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 철학과 카뮈 사상을 대충은 알고 읽어야 이해가능한거 아님? 이게 왜 입문으로 추천 되는지 모르겠음
시지프 신화 이것도 절대 초보자가 읽기 쉬운 책도 아니고
댓글 23
카뮈 철학애 한번 빠지니까 인생을 다시 보게되었음. 헤어나오질 못해 - dc App
익명(118.235)2025-12-13 11:59
입문용으론 별로긴 하지 - dc App
축두형(as7789)2025-12-13 11:59
얇아서
익명(220.125)2025-12-13 12:04
되게 쉬운데...
익명(221.164)2025-12-13 12:33
읽기 좋아서
책은도끼다(sungyue)2025-12-13 12:49
나도 입문용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함
창궁(escaliof1603)2025-12-13 12:59
답글
그럼 뭘로 입문함
익명(grass6339)2025-12-13 13:40
답글
@ㅇㅇ
오헨리
창궁(escaliof1603)2025-12-13 13:41
안 두껍고 문장차력쇼 없고 상황 자체는 이해돼서 쉬워 보이는 게 있고
한국에서 적당한 타이밍에 유명해지고 추천도서로 돌다 보니 그냥 쭉 관성..
실존적 방황에 빠진 20대 감성에 맞는 책이랄 순 있는데 입문자용 책은 절대 아니지.
imaso(rmfwldna)2025-12-13 13:33
솔직히 읽고나서 이새끼 왜 이렇게 사냐? 갑자기 왜 쏘냐? 하다가 마지막 신부하고 맞다이 뜬 것만 기억남
어느정도 투명성이 있어야 입문용이라 할 것인데 이 책은 너무 불투명함
솔직히 부조리에 대한 반항이라는 점을 알고 보더라도 그다지 와닿지 않고
표면 자체만으로도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으나 그래서 어쩌라고 질문을 달고 사는 사람이라면 조금..
익명(prefer7578)2025-12-13 13:38
답글
지금 생각해도 전적인 부정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음. 지금도 잘 이해한 것인지 모르겠는데, 대강 그 자체로 절대적인 것은 없으나 사회관습적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들은 마치 그것이 절대적인 것처럼 된다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이지 않을까 싶음. 당연한 게 없는데 너넨 왜 그게 당연하다 생각하느냐는 식의.
근데 그럴거면 그냥 자살하지 왜 살음? 이 지금의 생각임.
데카르트의 전적인 회의도 스스로 방법적인 것이라 칭했고, 또 그건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한 비겁함에 불과한 것도 아님.
후기 비트겐슈타인 말처럼 그게 우리 삶인데 어떡하겠어. 살기 위해선 뭔가를 의심없이 받아들임이 피할 수 없는 것인데, 모든 것은 절대적이지 않다고 하며 회의를 던지는 것은 그리 설득력 있는 것인지 모르겠음. 던져볼 수야 있지.
익명(prefer7578)2025-12-13 13:43
답글
니체적 초인이야 보편화정식을 무시하면 되는데, 그 초인 역시 영리하지 않은 초인은 죽을 수밖에 없지. 개똥철학 설파하는 정신 반쯤 나간 사람마냥 현실에서 괴리된 니체가 제시한 초인의 껍데기만 따르는 사람은 그다지 초인으로 보이지 않기도 하고. 물론 이는 니체적 초인이 아니라, 그냥 초인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오는 느낌이 앞의 것에 침투한 것일 수도 있겠다만..
그런 종류의 인간 역시 초인이라 한다면 니체에 동의하진 않을 거임.
일단 살아야 뭐라도 되든지 하든지 할 거 아니야. 근데 뫼르소는 딱 그런 인물로 보인다는 거임. 이새끼는 걍 살려는 생각이 없음. 살려는 생각이 없는 사람은 관습 싹다 무시하고 햇볕 내리쬔다고 잘 놀고 있는 아랍인 쏴죽여도 무방하지.
익명(prefer7578)2025-12-13 13:47
답글
근데 그런 인간이 어떤 귀감을 줄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는 거임. 그런 인간의 그런 반항으로 우리 삶이 부조리한 것이며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에 설득된다고? 애초에 동류의 인간이었던 경우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하지. 내가 보기에 뫼르소나 홀든 콜필드나 그냥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애새끼의 헛짓거리로만 여겨짐.
물론 이런 입장을 사회에 절여졌다 할 수야 있겠지. 그러나 나는 동시에 싱클레어나 면도날의 래리의 삶에 동의를 표하는 바임. 그런 종류의 삶은 긍정될 수 있음. 그레이 같은 인물에게 그들의 삶은 답답한 것이겠으나, 그들은 일단 삶을 받아들여 거기 안에서 살아가기는 하거든. 통습적인 삶의 방식에 동의하지 않을 필요가 있고 그러한 삶이 더 위대하다는 건 매우 동감함. 그러나 뫼르소나 콜필드의
익명(prefer7578)2025-12-13 13:51
답글
방식은 잘 모르겠다는 것. 전적인 부정은 곧 삶의 부정이며, 현존하고, 내가 현재 정박하고 있는 삶의 태양을 벗어던지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음. 그러한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신이거나 짐승이거나 둘 중 하나인 것이고.
익명(prefer7578)2025-12-13 13:56
답글
뫼르소에게 좀 우호적인 평을 내려준다면 시지프신화에서 말하는 철학적 자살을 감행한 인물 혹은 시지프 같은 인물이라고도 평할 수 있긴 할듯. 그가 적극적으로 철학적 사고를 수행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이고 그 결과를 수용했다는 점에서. 옥탑방에서 내려와 삶의 세계를 감내하며 살아가는 것만이 시지프의 돌굴리기 아니고 자살을 택하는 것 역시 하나의 돌굴리기일 수 있다는 메세지를 던진 것인가?
익명(prefer7578)2025-12-13 13:58
짧다고?????
익명(grass6339)2025-12-13 13:39
첫문장빨이 큰 듯
익명(106.241)2025-12-13 13:56
그거 이해하기가 뭐 어렵다고
익명(211.234)2025-12-13 14:01
글쓴이에 동감함. 카뮈의 철학을 알아야지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소설임
익명(210.99)2025-12-13 14:36
프랑스령 알제리란 사회배경에서 아랍인에 대한 부조리를 현대 한국인이 무슨 수로 읽어내.
익명(182.212)2025-12-13 18:33
답글
'부조리의 예수'인 뫼르소로 읽어내는 것도 힘들텐데 그러한 뫼르소 조차 아랍인에 대한 부조리함을 어떻게 해석하고 자신의 경험에 합치시킬 수 있냐고...
익명(182.212)2025-12-13 18:33
답글
스스로 쉽게 맥락을 읽어내서 재해석한 정보로 소소한 감동,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책이 독서에 재미붙이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함.
카뮈 철학애 한번 빠지니까 인생을 다시 보게되었음. 헤어나오질 못해 - dc App
입문용으론 별로긴 하지 - dc App
얇아서
되게 쉬운데...
읽기 좋아서
나도 입문용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함
그럼 뭘로 입문함
@ㅇㅇ 오헨리
안 두껍고 문장차력쇼 없고 상황 자체는 이해돼서 쉬워 보이는 게 있고 한국에서 적당한 타이밍에 유명해지고 추천도서로 돌다 보니 그냥 쭉 관성.. 실존적 방황에 빠진 20대 감성에 맞는 책이랄 순 있는데 입문자용 책은 절대 아니지.
솔직히 읽고나서 이새끼 왜 이렇게 사냐? 갑자기 왜 쏘냐? 하다가 마지막 신부하고 맞다이 뜬 것만 기억남 어느정도 투명성이 있어야 입문용이라 할 것인데 이 책은 너무 불투명함 솔직히 부조리에 대한 반항이라는 점을 알고 보더라도 그다지 와닿지 않고 표면 자체만으로도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으나 그래서 어쩌라고 질문을 달고 사는 사람이라면 조금..
지금 생각해도 전적인 부정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음. 지금도 잘 이해한 것인지 모르겠는데, 대강 그 자체로 절대적인 것은 없으나 사회관습적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들은 마치 그것이 절대적인 것처럼 된다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이지 않을까 싶음. 당연한 게 없는데 너넨 왜 그게 당연하다 생각하느냐는 식의. 근데 그럴거면 그냥 자살하지 왜 살음? 이 지금의 생각임. 데카르트의 전적인 회의도 스스로 방법적인 것이라 칭했고, 또 그건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한 비겁함에 불과한 것도 아님. 후기 비트겐슈타인 말처럼 그게 우리 삶인데 어떡하겠어. 살기 위해선 뭔가를 의심없이 받아들임이 피할 수 없는 것인데, 모든 것은 절대적이지 않다고 하며 회의를 던지는 것은 그리 설득력 있는 것인지 모르겠음. 던져볼 수야 있지.
니체적 초인이야 보편화정식을 무시하면 되는데, 그 초인 역시 영리하지 않은 초인은 죽을 수밖에 없지. 개똥철학 설파하는 정신 반쯤 나간 사람마냥 현실에서 괴리된 니체가 제시한 초인의 껍데기만 따르는 사람은 그다지 초인으로 보이지 않기도 하고. 물론 이는 니체적 초인이 아니라, 그냥 초인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오는 느낌이 앞의 것에 침투한 것일 수도 있겠다만.. 그런 종류의 인간 역시 초인이라 한다면 니체에 동의하진 않을 거임. 일단 살아야 뭐라도 되든지 하든지 할 거 아니야. 근데 뫼르소는 딱 그런 인물로 보인다는 거임. 이새끼는 걍 살려는 생각이 없음. 살려는 생각이 없는 사람은 관습 싹다 무시하고 햇볕 내리쬔다고 잘 놀고 있는 아랍인 쏴죽여도 무방하지.
근데 그런 인간이 어떤 귀감을 줄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는 거임. 그런 인간의 그런 반항으로 우리 삶이 부조리한 것이며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에 설득된다고? 애초에 동류의 인간이었던 경우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하지. 내가 보기에 뫼르소나 홀든 콜필드나 그냥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애새끼의 헛짓거리로만 여겨짐. 물론 이런 입장을 사회에 절여졌다 할 수야 있겠지. 그러나 나는 동시에 싱클레어나 면도날의 래리의 삶에 동의를 표하는 바임. 그런 종류의 삶은 긍정될 수 있음. 그레이 같은 인물에게 그들의 삶은 답답한 것이겠으나, 그들은 일단 삶을 받아들여 거기 안에서 살아가기는 하거든. 통습적인 삶의 방식에 동의하지 않을 필요가 있고 그러한 삶이 더 위대하다는 건 매우 동감함. 그러나 뫼르소나 콜필드의
방식은 잘 모르겠다는 것. 전적인 부정은 곧 삶의 부정이며, 현존하고, 내가 현재 정박하고 있는 삶의 태양을 벗어던지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음. 그러한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신이거나 짐승이거나 둘 중 하나인 것이고.
뫼르소에게 좀 우호적인 평을 내려준다면 시지프신화에서 말하는 철학적 자살을 감행한 인물 혹은 시지프 같은 인물이라고도 평할 수 있긴 할듯. 그가 적극적으로 철학적 사고를 수행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이고 그 결과를 수용했다는 점에서. 옥탑방에서 내려와 삶의 세계를 감내하며 살아가는 것만이 시지프의 돌굴리기 아니고 자살을 택하는 것 역시 하나의 돌굴리기일 수 있다는 메세지를 던진 것인가?
짧다고?????
첫문장빨이 큰 듯
그거 이해하기가 뭐 어렵다고
글쓴이에 동감함. 카뮈의 철학을 알아야지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소설임
프랑스령 알제리란 사회배경에서 아랍인에 대한 부조리를 현대 한국인이 무슨 수로 읽어내.
'부조리의 예수'인 뫼르소로 읽어내는 것도 힘들텐데 그러한 뫼르소 조차 아랍인에 대한 부조리함을 어떻게 해석하고 자신의 경험에 합치시킬 수 있냐고...
스스로 쉽게 맥락을 읽어내서 재해석한 정보로 소소한 감동,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책이 독서에 재미붙이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함.
이방인은 그런 책에 부합되지 않음. 그냥 으레 추천하는 책이라서 언급되는게 아닌가 싶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