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우엘벡의 "소립자"를 읽다가 철학자 사르트르를 "장애에 가까운 못생김" 이라고 묘사하는 부분에서 나는 배꼽 잡고 웃을 수밖에 없었지.


솔직히 표현이 너무 기발하잖아?


하지만 나의 웃음 뒤엔 쌉쌀한 뒷맛이 남았고 그건 아마 나 또한 추남이라는 사실에서 비롯한 거겠지.


물론 따지고 보면 사르트르는 나보다야 훨씬 낫지.

내가 실존주의 철학책에서 읽은 썰에 따르면,

그 사람은 학창시절에도 입을 열기만 하면 지성이 너무 빛나서 그의 못생김이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고들 하니까.


그에 반해 나는 살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직/간접적으로 두 번이나 들어야 했어.

"쟤가 그렇게 똑똑하대"

"저렇게 생겼는데?"

나는 생긴것과 똑똑함을 연관 지어 생각하는 그들의 뻔뻔한 논리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아서 화가 났지만

겉으론 아무 말도 못했더랬지.


문학은 삶에 형태를 부여해주는 것이라는데

추남의 삶이 어떤 꼴인지 확실하게 파악하고 위로받기 위해선어떤 책들을 읽어야 할까.

우엘벡의 책을 좀 더 읽어보면 해결될까.

얼마 전엔 그의 "투쟁 영역의 확장"도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거기서도 추남 캐릭터가 나와.

결국 화자가 그에게 칼을 쥐어주면서

클럽에서 그를 거부한 여자와 팔짱 끼고 나가는 저 우월한 흑인을 찔러 죽이라고 종용하지.

추남은 여자와 흑인을 바닷가까지 몰래 따라갔다가

결국 몸을 섞는 그들을 숨어서 지켜보며 자위만 하고 다시 화자에게 돌아오지. 칼은 깨끗한 채로.

피를 흘리는 것과 정액을 흘리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약자라서 생각이 많은 걸까, 아니면 생각이 많아서 약해지는 걸까?

어지러운 생각들의 본질을 응시하면, 나는 그냥 사랑받고 싶을 뿐인 것 같아.

허세나 공격성이나 친절함 등 각자 자기만의 무기로 무장한 많은 사람들도

사실은 다 똑같은 마음이겠지. 다들 사랑받고 싶은 거야.

그런데 미움 받긴 너무 쉽고, 사랑 받긴 너무 힘든 세상인 것 같아.

이게 꼭 현대성의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아.

세상은 정말 오래됐고, 정말 오래전부터 세상은 이래 왔겠지.


(아마 명백하겠지만) 나도 찐따라서

독갤 4대 찐따 문학 대부분을 읽어 봤어 (찐따 문학은 얼마나 많은 찐따들을 구원하는가? 혹은 못 구원하는가?)

금각사는 못 읽어봤고.

인간 실격이랑 지하수기랑. 나머지 하나 뭐였지. 호밀밭이었나. 호밀밭은 엄청 어릴 때 읽었던 것 같은데 그냥 그랬던듯.

솔직히 지하수기가 찐따문학 갑이라고 생각함.

인간 실격 화자는 기만자 새키임.

걔는 가만히 있어도 여자들이 달라 붙는 놈이었잖아.

그 새키의 문제점은 "문학적인 인간의 무기력함"이야.

1층에 내려갔다가 아내가 다른 남자에게 먹히는 걸 보고 그 새키는 어떻게 하지?

곧바로 다시 위로 올라가서 드러눕고는 "원초적 공포를 느꼈다" 운운하면서 지랄해대지.

그건 그냥 문학적 성향을 가진 이의 무기력함이야.

난 그 새키랑은 달라서 무기력하진 않아. 난 할 일이 있으면 하고, 길이 보이면 걸어가.

단지 사랑받기가 너무나도 어려울 뿐이야. 난 참 여러 면에서 그 새키랑 다르구나.


그냥 새벽되니까 갑자기 답답하고 좆같은 무언가가 치밀어올라서 주절거려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