 네 페이지 정도로 적어 모은 에세이

좋아하는 여자애의 관심을 사기 위해 다 익지도 않은 수박을 따서 바친 일화라던가

책장 밑이나 장롱 밑을 장대로 쓸어 버려진 잡동사니를 모으던 일화라던가

호텔에서 길을 잃은 이야기 등 단편소설로 바꿔도 괜찮을 듯한 일화가 많았음


가끔 일제강점기 시대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무래도 직접 겪으신 분 답게 생생하게 그 시절 분위기가 느껴졌음

내용도 이해 못하는 군가를 외우고 옥쇄를 했다 하면 울고 어딜 점령했다 하면 웃고

집집마다 놋그릇을 공출해간다는 말에 자기 그릇이 총탄이 되어 적병을 쏘아 죽인다니 얼마나 멋지냐며 부모님 앞에서 환호한다던가

이순신이 임진왜란 때 일본군을 물리쳤다는 이야기를 할머니에게 듣자 "일본하고 우리는 같은 나라인데 어떻게 싸워요?" 하고 묻는다던가

그런 일화들을 보면 확실히 이어령쌤이 옛날 사람이셨구나 하고 느껴졌음

이어령쌤 보면 굉장히 냉철한 거 같은데 한편으로는 꽤나 감성적이신 분 같음


기억에 남았던 문장들


부름 소리! 짐승들은 다만 포효할 뿐이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부르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다.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싸움은 다만 흉터와 기억을 남기고 간다. 평범한 것을,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것을. 사랑하기 위해 사람은 싸워야지. 그래서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두 번 다시 똑같은 강물 속에 서 있을 수 없다. 물이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도 그런 것이다. 우리는 같은 현실 속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회자정리 생자필멸이란 불가의 말이 있다. 그러나 이 말을 뒤집어 생각하자. 헤어지는 것이 있기에 우리는 만나는 기쁨을 알고, 죽음이 있기에 생명을 느낄 수 있다고.....


타인과 영원히 같이 걸을 수 있는 '길'이란 없다. 혼자 걸어야 하는 길. 미아처럼 울면서 혼자서 찾아다니는 길. 그것이 바로 고독한 인간의 자아일는지도 모른다.


이름 짓는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고, 존재를 승인한다는 것이고, 홀로 있는 것을 우주의 모든 것과 관계 짓는다는 것이다.

이름 짓는다는 것—시인은 아담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시간 속에 먹혀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시간을 적극적으로 내 생명 안으로 끌어들인다는 것이다. 그것이 슬픔이든 고통이든 늙음이든 한 사발의 떡국처럼 먹어버릴 때, 이미 그것은 내 신선한 혈관 속의 한 핏방울이 된다.

당신도 시간에 먹혀서는 안 된다. 시간을 꿈의 이로, 의지의 이로 깨물어야 한다. 삼켜야 한다. 혓바닥으로 새로운 시간들을 맞이해야 한다. 

'먹는다'라는 말. 야생적인 이빨의 언어로 새해를 맞이해야 된다. 새해 첫날 새벽에 쏟아지는 그 찬란한 햇빛의 시간을 눈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송곳니로 씹어야 한다.



백지의 공포, 그것은 자유를 직면했을 때 공포다. 무한한 가능성 앞에서도 우리는 그것을 다 채우지 못한다. 한정되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정복할 수 있을까? 저 무한을. 신이여 나에게 무한한 욕망을 주신다면 나는 왕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나 지금 왕들은 모두 죽어가고 있습니다.


신이여! 많은 것은 원치 않습니다. 다만 약한 자를 괴롭히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일생을 주시옵소서.


별들은 자기 위치를 알1리기 위해서 심연과 같은 우주 속에 빛난다. 그러나 별빛은 너무나 먼 거리를 거쳐서 다른 별과 교신하고 있기 때문에 그 빛의 속도와 굴절은 하나의 오해를 만들어낸다. 별빛의 근원에 있는 것은 영원히 타자와 단절된 고독의 광망이다. 별은 혼자서 잠든다.


저항을 느낄 때 우리는 생명을 느낀다. 쇠락해 가는 생명들을 우리는 그 저항 속에서 연명해 간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하나의 공간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조그만 이파리 위에 우주의 숨결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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