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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타노 다케시 영화를 본 적이 없음. 언젠가는 볼 거임. 근데 아직 안 봤음. 나한테는 전형적인 누군지는 아는데 뭐하는 놈인지는 모르는 놈임.

굳이 생각 노트를 꺼내본 이유는 사고방식의 편린이라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임. 그런 류의 책은 보통 재밌었음.

확실히 만담으로 성공한 사람이다 보니 재미는 보장함. 오토바이 사고때문에 머리에 박은 보형물 빼면서 "오뎅의 기분을 알겠군"이지랄하다 의사한테 쓸데없는 소리 말라고 쿠사리 먹는 부분이 제일 웃겼음.

글이 전반적으로 시니컬한데 어떨 때는 인간적임. 화장실이 더러우면 자기가 그냥 청소하고 나간다는 부분은 좀 놀랐음. 영화 찍을때도 그냥 감으로 다 하는줄 알았는데 의외로 계산적인 것도 신기함.
사실 이건 내가 설명하는 것보다는 기억에 남은 문장들을 보여주는 게 나을지도 모름.

성실하게 일하고, 가족을 지키며 자식을 키우는 삶.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생을 잘 살았다는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유명해지건 좋은 영화를 만들건 그 만족감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걸 이 나이가 되어보니 알 것 같다.
그렇긴 하지만, 너는 어느 쪽 인생을 선택하겠냐고 스무 살의 나에게 물었다면, 괴롭든 어떻든 뜨거운 인생을 선택하겠다고 대답했을 것 같다.
인생을 한 번 더 다시 산다 해도, 역시 나는 몇억 도의 고온으로 활활 타오르는 삶을 선택할 것이다.

미시마 유키오 씨는 보디빌딩에 검도에 권투까지 여러가지 스포츠를 섭렵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들은 바에 따르면 그의 움직임은 언제나 꼭두각시 인형처럼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미시마 씨 자신도 그것을 깨닫고 있지 않았을까? 자신에게는 운동신경이 없다는 것을.
그리고 이런 점들이 그의 미의식에 심한 상처를 입혔을 것이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보다 육체로 행동하는 것을 높이 평가하던 사람에게 이는 상당히 콤플렉스였을 것이다. 뜬금없지만 그의 자결도 이와 관계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정치적인 주장은 별개다. 요컨대 그의 자결에는 육체에 대한 정신의 보복이라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나는 이른바 기독교적인 신에게는 별로 친근감이 없다.
옛날 일본 사람들이 흔히 말했던, 해님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설이 더 마음에 와 닿는다. '무엇을 하든 네 자유다, 그러나 해님은 언제나 너를 지켜보고 있다'는 개념이 신과 인간의 관계에서 가장 이상적인 거리감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아이가 최초로 만나는 인생의 방해꾼이어도 좋다.
아이에게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아버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내 어린 시절의 기쁨은 이런 식으로 거의 포기에 가까운 동경과 그렇게 동경하던 것을 손에 넣었을 때의 기쁨으로 이루어져 있다.

요즘 세상에서 손에 넣지 못하는 것이란 좀처럼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걸핏하면 줄을 서고 싶어 하는 걸까? 라면 한 그릇을 먹기 위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줄을 서다니 나로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줄을 서는 것 자체가 목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든다.

노력하면 뭐든 이루어진다고 자식을 위하는 척하면서 부모의 체면을 차리는 말을 하지 말고, 어린 시절부터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 재능이 없는 아이에게는 그런 재능이 없다고.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부모가 가르쳐주어야 한다.

자기 자식이 아무런 무기도 갖고 있지 않음을 가르치는 것은 조금도 잔인한 일이 아니다. 그게 괴롭다면, 어떻게든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는 무기를 아이가 찾도록 도와줘라.
그걸 발견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아이가 세상에 나가 현실에 녹다운되어 상처를 입더라도 살아나갈 수 있도록 강인한 마음을 키워주는 수밖에 없다.
아이의 마음이 상처 입는 걸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상처 입고 힘들어하다 포기하면 되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원하는 것을 손에 넣으려면 노력해야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거라면 포기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아이의 골수에 새겨주도록 하라.
그것이 아버지의 역할이다.

세상은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무서운 존재가 있다는 것을 어릴 때 깨우치지 않으면 안 된다. 아이가 장래에 맞서야 할 세상의 파도는 주먹보다 몇십 배 무정하고 잔혹할 테니.

자유라는 것은 어느 정도의 테두리가 있어야 비로소 성립한다. 무엇이든 해도 좋다는 세계, 즉 테두리 없는 세계에 있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혼돈이다.

경쟁 상대가 적은 세계에 틀어박혀서 자기만족에 빠져 있는 사람이 오타쿠다. 제대로 된 세계의 제대로 된 경쟁은 한심하다고 하면서 부정한다. 사실은 지는 것이 싫고, 상처 입는 게 싫은 것뿐이면서.

오타쿠들의 지식 그 자체에는 의미가 없다. '아무도 모르고 나만 아는 것'이라는 사실에만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뭔가가 잘못되어 그 오타쿠가 좋아하는 세계가 주류가 되고, 쓰레기통에서 뒤져낸 것 같은 그 쓸데없는 지식을 세상 사람들이 누구나 이야기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아마 그 오타쿠는 당장 그 세계에서 도망쳐버릴 것이다.

내가 타인의 성공을 기뻐할 수 있게 된 것도 다른 연예인에게 먹힐 염려가 없어진 다음부터다.

떠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성공을 순수하게 기뻐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이 나이가 되어서야 알 것 같다.

나는 연예계가 다른 어떤 사회보다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극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자가 최고라고 인정받는 단순한 실력 사회라고 믿었다. 그런 믿음이 컸던 만큼 오히려 세간보다 더 엄격한 틀이 짜인 세계가 있었다.

관객들의 반응이 대단하니까 나도 신나서 만담을 하긴 하지만, 머릿속의 반응은 살인자처럼 차가웠다. 상대의 말을 받아칠 때도, 내 개그를 할 때도 관객의 웃음과 웃음 사이를 냉정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돈을 갖고 싶다느니 하는 당연한 말은, 똥 싸는 걸 아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다.

인터뷰를 할 때 "나만큼 돈을 벌고, 나만큼 행복해지면 된다. 남들이야 아무래도 좋다"라고 말하면, 옛날 기자들은 깔깔 웃었다. 그런 인정머리 없는 말은 하는 게 아니라는 인식을 모두 갖고 있었으므로, 예사로 웃어주었다.
하지만 요즘은 걸핏하면 "아, 그렇습니까?" 하고 진지한 얼굴로 듣는 기자들이 있다. '어, 이 기자는 진짜로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여기는 건가'. 그럴 때 "지금 한 말은 개그였네" 하고 정정할 수도 없으니 환장할 노릇이다.

누군가와 친구가 되려면 처음부터 손해를 각오해야 한다. 좋은 기억만 갖겠다는 태도는 상대에게 확실하게 민폐를 끼치는 것이다.
"네가 곤란하면 나는 언제든지 도와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곤란할 때 나는 절대로 네 앞에 나타나지 않을 거다." 이런 자세가 옳다. 서로에게 그렇게 생각할 때 비로소 우정이 성립한다.
'옛날에 나는 너를 도와주었는데 너는 지금 왜 날 도와주지 않는 거야'하고 생각한다면, 그런 건 처음부터 우정이 아니다. 자신이 정말로 곤란할 때 친구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진짜 우정이다.

권위를 끌어내리는 일은 있어도 불쌍한 사람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는 마음을 항상 갖고 있다.

도대체 경로석 같은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발상부터가 웃기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노인이 서 있으면 젊은이가 양보하는 것이 당연하다. 노인이 힘겹게 서 있어도 경로석이 아니므로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과 말이 통할 리가 없다. 대중교통에서 모든 좌석은 당연히 경로석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 중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요리사를 만나면 요리에 대해, 운전사를 만나면 차에 대해, 스님을 만나면 그 세계에 대해, 뭐든 아는 척하지 말고 순수한 기분으로 물어보라. 자랑 따위를 하는 것보다 훨씬 화젯거리가 풍부해지고, 무엇보다 그 자리가 즐거워진다.

메일은커녕 얼굴을 마주하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사람이다. 실제로 부딪혀서 이야기하고, 끝내 이해하지 못하면 그때 포기하면 된다. 인간이란 존재는 그렇게 간단하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지 않으니.

도구 덕분에 뭔가가 편리해지면 편리해진 만큼 인간의 어떤 능력이 퇴화한다. 요컨대 이것은 문명 자체가 안고 있는 병리다.

기본적으로 문학도 그렇고 그림도 그렇고, 예술이라는 것은 그 '..... 같은' 부분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현하느냐 하는 것이다.
여고생이 '빨간 석양 같은'이라고 한마디로 끝내는 석양빛을 제대로 나타내기 위해서 화가는 오랫동안 고민한다. 자신이 경험한 '.....같은'을 표현하는 것이 예술이다.

"<스가타 산시로>의 그 장면 참 좋았습니다."
구로사와 감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부분은 다른 감독이 찍었어."
"하지만 <천국과 지옥>에서 사장과 종업원의 아들이 바뀌는 아이디어는 정말 멋졌습니다."
구로사와 감독이 큰 소리로 웃었다.
"그건 조감독의 아이디어야."
그야말로 식은땀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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