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쿤데라는 도끼보다는 톨스토이를 선호하는 쪽이긴 하지만 나는 쿤데라 전집을 쭉 읽으면서도 쿤데라가 도끼를 싫어하는지는 잘 모르겠던데.
이 내용에 관련해서 예전에 로쟈인가 그 사람이랑 다른 사람이 관련 카페에서 논쟁했던걸로 알고 있고 브로드스키라는 노벨상 수상 작가는 쿤데라가 도끼를 오독했다는 내용으로 논문도 썼던데 생각보다 논란이 좀 있었던 내용이었는가보다.
일단 이런 말이 나오게 된 경위는 쿤데라가 《운명론자 자크》를 각색한 희곡 앞에 수록한 에세이 때문임. 거기서 쿤데라는 《백치》를 희곡으로 각색해달라는 부탁에 갑자기 도끼에 대한 거부감이 느껴졌고 그 이유가 모든 것을 감정으로 치환하는 과장된 그의 소설들이 싫더라..... 뭐 이런 얘기를 했음.
근데 《커튼》이나 《만남》을 보면 마냥 싫어한다고 보기에는 힘든거 같단 말이야. 《커튼》에서 발자크나 도끼 소설에서는(특히 도끼. 아예 《백치》를 예시로) 여러 사건들이 밀도있고 서술되지만 이는 소설에서 우연이 넘쳐나게 만들고 소설의 자연스러움이 떨어지면서 연극적 성격이 짙어진다고 얘기함. 하지만 그러한 특징이 오히려 독자에게 매혹적으로 다가오고 이를 '삶의 갑작스러운 밀도의 아름다움'이라고 정의함. 이것이 그쪽 계보의 미학이라고. 그러한 연속된 사건은 모두가 꿈꾸는 드라마틱한 것이 아니냐면서 작가 자신의 경험을 추가로 얘기하지.
《만남》의 2장에서 쿤데라는 6가지의 소설을 언급하고 각 소설 별로 작가 자신이 본 소설이 포착한 실존에 대해 이야기함. 여기서 첫 타자로 등장하는 소설이 《백치》임. 이쯤되면 쿤데라가 도끼를 싫어한다고 여기기에는 좀 과도한 해석같음. 《운명론자 자크》 서문에서 러시아의 체코 점령 당시 작가의 경험을 얘기하는데 이러한 경험에 따른 일시적인 비호감 상승이 아니었나 싶은데.
지금 든 생각이지만 이런 내용들이 쿤데라를 상당히 괴롭혔던거 같음. 루슈디 사형 사건에 대한 에세이도 그렇고 이 아죠시는 글 쓸 때마다 어느정도 시끌시끌했던거 같은데 자신이 도끼를 싫어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 위해 뒤에 나온 에세이들에 호의적인 내용을 추가한게 아닌가 싶네. 《늦여름》 관련해서도 앞에서는 깠다가 뒤에 나온 에세이에서는 칭찬하는걸로 봐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을 듯.
뭐 쿤데라 요새는 인터뷰도 안한지 몇년 됐고 대외적인 활동이 거의 없지. 아마 한창 소설 쓰던 시기에 냈던 에세이들이 불타면서 논란 대상이 되는 일들에 염증을 느끼고 더 이상 휘말리고 싶지 않은거 같다. 자기가 했던 말처럼 소설보다 소설가가 기억되기 싫은가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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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닌데 적어도 93년이나 1984처럼 적대적인 서술을 하지 않은거로 봐서 싫어하는거 같지는 않음. "뭐 딱히 좋아하지는 않는데 나름 대로의 맛이 있잖어~" 이런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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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제일 싫어하는 상황인뎁쇼
아직 살아 있으니 그냥 누가 가서 여쭤보면 안 됨?
작가본인이 싫다고 하면 말짱도루묵인데스...
자까님 만나고 싶어여 흑흑 하지만 본인이 거부하는걸 팬이 대상의 희망을 무시하면 안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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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특징이 좀 크긴하지. 근디 생각해보니 《소설의 기술》에서 《악령》의 구성 형식에 대한 칭찬도 했던거로 기억하는데 그래도 나름 소설가로서 좋게 보는건 있지 않았을까?
연극적인 성질은 비교적 최근에서야 지양된 게 아닌가? 아예 시대적인 한계라고까지 느껴지는데
하지만 플로베르도 있고 똘이도 있고....
좀 쓴다는 작가도 아니고 대문호, 거장 딱지 붙은 사람들이나 그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거니 한계가 더 명확해지지 않음? 뭐든 그 둘(더하기 몇 명 더)이 일반적인 경향은 아니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