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극장에서 가장 볼만한 영화는 아는 사람은(만) 안다는 영화 졸라 잘찍는 감독 미야케 쇼의 <여행과 나날>이 아닌가 싶읍니다.
디시에 번역돼서 올라온(https://m.dcinside.com/board/comics/645793?page=1&s_pos=-648707&s_type=name&serval=%EC%8B%9C%EB%85%B8%EC%82%AC%EC%99%80)츠게 요시하루의 만화 두편을 원작으로 하는데, 두가지 이야기가 서로 기가막히게 호응하도록 절묘하게 엮어냈습니다만 그 각색 스킬이 전혀 까다롭지 않아서 대단하더랍니다.
미야케 쇼는 하스미 시게히코라고 자기 취향이 정답이 되도록 판을 이끄는 미친 괴물이 강력하게 지지해줘서, 세뇌된 한일 양국 영화광에게 기대를 많이 받는 감독인데, 이 감독이 타고난 재능 중 가장 돋보이는 건 욕심이 없어보이(도록 자신을 꾸미)는 자질입니다.
<와일드 투어>부터 <여행과 나날>까지의 자신이 연출한 모든 극영화가, 오리지날 각본은 없고 죄다 남의 기획에서 출발한 작품인데요, 그러면서도 개성적인 작가로서 하입을 받는 건 이 인간의 교묘하고 똑똑한 수작이 잘 먹혀들어간게 아닌가 싶은 거죠. 리스크는 줄이고, 야망은 숨겨놓고, 꾸준히 출품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한 겁니다.
미야케 쇼는 촬영이 정말 대단합니다. 별 특징 없어보이는 일본식 힐링물을 표방하면서, 사실은 카메라가 서있는 위치, 인물이 대사를 뱉고 이동하는 타이밍, 책상 위에 놓인 물잔의 모양, 배경의 소품 하나하나를 전부 제 입맛대로 꾸며내는데요, 따뜻한 척하며 이리도 긴장감으로 가득한 화면을 힐링물이랍시고 내놓으니 영화를 보고나면 회복되긴 커녕 제정신을 차리기 힘듭니다.
갠적으로 올해 최고로 좋았으니 님들도 보세용
어쨌거나 극 중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ㅡ언어라는 우리에 갇힌 것 같다ㅡ
주인공은 낯선 것들이 언어화되어 익숙해지고, 어느덧 우리를 옭아매는 것 같다며, 여행을 한다는 건 언어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위라고 중얼거리고는 계획없이 한겨울의 시골마을로 여행을 떠납니다.
언어에서 해방되고싶다, '읽는 것'에 익숙하고 언어에 예민한 우리 독갤럼들도 공감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는 왜 읽을까요? 세상에는 안심되는 글도 참 많지만, 훌륭한 문학이란 것들은 대게 우리를 긴장되고 불안하게 만듭니다. 힐링이 되기는 커녕 내 생각을 찌르듯 불쾌하게 만듭니다.
카프카는 얼어붙은 바다를 깬다고 표현했습니다. 좋은 글은, 익숙함에 안주하고 있던 우리의 편견을 깨부수고, 당황하게 만듭니다.
또 삭제당하기 싫으니 예술론으로 새지 말고 오늘은 모든 것을 규정짓는 편리한 도구이면서도 우리를 안주하게 만드는, 언어란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해주는 책, <에코랄리아스>를 소개하겠습니다.
이 책은 인간이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은 망각의 과정이라고 주장합니다. 아기의 옹아리를 주의 깊게 들어보면, 아기는 모든 소리를 만들어내는 듯싶지만, 특정 언어를 구사하기 위해 그 무한한 가능성을 점차 잃는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미국의 비교문학과 교수로, 한 분야에 전문성을 자랑하는 스페셜리스트라기보다는, 여러 방면으로 관심을 뻗는 제너럴리스트인 듯싶습니다. 출간한 책의 리스트만 보더라도 뭐 하는 사람인지 종잡을 수 없는데, 이 책에서도 고대의 신화에서부터 현대의 언어학 이론까지 들쑤시면서 읽는 고통을 선사하는데요, 그 집요하게 직조된 텍스트를 붙들고 있다 보면 언어의 한계를 주창하기 위해 언어를 한계까지 밀어붙이며, 그 주장이 책의 스타일 자체가 되도록 의도한 미친 변태성에 감탄하게 됩니다.
'에코랄리아스'란 반향어, 메아리를 뜻합니다. 던져지고 다시 돌아오는 언어, 이리저리 방황하고 부딪히다 결국엔 제자리로 회귀하고야 마는 언어의 문턱에서 편견을 깨부수고자 안간힘을 쓰는 책, 에코랄리아스를 추천드립니다.
저도 여기읽다 저기읽다 읽기 힘들어서 몸부림쳤던 책인데요, 그래도 올해 읽은 것 중에 가장 흥미로운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