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을 때 소설의 구조나 문체만큼 그 소설에 깃든 작가의 사유를 중요하게 보는 편임.
근데 미시마 유키오는 전기와 후기 문학에서 아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싶을 정도로 주제의식이 달라지는 바람에 나는 전기의 미시마는 좋아하지만 후기의 미시마는 별로 안 좋아함.
예컨데 가면의 고백까지만 해도 미시마는 자기고백적, 자기성찰적 문학을 주로 쓰는 한 명의 청년이었음.
여러 소수성과 제약이 미시마의 유년과 청소년 시기를 지배하고 있었고 이런 압착을 견디며 성장한 미시마가 자신을 정면 응시하며 써내려간 가면의 고백을 나는 좋게 읽었음.
금각사에서도 이런 자신의 미의식이 세상과 잘 융화하지 못한다는 객관적 메타인지가 남아 있었고 주장하는 바가 아주 과격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 거기까지는 나쁘지 않게 읽음.
그런데 후기에 들어서는, 진짜 사람이 뭐에 씌었나 싶게 달라지더니 소설도 갑자기 이상한 곳으로 폭주해버림...
특히 나는 미시마가 2.26 사건에 사로잡힌 게 너무 안타까움. 미시마 본인이 젊은 남성의 죽음에 집착하는 편이었으니 2.26 사건에 흥미를 느낀 것은 그다지 놀랍지 않음.
그런데 미시마가 굳이 황도파의 정신적 후예를 자처하며 살기까지 했다는 게 진짜 미스테리함. 차라리 지하 던전 업소 같은 곳에 가서 남창한테 채찍질이나 하면서 풀지. 왜 히로히토 본인조차 쿠데타라 지칭한 2.26 사건에 사로잡혀서 근육 꼰대가 되어버렸나 싶음.
후기 미시마의 대표작인 우국이나 풍요의 바다 연작을 보면 자기 성찰이나 자기 고백은 점점 줄어들고 자기 탐닉이 강하게 부상함.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함.
일본 사회에 대한 비판? 금각사에서는 얼마간 유효했지만 우국쯤부터는 그냥 젊어서 장렬하게 죽는 것을 최고의 삶으로 꿈꾸는 미시마 본인의 취향 목적이 더 두드러졌다 생각함.
젊은 청년들이 서로 칼질하고 싸우다 아름답게 죽어야 하는데 세상이 너무 평화로우니 그게 못마땅했지 않았나 싶음.
전기의 미시마는 자기 정체성이 소수적이고 세상과 융화될 수 없음을 알기에 비련했던 청년이었는데
후기 미시마는 자기 정체성과 미학이 곧 정답이니 일본 전체가 이를 따라야한다고 주장한 개꼰대 아저씨가 되어버림.
타인에 대한 윤리적 책임감을 버렸다는 게 아쉬움.
자기 존재만 긍정하다 갔다면 후대 평가가 이보다는 훨씬 좋았을 텐데.
천인오쇠 읽음? 자기고백 꽤 있음
카.. 카즈야..!!
난 그런 점 때문에 후기 미시마도 전기 미시마 못지않게 좋던데
전기 미시마와 후기 미시마가 극단적으로 다르다지만 가면의 고백만 읽어봐도 그 시절부터 미시마의 콤플렉스, 사디즘 등등 후기 미시마 문학의 모든 요소가 예비되어 있었단 걸 알 수 있음 그런 요소들을 미친 천황주의 무사도 성애자 등등으로 표출하게 만든 건 본인의 몫이겠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미시마의 극적인 변화와 파멸이 하나의 숙명 같아서 마음에 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