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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본문에 남기겠습니다
<크리톤>
43a 시작부터 재밌는 배틀이 있다.
<소크라테스 변명> 강철웅 쌤이 쓰신 크리톤 번역에 대한 논문을 보면
정암 이기백(박종현 선생님 제자) 선생님과 박종현 선생님을 동시에 비판하고 있다.
판단은 독자의 몫
44d -(박종현 역) 많은 사람이 가장 나쁜 짓을 할 수 있어서, 가장 좋은 일도 또한 할 수 있다면, 그야 좋은 일이지. 그러나 실상 그들은 그 어느 쪽도 할 수가 없으니. 그들은 사람을 슬기롭게 만들 수도 또한 어리석게 만들 수도 없고, 그들은 그저 그렇게 하게 되어서 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네.
-(이기백 역) 다수의 사람이 가장 큰 해를 줄 수 있었으면 하네. 그러면 그들은 가장 큰 이로움도 줄 수 있을 테니까. 그건 훌륭한 일일 것이네. 그들은 사람을 분별 있게도 무분별하게도 만들 수 없고, 닥치는 대로 아무 일이나 하기 때문이네.
훌륭한 상태와 나쁜 상태에 영향을 주는 다수의 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말한 혼을 돌보는 것은 남이 대신해줄 수 없고 오직 개인이 스스로 할 일이 아니었던가?
영혼 돌보기는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며 답정너로 결론도 미리 정해놓고 하기 때문에 타인을 배제하는 거 아닌가? 그러면 위에서 말하고 있는 대중의 영향이 애초에 무슨 상관이길래 경계하고, 영향력을 검토하고 있을까.
혼자 하는 뻘짓이었으면 그럴 필요가 없었을 텐데
하지만 생각해 보라 애초에 문답법이란 나와 타인이 함께 만들어가는 주고받고를 말한다. 혼을 스스로 돌본다는 것은 우리 '모두' 혼을 스스로 돌본다로 말일 것이다. 뜬금없이 <카르미데스>를 꺼내와서 좀 그렇지만 문장 하나만 적어두고 다음으로 넘어가겠다.
카르미데스 165b-c
'자네는 마치 내가 묻고 있는 것을 내가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그리고 내가 원한다면 자네 주장에 동의할 것처럼 나를 대하는구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네. 나는 무지한 탓에 그때그때 제시하는 모든 문제를 자네와 함께 검토하고 있으니까.'
51c~53a
법률의 의인화
여기서 법률과의 계약과 합의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나라에서 잘 살았으니 합의한 거 아니냐는 것.
당시 이주하는 방법이 우리 현대랑 완전히 달라서 가능한 논변이다. 하지만 이렇게 합의한 것이 정의롭다면, 조금 문제가 있지 않나?
해석 문제가 있다는 건 아니고, 그냥 내 생각이다. 이건 마치 정의에 관해서 합의라는 명목으로 폭력과 강제를 말하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a 시점에서 b까지 줄곧 그 나라에서 살았다는 건 a에서 b까지 합의했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b에서 c로 가면서 법정 문제가 터졌다고 하자. 그러면 c에서 내린 판결에서 합의의 기준은 a~b~까지 줄곧 합의했으니 c를 따르는 것이 옳다고 한다. 어째서 과거의 a~b~를 끌어들여 c의 합의에 가두어두는가? 그렇다면 만약 b 시점에서 문제가 터졌을 때는 a~시점에서 잘 살았으니 그때도 합의한 것으로 칠 것인가? 그렇다면 a는?
계속 소급해가면 결국 나라에 발을 디디고 조금이라도 살았으면 합의였다는 뜻이 되지 않나? 그렇다면 선택이란 게 애초에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맘에 안 들면 그전에 이주했겠죠. 이런 말은 언제 할 것인가? 맘에 안 드는 순간이 있어야 이주했을 텐데 만약 부당하지만 다수의 합의로 이루어진 '정의'가 그때 닥쳐왔다면 그때는 어떤 시점을 끌어들여서 도망칠 것인가. 말한 내용을 보면 나라에 발 한번 디딘 순간 나갈 틈이 없지 않나.
소크라테스는 분명 개인의 영혼을 돌보는 것을 설파했다. 그러나 크리톤에서 결국 합의와 정의를 말하면서 탈옥하기를 거부하는 빌드업을 가만 보면 공동체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음'이 아닐까 생각된다. 친구 앞에서 추방이 아닌 죽음을 택한 이유를 덧붙이면서
이후 53a~54d의 내용
1. 탈옥은 친구들에게 피해를 준다
2. 탈옥해서 다른 나라 가도 왕따 된다.
3. 탈옥해서 나가면 재판관들이 내린 판결을 정당화시켜준다.
4. 탈옥하면 앞으로 덕과 정의를 논할 수 없을 것이다
5. 탈옥이 자식들에게 좋을 리 없다.
같은 논변을 펼치며 거절한다.
공동체를 중시하는 선택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거기에는 자신의 영혼을 만질만질하려는 모종의 이유가 더 큰 게 아니었을까
54b-탈옥은 이승에서뿐만 아니라 저승에서도 좋지 않은 것이다.
여기서 탈옥하지 않고 저승에 갈 때는 변론할 거리가 있고, 탈옥하고 저승에 가면 노답된다는 말을 한다.
결국 크리톤은 공동체를 중시한 소크라테스이기보다 변론에서 이어진 일관된 영혼 돌보기가 아니었을까.
그럼 그만두세 크리톤! 신이 이렇게 인도하니 이렇게 가자구~
또 다른 읽기
원래 크리톤 번역을 하려고 하셨다가 이기백 쌤에게 양보하신 이정호 선생님의 논문
또 다른 찰스 칸의 읽기
크리톤 46b- 언제나, 추론해 보고서 내게 가장 좋은 것으로 판단되는 그러한 원칙(logos) 이외에는, 내게 속하는 그 어떤 것에도 따르지 않는 그런 사람이기 때문일세.
소크라테스는 전문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기술의 가능성에 대한 언급도
크리톤 47d- 이런 것들에 대한 전문가가 혹시 있다면.~
이라는 조건문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덕적 기술은?
개인의 덕과 대중의 정의는 어떤 지식에 의존해야지만 국가가 돌아갈 수 있는 거 아닐까?
무작정 영혼 챙기라고 말하고 서로 멱살 붙잡고 대화를 이어나가면 끝일까?
플라톤은 이런 도덕적 기술의 존재를 확립하기 위해서 먼저 기술 개념을 명료화해야만 한다. 그래서 <이온>으로~~
<이온>
반갑소 이온!
첫 문장을 보자마자 이온 도망쳐!라고 생각했다. 간단하게 안부를 묻고, 이놈 어디 털 구석 없을까 간을 보더니 대뜸
531b- 그러면 어떻소? 이들 두 시인이 예언술과 관련해서 같게 말하는 것들 또는 다르게 말하는 것들을 그대가 훌륭한 예언자들 중의 누군가보다도 더 훌륭하게 해설하게 되겠소?
라고 미친놈처럼 뒤틀린 질문을 한다.
너무 무섭다.
뭐가 막 자꾸 다르고, 훌륭하대 ㅠㅠㅠ
<이온>에서 이온을 붙잡고 늘어지면서 네가 기술이나 앎이 있다면 시에 대해 전반적으로 말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즉 네가 암송할 수 있었던 건 기술이 아니고 시인이 음송 시인이나 배우에게 힘을 넘겨주고, 이들은 다시 자석이 쇠 반지를 끌어당기듯이 청중에게 사로잡는 힘을 행사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자 이온은 536d에서 '엣 제가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지껄인 거였다고요?'같은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기술이란 각 분야가 있음을 말하며. 이는 곧 제각기 다르다고 말한다. 그런데 음송 시인은 특별히 자신이 속한 전문 기술이 있는가?
이온은 여러 전문가가 가진 기술을 인정하면서 음송 시인도 540b-남자와 여자가 말하기에 적합하고 노예와 자유인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말하기에 적합한 것을 잘 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또한 소크라테스에게 논박당하고
이온 네 녀석 호메로스 잘알이라고 떠드는데 그걸 보여주려고 약속했으면서 나를 속이고 있다.
네가 전문가라면서 호메로스에 관한 기술은커녕 빙빙 돌면서 이쪽 기술이다 저쪽 기술이다 하지 않느냐.
그러니 선택해라 앞서 내가 말한 대로 기술이 아니라 호메로스에서 비롯된 신적인 영감으로 아름다운 것들을 말하고 다녔다고 인정하면 잘못이 없을 것이고, 그게 아니라 계속 호메로스를 보여주기는커녕 기술이 있다고 빙빙 돌리면서 날 속이던가.
이온은 결국 그나마 나은 선택지인 신적인 영감으로 떠들어댔다는 쪽을 택한다.
소크라테스의 시인들에 대한 비판 어린 시선은 변론부터 시작되었다.
소크라테스 변론 22b - 이들은 자신들이 짓는 시들을 지혜나 솜씨에 의해 짓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자연적 재능에 의해서 그리고, 마치 예언자들이나 신탁의 대답을 들려주는 사람들처럼, 영감을 얻은 상태에서 짓게 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들 또한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말하기는 하지만, 자신들이 말하는 것들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니까요.
시인을 싫어했던 이유가 직업적 소피스트들이 자신들의 교육 과정의 일부로 시인들을 이용했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있다
찰스 칸의 생각을 빌려본다.
소크라테스가 시를 테크네라고 하지 않고 영감을 받아서 짓는다고 한 이유가 무엇일까. 애초에 그는 이온이 호메로스를 설명할 수 있다면, 그는 다른 시인들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는 시를 짓는 것이 전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532c)
찰스 칸은 일부 가혹해 보이는 이 시선을 학문적 접근에 한정해서 '한 탐구 대상일 때에만, 오직 그때에만 한 학문'이라는 원리로 보면 옹호될 수 있다고 본다.
어떤 시인은 비극을 쓰고, 누구는 희극을 쓰는데
534c- 그들 각각이 다른 종류의 시에는 정통하지 않게 되는 것은 그저 그들이 각기 다른 무사 여신들에 의해서 영감을 받기 때문이다.
이건 시에 관한 테크네가 대응하는 대상이 애매해서 학문적 일대일에서 벗어난다는 것
하지만 이건 내가 봐도 시에 관해서 상당히 가혹하다고 여겨진다. 이렇게 초기 대화편인 <이온>에서 나름 애매한 논증을 펼쳤던 플라톤은 또 다른 대화편으로 습작을 하기 시작하는데...
다음 주는 <(소)히피아스>+@<(대)히피아스>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크리톤 소크라테스의 부모 비유는 상당히 문제가 많습니다 부모를 공경해야하는 것은 맞지만, 부모가 독을 내리며 먹고 죽으라면 죽어야 하나요? 또한, 언제든 떠날 수 있는데 남아있었으면 법률에 합의한 것이라는 주장은 '누칼협'처럼 들립니다 우리는 비단 법률에 만족하였기에 이 땅에 남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땅이란 법률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무언가입니다 사실 소크라테스는 '변명'에서 죽음을 택했고, 그렇기에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을겁니다 그렇기에 사실 '크리톤'에서의 논변은 그저 친구를 돌려보내기 위한 필사의 궤변 정도로 들려요 대화편이 끝나며 미묘한 파토스가 느껴지는 것도 이것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이런 억지 논변은 '소크라테스가 죽으면 나는 하나뿐인 친구를 잃는 것이다'라는 내용을 반박하지 못한 채 끝나버렸지요
@무르망 ―이온 시인 비판과 음송자 비판이 얽혀있어서 약간 헷갈렸지만, 생각보다 괜찮은 대화편이었습니다 고증에 대한 비판을 찾아보기 너무나 쉬워진 오늘날에는 오히려 공감하기 더 쉬운 주제인 것 같기도 했습니다 이 대화편을 읽으며 저는 영문학 번역가, 시바타 마사유키의 말이 계속 맴돌았습니다 "역사 책을 읽으면 역사를 알게 되고 법률 책을 읽으면 법률을 알게 되는데, 문학을 읽으면 문학을 알게 되는게 아니라 인생을 알게된다고 하던 시기가 있었죠. 인격형성을 위해 소설을 읽는 것이 옳다고 여겨지던 예전의 방식은 불순한 읽기였고, 지금은 올바른 독자만 남아있는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1. 탈옥은 친구들에게 피해를 준다 2. 탈옥해서 다른 나라 가도 왕따 된다. 3. 탈옥해서 나가면 재판관들이 내린 판결을 정당화시켜준다. 4. 탈옥하면 앞으로 덕과 정의를 논할 수 없을 것이다 5. 탈옥이 자식들에게 좋을 리 없다. 이 중 3, 4번을 생각해보자면 소크라테스의 사형 판결은 아테네인들의 격한 감정과 원한이 판결을 인도했기 때문에
소크라테스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는 상황이 맞음 근데 3번에서 탈옥하면 판결을 정당화시킨다는 부분은 조금 이해가 안 가긴 했음 옳고 그름을 중시했던 소크라테스가 부당한 판결을 거부하는게 자신의 신념과 불일치하는 부분일까?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참주정에서 한 명령을 따르기를 거부해서 죽을 뻔 했던 사람인데? 참주정이 소크라테스를 가둬서 사형 판결을 내렸어도
@책은도끼다 소크라테스는 크리톤에서의 입장을 내세워 사형을 받아들였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음 다만 여기서 4번을 보자면 덕과 정의를 논할 수 없다는 내용인데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고 가족들한테 해가 될 것까지 감안하면서 자신의 목숨을 구차하게 유지한 사람은 덕과 정의를 논할 자격이 없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음 끝까지 살아남아 자신의 결백과 정의를 입증하는 사람이라면?
@책은도끼다 그만두세 크리톤! 신이 이렇게 인도하니 이렇게 가자구~
https://m.dcinside.com/board/reading/771857
1. 동의. 죄수 친구, 특히 탈옥수 친구는 인식이 나쁘겠지 2. 어처피 해외에서도 길가다가 하는 설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니 어떤 의미로는 동의 3. 만약 정말 본인이 사회 혼란을 일으켰다는 사실에 찔리는 구석이 없으면 유죄를 받아도 당당할 것이다, 왜냐면 재판관이 법을 ㅈ대로 적용한 것이지 내 잘못이 아니라는게 그의 자세인데, 탈옥은 본인이 찔려서 도망간 부도덕한 인간임을 재판관에게 인증하는 꼴이라 생각한 모양. 4. 올바른 개인은 올바른 국가와 같기에 올바름을 주장한 자신이 법을 어기면 아! 어차피 불리하면 튀면 그만이야~ 라는 불법적 인식이 생기므로 본인의 말이 무가치해짐, 따라서 인생 똑바로 살라고 말한 본인의 말을 지킨 행위 같음 - dc App
그리스의 당시 국가들이 도시 국가여서 좋지 않은 소문이 퍼지면 다 알게 되었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자신이 살겠다고 도망쳐봤자 소문은 따라다니고 뭔 말을 하든 "그래서 당신 도망쳤는데 왜 정의가 어쩌고 말해? 어쨌든 법은 어겼잖나?"라고 시비를 항상 받을 것을 본인이 견뎌낼 수 없었을 것 같음. 현대인 시점에선 고등법원에 항소를 하든 해서 뒤집을 수 있는데 당대는 그게 없었던 것도 한 몫 한 것 같기도.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