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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자연으로의 회귀에 대한 갈망은 상당히 널리 퍼져있는 종류의 욕망 중 하나이며, 오늘날같이 고도로 현대화된 시기에는 일종의 이상화가 진행되어 나름의 인기를 끌고 있기도 하다. '월든'은 이러한 자연주의적 생활방식에 대한 고전적인 글로, 사상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자연에 대한 풍부한 묘사가 담겨있는 글이다.
'월든'은 별다른 사건이나 큰 줄기가 되는 사건 없이 소로우가 자신이 숲에서 자급자족에 가까운 생활을 진행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풀어내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때문에 글의 줄기 사건을 따라가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다소 따라가기 힘든 글이 되기도 했다.
사실 이와 같은 자급자족의 생활을 시도한 케이스로는 현대에 와선 카진스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데, 소로우와 다르게 그는 산업문명이 그의 영역을 침범할 정도로 발전된 시대에 살았다는 점에서 다소 차이를 느끼게 된다. 소로우가 당시 존재하는 기술 발전 정도에서 이 모든 것들이 단순히 관심을 끄는 흥밋거리 외로는 생각하지 않았단 것을 고려하면, 그가 살고자 하는 모든 곳이 정부와 기업에 의해 재단되고 침략당하는 세계는 어떻게 생각했을지 다소 궁금증이 생기기도 한다.
또한 이 글에서 소로우가 이야기하는 수많은 자연에 대한 찬사는 문장 자체로는 훌륭할 수 있을지언정, 자연주의적 오류로 범벅이 되어있는 이야기란 점, 중국-인도 고대 사상가들과 서적에 대한 그의 호의 역시 외부에서 본 시선이란 점에서 그 이해도에 대한 고민을 다소 하게 만드는데, 아무래도 그의 존중이 그들이 고대에 있음에만 기인한다 생각하는 것과 야만인-문명인에 대한 구도를 가지고 있음이 글에서 드러나기 때문일 듯 하다.
저자가 살던 시대를 감안한 글임을 인정하고, 오늘날의 산업문명 사회에서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 큰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 글에서 다소간의 위안과 삶의 지침을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은 충분히 있을 것이라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의문이 드는 것은, 저자는 자신이 옳다 믿는 삶을 사는 것과는 별개로 다른 사람에게 이 삶이 어떻게 옳은지 설득하는 부분에서는 다소 내려놓은 듯한 인상을 받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월든'은 저자의 삶을 존중하는 관점에서 볼 때 자연주의적 생활에 대한 상당히 폭넓고 깊은 묘사를 통해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글이지만, 자연 묘사에 대한 반복적이고 서사 없는 서술은 특정 독자에게는 다소 부담스럽게 다가올 수 있었던 글로, 개인적으로는 최근 읽은 글들 중 읽기 버거움에 있어서는 손꼽을만한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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