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음과 같은 장광설에서 이러한 고양이 과연 어디까지 다다를 수 있으며 또 어디서 멈출 수밖에 없는가 하는 것이 곧바로 드러날 터인데, 칸트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숭고하다고 얘기한다.


< 칸트 인용… >


이러한 서술이 양적 고양에 관한 내용을 그럴싸한 풍부한 묘사 속에 한데 얼버무려 놓았다는 점에서 문제시 되지만 않는다면, 바로 그 고양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란 다만 ‘사상은 기진맥진해지고 끝내 남는 것이라고는 쓰러져 버리거나 현기증에 휘말려드는 것뿐’ 이라는 사실을 생생하게 드러내 준 진실성으로 인하여 이 서술은 충분히 찬사를 받을 만하다.


이렇듯 사상을 굴복시키면서 모름지기 이 사상을 전도시키거나 현기증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이야말로 이미 앞에서 본 바와 같은 되풀이되는 작용, 즉 반복되는 현상의 권태로움이라고 하겠으니, 이러한 반복은 일단 한계를 소멸시키는 듯하다가도 또다시 이를 등장시키는가 하면 그 뒤에 가서는 또다시 이를 소멸시키고야 만다.


이렇듯 한쪽을 다른 쪽을 위하여, 그 하나를 다른 하나 속에서, 그런가 하면 또 피안 속에서 차안을, 그리고 차안 속에서 피안을 끊임없이 생성하고 소멸토록 하는 이러한 반복 현상은 결국 유한 위에 군림하는 지배자가 되려고 하면서도 그렇게 되지 못하는 무한자나 혹은 당위의 무력함을 실감나게 할 뿐이다.


<논리의 학: 존재론> ??? ~ ??? 인용



구리니깐 헤겔이 깠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