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주석1] 비판이라는 과제는 그 폭력이 법과 정의와 맺는 관계들을 서술하는 작업으로 돌려서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어떤 원인이 어떻게 작용하든 간명한 의미에서의 폭력이 되는 것은 그 원인이 윤리적 상황에 개입할 때에야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관계들의 영역은 법과 정의의 개념으로 지칭된다. 둘 가운데서 우선 법을 두고 보자면 모든 법질서의 가장 원초적인 기본 관계는 목적과 수단의 관계라는 점은 분명하다. 더 나아가 폭력은 목적의 영역이 아니라 우선 수단의 영역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인식들을 통해 폭력을 비판하기 위해 많은 것이, 그렇지만 어쩌면 겉보기와는 다른 것이 주어지게 되었다. 즉 폭력이 수단이라면 그 폭력을 비판하기 위한 어떤 척도가 마냥 주어진 것으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그 척도는 폭력이 그때그때 특정한 경우에 정당한 목적 또는 부당한 목적을 위한 수단이냐는 물음에서 생겨난다. 그에 따라 폭력의 비판은 정당한 목적들의 체계 속에 묵시록적으로 주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정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체계가 설사 모든 의심을 불식시키는 안정된 체계라 할지라도 그 체계가 내포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원칙으로서의 폭력의 기준이 아니라 그 폭력이 사용된 사례들에 대한 기준이기 때문이다. 폭력 일반이 원칙으로서, 심지어 스스로 정당한 목적들을 위한 수단으로서, 윤리적이냐는 물음은 여전히 열린 채로 있는 셈이다. 이 물음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좀 더 자세한 기준이 필요한데, 다시 말해 수단 자체의 영역에서의 구분이, 그것도 그 수단이 봉사하는 목적들에 대한 고려 없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 <폭력비판을 위하여>, 발터 벤야민


흔히 문1해력이라고 하면 '사흘, 유수, 명징'이란 어휘들의 사전적 뜻을 아냐 모르냐에 대해 주로 따짐. 그런데 철학책을 읽을수록 어휘의 사전적 정의를 아냐 모르냐는 별로 안중요하다고 느낌. 왜냐면 작가들이 쓰는 개념은 단지 사전적 정의가 아니라, 본인이 설정하거나 다른 철학에서 가져온 것이기 때문에 책마다 다 다름. 저 위에 벤야민의 어려운 글에서도 폭력, 법, 정의, 윤리 이런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음. 그런데도 안읽히는 건 글의 논리자체가 어렵기도 하지만, 단어 개념 자체가 일상적 의미가 아니기 때문임. 가져오진 않았지만 시작하자마자 '폭력'이라는 단어에 10줄짜리 주석이 바로 달려있음...

문1해력에서 중요한 건 어휘를 아냐 모르냐가 아니라, 단어가 쓰이는 맥락에 대한 배경 지식이 더 중요함. 그래도 모든 배경 지식을 다 알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것을 알고자 하는 탐구력이랑 효능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함. 결국 태도가 중요한건데 한국의 문1해력 담론을 이걸 놓치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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