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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아픈 소설들의 시대다. 여성들은 차별 때문에 아프고, 소수자들은 혐오 때문에 아프고, 약자들은 약해서 아프다. 이들을 위한 소설들의 시대다. 아픈 사람들만 소설에 등장하다 보니, 주인공 A는 왜 아플까 B는 왜 아플까 원인 규명에 바빠진다. 소설을 읽다 보면 어느새 독자가 아니라 정신의학 계통 의사가 된다. 원인진단 뒤 그 아픔을 공감하고 소설은 끝난다. 이런게 나쁘단 건 아니다. 그냥 이런 소설의 시대란 얘기다. 서점을 뒤져보면 이런 소설만 자리를 차지고 하고 있단 소리다. 아픈 소설들을 읽다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픈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소설이 있는건가? 소설은 병원인가?
<야성의 부름>은 이 병원을 탈출시킨다. 읽다보면 병원에서 나와 사자, 호랑이, 상어, 악어가 사는 어린이 시절에 상상했던 막연한 정글 혹은 초원으로 돌아간 기분인 든다. 세상엔 아픈사람들만 있는 곳이 아니었지. 무섭지만 살아 움직이는 맹수들이 사냥하고, 짝짓기하고, 서열싸움을 하는 곳이었지. 살아움직이는 곳이었지. 초등학교때 처음 읽었던 첫 소설, 어린이 소설전집 중 한권이었던 걸리버 여행기를 떠올리게한다. 소인국에 간 주인공이 거기선 거인이 된다는. 걸리버 여행기를 읽을때는 거인이 됐다. 푸시푸시 다 때려부시는 상상을 했고, 그 상상은 즐거웠다. 야성의 부름은 즐겁다.
주인공 벅은 개다. 따뜻한 미국 남부에 살던 벅은 납치된다. 이후 납치된 인간들에게 처맞아가며 썰매개로 변신하는게 소설의 주요골자다. 스토리는 군더더기 없이 심플하다. 다만, 그 과정에서 벅이 성장하는 서사가 꽤 재밌다. 벅은 원채 재능캐인데, 그걸 발견하면서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고, 뒤질뻔한 순간에서도 살아남는다. 난관은 있으나 실패는 없다. 이 소설을 읽는 다는건 호날두 일대기를 보는 것과 같다. 물론 호날두가 최근 노쇼 때문에 벅과 같은 ‘개’가 되어 안타깝지만. ‘개’가 되기전 ‘우리형’시절의 호날두만 생각하자.
우리형 시절의 날두는 뭐 뺄게 없지 않나. 축구잘해. 잘생겼어. 기부잘해. 섹스잘해. 축구는 메시가 더 잘한다고 치더라도(참고로 메시, 호날두 빠도 아님) 환생시 호날두 or 메시? 라고 물으면 남자들은 거진다 호날두를 선택하지 않나. 호날두에 열광하는 건 수컷들이 꿈꾸는 욕망을 제한없이 펼칠 수 있다는 데 있다. <야성의 부름>은 수컷들이 잊어버렸던 욕망을 슬그머니 일어서게 한다.
아 또 사기치는 것 같은데... 재미있을 것 같네... 일단 추 - dc App
기승전호날두 ㅋㅋㅋ
그래? 팽귄클래식은 품절이네. 근데 민음 표지 쌉간지에 역자도 괜춘해 보여서 일단 카트에 넣었다 담달에 산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