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강은 <소년이 온다> <흰> <채식주의자> <희랍어시간> <작별하지 않는다> 읽어봄
나머진 다 그냥 그런데 <작별하지 않는다>는 매우 훌륭한 소설이라고 생각함
첫 번째 장점, 시적인 문장과 구체적인 묘사를 동시에 이뤄냈다는 점임. 한강의 시적인 문장은 <소년이 온다>나 <희랍어시간>에서도 볼 수 있지만, 거기선 사건이 추상적으로 그려지고 구체성이 약함. 소년이 온다의 고문 장면이나 유령이 되는 장면이나 마지막 할머니 장면도 구체적인 사건 묘사가 아니라 시적인 문장으로 얼버부려지는 면이 있음. 그런데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도에서 인선 집 찾아가는 장면과 인선 엄마와 삼촌의 에피소드가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음. 사건도 매우 스피디하게 전개되는데 과거와 현재를 와리가리침
그러면서도 시적인 것을 놓치지 않는 점이 사유의 밀도가 높고 글빨이 좋은 문장이라고 볼 수 있음.
두 번째 장점, 방언의 활용과 거리 유지임. 2021년에 나온 소설인데도 이정도로 방언을 잘 활용한 소설은 드뭄. 한강이 직접 제주도에 살면서 수집한 다양한 제주 방언들의 어휘는 그 자체로 매우 큰 강점임. 더불어 한강이 방언을 쓰는 것의 의의는, 목소리를 분리시키고 거리를 유지하는 데에 있음. 소년이 온다 마지막 부분에서 꽃나오면서 할매가 독백하는 장면도 방언을 활용해서 등장인물의 목소리를 살린 장면임. 한강은 화자 자체가 시적인 스탠스로 말하기 때문에, 인물의 목소리를 살리기 위한 방법으로 방언을 택했다고 볼 수 있음. 소년이 온다에선 소년이 당사자임에도 시적인 소리로 말하면서 작가 한강의 목소리와 구별이 안되는 문제점을 극복했다고 볼 수 있음. 이 방식은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아주 발전함.
세 번째 장점, 강렬한 장면의 상징과 알레고리임. 김승옥의 <무진기행>하면 무진 진입 장면이랑 전보 장면을 떠올리고, 이청준의 <잔인한 도시>하면 새와 억압의 알레고리를 떠올리는 것처럼, 특정 장면이 주는 강렬한 이미지는 명작을 뽑을 때 중요한 요소라고 봄. 소년이 온다는 상대적으로 그런 개별 장면의 임팩트가 덜하지만, 작별하지 않는다는 매우 많음. 손가락 짤려서 계속 찌르는 장면, 시체에 눈 덮이는 장면, 새한테 먹이주는 장면, 결말과 촛불 등등 장면 자체의 임팩트가 있고 그 자체로 상징과 알레고리로서의 함축이 큼. 이런 장면은 그리고 국어시험에 내기도 좋음..ㅇㅇ
네 번째 장점, 역사를 바라보는 거리감임. 소년이 온다는 당시 현장을 다루고 직접 소년의 시점에 몰입해서 사건이 진행됨. 그러나 작별하지 않는다는 화자 자체가 작가 한강의 페르소나임. 당사자는 친구 엄마임. 즉 남의 이야기를 바라보는 시점이고, 21세기에 제주 4.3을 바라보는 거리감이 제대로 반영된 설정이라고 볼 수 있음. 제발트의 <아우스터리츠>도 아우스터리츠 자체도 아우슈비츠 직접 갔다온 애가 아니고 거기다 제 3자가 그 애의 썰을 듣는 설정이잖음. 작별하지 않는다도 인순의 삼춘과 가족의 죽음, 그걸 바라본 인순 엄마,를 바라보는 인순,을 바라보는 화자 나의 거리감이 반영되어 있음. 아우스터리츠와 더불어 오늘날에 역사적 사건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이정표가 되는 소설 중 하나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음.
다섯 번째 장점, 겨울 묘사가 좋음. 작별하지 않는다는 한국의 설국 같은 느낌이 있음. 제주도의 겨울을 묘사한 것도 좀 독특하고 눈 묘사라거나 추위 묘사나 한국소설 중에서 이것보다 겨울의 특성을 잘 그려낸 소설을 본 적이 없음. 눈 자체도 소설의 주제랑 밀접하게 연결되는 지점도 좋음.
작별하지 않는다는
역사적 비극을 성숙한 시점에서 시적으로 그려낸
포스트모던한 진지한 소설이라는 점에서
매우 훌륭함
21세기 한국문학의 정점이라고 봄
4.3 희생자의 고통과 주인공의 고통이 너무 쉽게 동치되어버린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심? 인선의 집을 찾아가는 주인공의 서사는 과연 4.3을 재현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건지... 평론가들은 재현의 불가능성을 말하려는 거라고 해석하곤 하지만, 때론 창작자들이 자기 시점에서 안일하게 쓴 이야기를 평론가들이 그럴듯하게 포장하려 한다는 인상도 받음
전혀 동치되지 않는다고 봄. 오히려 방언을 활용해서 목소리를 분리시킨 점에서 문체로도 드러나고, 주제 자체가 역사를 잊지 않도록 바늘로 찌르면서 고통 받아야 한다에 가깝지. 그거는 공감X. 그리고 제주도에서 새한테 먹이 주러가는 여정은 4.3을 재현하는 경로가 아님. 4.3의 자료를 찾고 그걸 탐구하는 작가의 고통의 여정이지.
소년이 온다에서도 그러길래 여태껏 안 읽고 있었는디... 거기서도 그러다니
공감합니다 나도 딱 저기에 단편집 하나 더 읽었는데 작별하지 않는다가 가장 좋았음ㅋㅋ 걸작이라고 생각함
걸작이지
앵무새 단안시 활용한거 ㄹㅇ 좋던데 - dc App
한강의 한계를 딱 보여주네 과거의 거리를 둘 수 있는 비극만 다루기. 지금 세상에 벌어지는 비극에는 뛰어들지 않기. 희생자의 고통의 보편성이 정치적으로 얽매일 걱정이 없는 지점에서 한탄하기
개꼬였네. 작가같은 글쟁이가 당사자성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허위성과 회의가 고려된 인식이라고 봄. 물론 황석영 아저씨처럼 본인 글이랑 인생을 합치하려는 시도도 유의미하지만, 지식인의 소시민성과 고뇌는 항상 등장하는 보편적 테마임
@ㅇㅇ(106.101) 그니까 한계라고 그냥 멀찍이 떨어져서 한탄하고 아파할 뿐이라고 보편적이 않다고 한강은 보편적인척하는 다만 위생적인 거리를 유지하는 태도뿐이고 딱히 유의미한 성취가 아님
그건 받아드리는 사람 차이긴 한데, 난 거리 두는 방식이 더 세련된 소설 기법이라고 봄
이 비판이 항상 한강에 따라오던데 맞는말이라고 봄 518 4.3사건은 성역화돼서 건드려도 부담없으니 막 써먹으면서 정작 현실의 고통은 회피하고 외면함
나도 이렇게 생각함. 한강 작가는 소년이 온다나 작별하지 않는다 같은 역사물에 꽂혀 있음. 그걸 잘하기는 하지만 현대에 공감하지 않는 작가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봄
저번에도 말했지만 4.3 주인공은 김달삼인데, 이걸 생략하면 소설이 되나 싶네; 4월 3일 무슨일이 벌어진지 아무도 모르는듯
이런 말 자체가 포스트모더니즘을 리얼리즘의 잣대로 보는 거임. 작가의 의도를 무시하고... 모더니즘 자체가 특정 시대정신과 특정 상황을 사실되게 그리려는게 아니라, 그 속에서 인간 보편을 끄집어내는 게 모더니즘(포모)임. 한강도 작별하지 않는다를 사랑에 관한 소설이라고 했음. 분명 현실 재현에 focus를 두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음.
그럼 논쟁이 벌어지는 특정 역사를 다루면 안되지 않냐? 그냥 고급진 프로파간다 같은데. 그렇게 작동을 하고
역사 속에서 소외된 사람을 그리고 싶나보1지... 황석영 아저씨가 산업화 시대에 소외된 노동자를 다루던지, 한강이 4.3사건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다루던지 작가 맘이지 문학을 문학으로 보자
뭘 그렇게 작동을 해 너같은 애들이 삐딱하게 보는거지
갑자기 인신공격; 거 봐 작동하잖아
인신공격이 아니라 문학을 문학으로 못보는 애랑 먼 대화를 해
프로파간다 문학도 문학이야. 북한에도 문학책 나오잖아. "문학"이라서 다 퉁칠수 있는 건 아님
여기 댓글 다는 애들 이산하 한라산 보면 기절하겠네
ㄹㅇ
여기 댓글들 보니까 한강이 5.18에서 한국전쟁 스킵하고 4.3으로 간 이유를 알 거 같네 ㅋ 이른바 한국 현대사의 비극 3대장 중 가장 참혹하다고 할 수 있는 거대한 소용돌이인데 이걸 스킵한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거든. 현재진행형인 사건은 안 건드린다 이건가? ㅋ 4.3에서 다시 백스텝 하면 한국전쟁이 나오니 다음엔 더 과거로 가겠군. 3.1운동 때 제암리 학살 같은 거 다루려나? ㅋㅋㅋ 꼭 한국만 배경으로 할 이유도 없으니까 난징 대학살 같은 거 다루면 작가 역량을 키울 수 있을 텐데. 이건 진짜 인간성이란 건 과연 존재하는가? 라는 절망의 울부짖음이 나올 정도로 참혹한 참극인데
오호 통재라! 어쩌다 겉절이 하나가 과분한 상을 받아 이런 뻘글을 구경하게 하는구나. 쓰니는 양서를 많이 읽어 시간낭비하지 말자꾸나
위 댓글에서 말한 논지는 재밋는데, 개념을 좀 섞어 쓴건 사실임. 포모가 현실 재현을 포기한다는 주장과 실제사건을 차용한소설에서 핵심 행위자를 지워도 무방하다는 주장은 별개임. 전자는 미학적 태도이고 후자는 윤리와 서사의 문제니까. 모더니즘이든 포스트모더니즘이든 “인간 보편”을 끌어낸다는 말은 결과이지 면죄부가 아님. 특히 43처럼 가해 주체가 비교적 명확한 역사적 비극에서, 서사의 중심 동력을 제공한 인물을 생략하면 그 보편은 추상으로 도망감. 그건 리얼리즘의 잣대가 아니라 인과관계의 잣대임.
한강이 해당 작품을 사랑에 관한 소설이라고 말했다고 해서, 그 사랑이 어떤 폭력 위에 세워졌는지가 사라지는 건 아님. 현실 재현에 포커스를 두지 않았다는 말과, 현실의 결정적 요소를 제거해도 된다는 말은 다르지. 전자는 선택이고 후자는 왜곡에 가까움. 요컨대 작가의 의도를 존중하는 것과 독자가 서사적 결손을 지적하는 것은 충돌하지 않음. 포스트모더니즘을 방패로 들이대기엔 빠진 게 너무 구조적. 보편을 말하려면 먼저 구체를 통과해야함. 그게 고전적이든 시대착오적이든ㅋㅋ
정상 한국인은 4.3사건을 아무 관련도 없는 민간인들까지 엮어서 제주도에서 몇만명 학살한 사건으로 보지, 공산당이 가해 주체라는 걸 메인으로 보는 건 극우밖에 없음. 문학에서 반공주의가 핵심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는 건 1950년대까지고 1960년에 나온 <광장>이 그런 소리는 문학에서 아닥시켰음. 뒤틀린 역사의식 + 구시대적 문학 프레임의 환상 콜라보
@ㅇㅇ(106.101) 어우.. 확실하시네..
@ㅇㅇ(106.101) ㅋㅋㅋㅋ
공감합니다. 작별이 진짜 대작이죠. 특히 사투리 방언같은건 글자 텍스트 소설로 표현하면 어색한 경우가 많은데 작별은 그런게 없어요. 4.3이라는 거대란 역사적 흐름이 한 인간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 정말 잘쓴 소설이라 봅니다.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이새끼들 잣대를 작품에 들이밀면 세문집에서 절반도 못살아남는다
같은 걸 봐도 이렇게 생각하는게 다르다 ㅋㅋㅋ 그래서 글쓰고 자기랑 생각 다르다고 기분 나빠할 필요가 없는데... 거참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