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모더니즘TV입니다!
원조 안아키를 하던 모더니스트가 있다는데, 정말일까요?
<우물쭈물 살다 이렇게 끝날 줄 알았지> 라는 오역으로도 유명한 모더니즘의 극작가 버나드 쇼.
1950년까지 우물쭈물 살다가 가버린 이 아일랜드 출신의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극작가는 현대를 대표하는 극작가처럼 느껴지곤 한다.
1950년이라니, 물론 70년 전이지만, 적어도 근대보다는 현대에 가깝게 느껴지지 않던가? 그렇게 느껴지지만, 그가 언제 태어났는지가 중요하다.
버나드 쇼는 장점도 많았지만, 단점도 많은 작가였다. 그의 단점 중 하나는 그가 너무나도, 지나치게 오래 살았다는 점에 있었다.
버나드 쇼는 1856년에 태어나 90년 동안 우물쭈물거렸다. 너무 오랫동안 우물쭈물거렸다.
오스카 와일드는 그보다 2살 많은 선배였고
현대 희곡의 아버지 3인방 중 하나인 체호프는 그보다 4살 어렸다.
버나드 쇼가 얼마나 오래 전 인간이었는지 대충 짐작이 될 것이다.
흔히 모더니즘을 20년대 전성기를 구사한 작가군으로 정의하기도 하는데, 이때 이미 쇼는 70을 바라보고 있었다.
같은 아일랜드 출신인 예이츠조차 그의 후배였고, 조이스는 그의 아들뻘이었지만, 두 사람 모두 버나드 쇼보다 일찍 죽었다.
늙은 사진만 잔뜩 있어서, 상상하기 어렵지만, 쇼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고, 또 젊은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더블린 촌놈으로 태어난 버나드 쇼는 불행하게도 집안이 막장이었다. 아버지 조지 카 쇼가 알콜중독자라 꽤나 혹독한 방황을 겪는 와중 음악교사로부터 음악에 대한 관심을 키우게 된다.
이 집안사가 또 막장이라 아주 재미나다. 알콜중독자를 부인이 좋아할 리가 있는가? 그래서 버나드 쇼가 태어나기 직전, 조지 존 리라는 이름의 음악 교사와 쇼의 어머니는 친하게 지냈다. 그리고 버나드 쇼에게 존 리는 음악을 엉성하게 가르쳐주며 그의 미래의 자산을 키워주었다. 버나드 쇼는 직감적으로 이 인간이 사실 내 진짜 아버지가 아닐가, 그런 두려움에 평생을 시달리고 만다. 다행히도 오늘날 쇼의 불안에 동의하는 사람은 없다.
어쨌거나 쇼에게 두려움을 주는 이들은 모두 공교랍게도 자신과 이름이 같은 조지들이었다. 알콜중독 아버지도 조지, 진짜 아버지일지도 모르는 음악교사도 조지, 나도 조지. 덕분에 쇼는 '조지'라 불리는 걸 극도로 싫어했고, 그가 '버나드 쇼'란 이름으로 굳이 자칭하며 오늘날까지 그렇게 불리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튼 간에 어머니는 집을 나와 이 교사를 따라가고, 쇼와 누나들도 따라갔다. 그런데 또 이 누나들이 서로 뿔뿔히 흩어지곤, 음악교사와 어머니와 함게 런던가고, 쇼만 아버지와 더블린 촌놈으로 남는 등 여러 드라마틱한 일들이 있지만, 광고를 보시고, 구독을 누르신다음 버나드 쇼 전기를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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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더블린 촌놈으로 남을 뻔한 버나드 쇼는 어느 날, 자신의 누나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곤, 그대로 런던으로 가, 가족의 죽음을 목격한다. 그리고 그대로, 더블린으로 돌아가지 않은 채, 영국에서만 쭉 살게 되었다.
"아무 것도 없는 더블린 촌뜨기가 어떻게 런던에서 살겠냐고요? 걱정 마세요, 전 천재니까요."
쇼는 몇 년 동안 음악교사 리의 칼럼 대필을 해주거나, 잡일을 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한다.
기나긴 인고 끝에 마침내 첫 소설을 운 좋게 출판했다.
그리고 망했다.
"완벽한 계획이었는데, 어째서지? 그래, 처음이라서 그래."
연달아 버나드 쇼는 4권의 장편을 더 출판하여, 몇 년에 걸쳐 총 5권의 소설을 쓰지만
전부 망한다.
"사실 소설 같은 쓰레기는 안 좋아했어. 평론이나 써야지."
이 후 쇼는 말년에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쓴 중편 <그녀의 신을 찾는 흑인 소녀의 모험> 정도만이 그나마 괜찮은 평을 받았지만,
버나드 쇼의 소설들이 재평가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쇼는 음악 평론가로서 그럭저럭 잘 나가기 시작했다. 자신감을 얻었는지, 연극 평론까지 시작했고, 이것 또한 그럭저럭 잘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 쇼는 문득 생각해보았다.
"그냥 내가 직접 써야겠다."
물론 소설과 비슷하게, 쇼가 처음부터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소설보다는 좋은 반응이었고, 이에 자신감을 얻은 버나드 쇼는 연달아 희곡을 쓰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성공을 거두기 시작한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 버나드 쇼는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한 독일산 털보가 쓴 불길한 이름의 <다스 까삐딸>과.
그대로 버나드 쇼는 그 당시 막 만들어진 영국산 사회주의 클럽 <페이비언 협회>에 가입했고, 열렬하게 활동하기 시작한다.
고리타분하고, 보수적인 영국놈들 답게, 혁명을 천박하다며 증오하고, 대신 영국식 사회주의를 표방한 시초와도 같은 페이비언 협회에서 활동하며
버나드 쇼는 사회주의 활동을 열렬히 하고, 정치 칼럼이나 음악 칼럼, 연극 칼럼, 그냥 칼럼, 희곡 등을 이리저리 쓰면서 기나긴 전성기를 보내기 시작한다.
"버나드 쇼 남바완!"
마침내 더블린 촌놈이 존 불의 불알을 꽉 잡은 채, 런던 극장가의 군주가 된 것이다.
버나드 쇼는 흔히 시대를 주도한 극작가들이 자신의 영향을 받는 분파를 형성하는 것과 달리, 언제나 혼자였다.
쇼는 언제나 쇼였고, 그를 모방할 이는 없었다.
물론 이는 눈에 보이는 형상에 불과하고, 실제로 버나드 쇼 이후 그의 영향을 다들 알게 모르게 받고, 때론 모방하기도 하였으므로 어쨌든 그 또한 영향력 있는 시대를 대표하는 극작가였다.
무엇보다, 이론가로서의 버나드 쇼의 업적 또한 눈여겨볼만하다. 페이비언 협회원으로 활동하며 그는 당시 유럽에 충격을 주는 대선배 입센에게 매료되었고, 이 입센이 왜 위대한지를 구구절절 페이비언 협회지에 연재를 하며, <입센주의의 정수>라는 이름으로 평론을 출판하였다.
충격적인 입센을 영국에 정착시키고, 이 책을 읽으며 수많은 극작가들이 입센에게 영향을 더욱 빠르게 받기 시작하였으니, 버나드 쇼는 명실상부한 입센의 사도 중 하나였다. 오늘날까지 조이스와 더불어, 대표적인 입센교의 사도로 버나드 쇼는 이름을 남긴다.
이후 버나드 쇼는 아주 오래 살며, 너무나도 오래 살며 계속 글을 썼고, 너무나도 많이 썼고, 또 많은 일에 참견해서 일일히 열거하는 것은 너무나도 귀찮으니까 생략하겠다.
물론 오래 산 만큼, 괴상한 짓이나 멍청한 짓도 많이 한 버나드 쇼였다.
그는 온건-사회주의자였지만, 혁명으로 탄생한 소비에트에도 관심이 있었고, 여행을 떠나 레닌과 스탈린과 만나기도 하였다.
그리고 스탈린에게 큰 호의를 표하며 그를 칭찬한다.
"하하, 고맙소, 고맙소, 동무!"
그리고 동시에 무솔리니도 극찬한다.
"아니...근데 난 공산주의자들 때려잡는데?"
"난 모두에게 공정하게 대하며 균형을 잡는 걸 좋아하거든!"
뭔가 좀 이상해보이지만, 이런 믿음 때문인지, 버나드 쇼는 살아생전 인종주의도 매우 증오하였다.
그런데 전쟁을 일으키기 전의 히틀러는 또 꽤 칭찬하며 호의적으로 평했다.
어째서 ????????
그리고 인종주의를 혐오한 버나드 쇼는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좌-우 가리지 않고 신봉하던 우생학을 신봉한다.
물론 좀 이상한 방향으로 신봉하긴 했다. 공교롭게도 버나드 쇼는 니체에게도 심취하였는데, 우생학을 초인을 탄생하기 위한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버나드 쇼의 믿음을 바탕으로 그려진 대표적인 희곡이 <인간과 초인>, 그리고 후기의 5편의 희곡으로 이루어져 무지하게 긴 <므두셀라에게 돌아가라>다.
이렇듯, 무언가 괴상하게 엇나가는 조합들을 선보이는 버나드 쇼의, 오늘날 관점에서 제일 큰 병신TV 소재감은 여럿 있지만,
역시 대표적으로 '백신반대운동'이 있을 것이다.
버나드 쇼가 시작한 것은 아니고, 당시 백신이 초창기라 지금보다 문제를 좀 더 일으키는 것은 맞았다.
하지만 여전히 백신을 맞는 것이 병을 예방하는 것은 통계적으로 사실이었지만, 여러 사람들이 제각기 다른 이유로 백신반대운동을 펼쳤고, 여기엔 버나드 쇼도 포함되어있었다.
"마귀의 아주 아주 더러운 것"
당시 빈민층에게 천연두 백신을 보급하는 것에 대하여, 천연두 백신을 버나드 쇼는 이렇게 표현하며 반대했다.
쇼 나름대로 이유는 있었다. 사회주의자 버나드 쇼가 볼 때, 더 시급한 것은 불결한 빈민들의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었지만,
정부는 그저 값싼 미봉책으로 백신 주사나 던져주곤 그대로 환경을 방치하는 꼴이었으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천연두 백신의 효과는 완벽했고, 백신 덕분에 오늘날 천연두는 사라진 질병이 되었다.
아이러니한 점은 버나드 쇼의 사진을 보면 늘 수염을 기른 모습 밖에 찾을 수 없는데, 이는 젊을 적 버나드 쇼도 천연두를 앓았기 때문이다.
그는 곰보 흉터를 가리기 위하여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고, 평생을 길렀다.
아무튼 간에 버나드 쇼는 90년의 세월 동안, 좋은 희곡도 쓰고, 좋은 일도 하고, 또 병신티비에 나올 법한 일도 동시에 한, 참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고 간 모더니스트였다.
우물쭈물하면서도 참으로 많은 일을 한 것이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그는 90년 동안 쉴 새없이 글을 썼고, 너무나도 많이 써서 오늘날 그의 전집을 모으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그래도 그의 작품들이 나름 오늘날까지 공연되며, 그의 대표작들은 우리나라에도 사실상 전부 번역되었으므로 <인간과 초인> 등을 읽는다면, 누구나 쇼처럼 우물쭈물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는 70 여편이 넘는 희곡을 썼지만, 이를 전부 수록한 희곡 전집은 그가 죽은 이후 딱 한 번 나왔으며 절판된지 오래다,
그 방대한 분량 때문에 다시 나오기는 어려울 듯하고, 번역도 기대하긴 힘드니 참으로 아쉬움만 남길 뿐이다.
물론 난 있다.
모더니스트의 기묘한 모험
- 20세기 최고 시인 예이츠의 환상록과 자서전 읽으쉴?
- <율리시스>는 어떻게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책이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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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막짤이 핵심 같다
데뎃 유교 탈레반 2편을 기대하는 중인 데수웅 어서 글을 써오는 데수웅
물론 난 있다에서 있는거 없는거 다 지려버리고 말았다
와우...
2편 안 써고 왜 이거 먼저 썼나 했더니 플렉스하려고 그랬네
님 때문에 독갤오는게 질리질 않음 - dc App
저 양반 피그말리온이랑 인간과 초인 말고는 제대로 번역된게 없을텐데.
입센 글도 가즈아
글 재밌게 쓰시네영
자랑추
난 버나드쇼 희곡 별로였던제
않이 성님 나 지금 2편 기다리고 있었는데 - dc App
털보 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