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 원서, 그리고 그 원서를 번역한 설국이 나쁘다는 뜻이 아님.
그런데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에 대해 전세계적 명성, 그러니까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으로서의 명성을 얻은 그 작품은 엄밀히 말하면,
다소 극단적이지만 사이덴스티커의 영어 번역을 거쳐간 '번역본'이 핵심임.
물론 노벨문학상 죄다 번역되는데~ 할 순 있겠지만, 설국의 입지에 대해서는,
번역자의 문학적 역량과 당시 한림원이 요구하는 '일뽕스러운 기대치'가 기계적으로 조립해서 만들어졌다고 봐야 함.
거듭 말하지만 설국의 폄하가 아니라, 설국이라는 작품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맥락은 작품 자체의 순수성을 벗어난 어떤 역학적인 부분에 지분이 꽤 크다는 거.
물론 이렇게 보면 아니 한강도 그렇고 모든 작품들 죄다 번역물인데 다를 게 뭐임? 하겠고, 그 작품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주장을 할 수 있겠지만
내가 그 정도로 조예는 없어서 모름... 솔직히
근데 설국이 좀 그 안에서 굳이 주장할 만한 무언가가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작품의 문장에 대해 작가가 의도하는 모호함이나 작가적 의도로 쓴 텍스트 대부분이
사이덴스티커에 의해 꽤나 '직관적인 형태로(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재창조됐다는 거임.
설국을 원문으로 읽으면 하이쿠 톤의 느낌, 묘사가 지극히 일본적인 감성이라서 일어에 대한 조예 없으면 그 맛을 알기 힘든 작품인데도 번역에 의해 정말 구조적으로 작품의 '기틀'이 바꼈다고 할 정도임.
거듭 말하지만 그게 나쁘단 것도 아니고 원문으로서의 설국이 별로란 것도 아닌데, 그냥 맥락적으로 '서구에서 고평가받는 설국'은 우리가 일-한으로 직번역해서 읽는 설국의 감상과 꽤 다르다는 말을 하고 싶었음...
오
쓰고 보니 좀 허해서 덧붙이는데, 가령 첫 문장에 대한 게 이런 느낌임. 일본 원서는 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雪国であった。夜の底が白くなった。(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전자는 일어 원문이고 후자는 한국 번역본인데 전혀 차이가 없음. 근데 사이덴스티커의 번역은 아래와 같음. "The train came out of the long tunnel into the snow country. The earth lay white under the night sky." 가장 단적인 걸로 기차는(이라는 주어)로 시작하는 거라든지, 밤의 밑바닥이라는 시적 표현은 (비교적) 일반적인 표현으로 대체되는데, 이는 작가가 의도한 하이쿠적 모호함과 어긋나는 결임.
노벨 문학상은 작가에게 주는 상
저는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노벨문학상 작가라는 거를 부정하진 안아요, 대단한 작가죠
단지 설국에 대해 느꼈을 문화권마다의 차이점이 생각보다 극렬하게 갈려서, 설국에 대해 논하는 가치는 문화권별로 이해하는 차이점이 극명하게 갈릴 것 같다는 뜻이었어요. 물론 한-일의 경우는 거의 원전 그대로의 감성을 느낄 수 있으니, 어떻게 보면 남 일이긴 하겠네요.
한강도 좋은 번역가가 함께 한 게 천운 중 하나였지 진짜 이런 거 보면 인생은 운칠기삼이 맞는듯
일리가 있군
역시 좋은 소설은 번역이 별로여도 살아남는 모양이네 물론 원작이 별로인데도 번역 덕분에 살아나는 소설도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