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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야마 슈지는 누구인가? 시인이자 평론가이자 에세이스트, 영화감독, 극작가, 경마 평론가 등 안 해본게 없는 만능 예술인이라 할 수 있다.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는 1967년에 출간되었고, 본인이 영화로 제작하기도 했다.
이 짤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아주 특이한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도 굉장히 파격적인 내용이 많이 등장한다.
사실 어머니와 내가 자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며, 아버지와 내가 같이 자는 것 역시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실제로 홍당무라는 한 재수생은 매일 아침 자기 아버지와 관계를 갖고 성적인 요구를 떨친 후에야 비로소 책상에 앉곤 한다.
쾌락이란 그것을 얻은 자에게는 하나의 재산이다.
사람은 누구와도 함께 잘 수 있는 <자유>가 있으며, 그때 장애물이 되는 것은 이미 행방불명된 하나님이나 <정상적인 것>에 대한 타성적 습관이 아니라 단지 질투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점에 우리의 견해는 일치하고 있다.
질투가 없어진다면 성에 관한 온갖 터부는 일시에 무너져 버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들은 자고 싶어하는 상대가 아버지든 어머니든 선생님이든 아니면 낯모르는 사람이든 마치 한잔의 커피를 마시듯 가벼운 마음으로 서로를 애무할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도덕이란 원래 권력자가 질서와 자신의 안전을 위해 만들어낸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모두 알고 있다.
쾌락이란 그것을 얻은 자에게는 하나의 재산이다. 사람은 누구와도 함께 잘 수 있는 '자유'가 있으며, 그때 장애물이 되는 것은 이미 행방불명된 하느님이나 '정상적인 것'에 대한 타성적 습관이 아니라 단지 질투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점에 우리의 견해는 일치하고 있다. 질투만 없어진다면 성에 관한 온갖 터부는 일시에 무너져버릴 것이다.
모든 이와 성교를! 내가 이렇게 외치면 당신은 점점 미간을 찌푸리며 혀를 차겠지만, 성교의 즐거움, 의외성의 즐거움 그리고 상상의 즐거움을 알게 된다면 남자 사이 혹은 부자 사이, 사람과 짐승 사이, 사제 사이 등 모두에게 열려 있는 성의 가능성이 바로 인생의 실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요, 아버지!
이 책이 나온게 1967년이다. 대한민국은 이때 박정희가 6대 대통령 당선됐을 때다.
존나 파격적이다.
월급을 양복이나 아파트, 식사 등에 일정하게 배분한다면 우리도 금방 '거북이' 무리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지 말고 자기 존재 중 쏟아부을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여겨져니는 한 점을 골라 그곳에 경제력을 집중시키는 것이다. 아버지는 양복파나 미식가, 스포츠광과 같은 젊은이들을 한심한 놈으로 여기겠지만, 사실 이렇게 경험을 축적해 나가는 것은 지극히 사상적인 행위이다.
이게 테라야마 슈지가 책에서 주장하는 '일점호화주의'인데, 평소에 돈을 아끼는 대신 자기가 좋아하는 물건에 확실히 돈을 써버리라는 식이다.
약간 이런 느낌?
무슨 얼어죽을 '노인의 날'이란 말인가. 어차피 지금은 노인들이 모든 실권을 장악한 채 횡포를 일삼는 '노인의 시대'가 아닌가.
"쉰다섯에 정년 퇴직하고 남은 생을 쓸쓸히 보내는 고독한 노인!" (본인이 원하기만 하면 양로원에 들어갈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청년이 경제력으로 노인과 어깨를 겨루는 것은 무리다.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노인들은 섹스까지도 돈으로 장악하려고 한다. 그러나 성과 경제가 일치하는 사회는 불행한 사회다.
중학교 계단에 앉아 '정11액이 몇 미터나 날아갈까' 경쟁을 하던 건강한 젊은이가 애인을 노인에게 빼앗긴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적어도 자연의 섭리에는 맞지 않는 일인 듯싶다.
사토 수상(사토 에이사쿠)을 비롯해 최근에 노인들이 저렇듯 '애교가 풍부해진 까닭'을 생각해보자. 노인들이 저렇게 싱글벙글 웃고 있는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노인들이 '이젠 정치뿐만이 아니라 성적으로도 청년들을 노예로 만들어버렸다.' 며 안심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래서 예전과 같은 거실에서 똑같이 차를 마시면서도 한결 느긋한 표정으로 청년들을 이해하는 듯한 시늉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청년들을 우습게 본다는 이야기다.
프로이트의 사상을 내세우는 것은 아니지만 욕망 없이는 미래도 기대하기 힘들다. 젊은이들이 그 공 속에 넘쳐흐르는 성적 르네상스를 무기 삼아 성의 영역부터 반격해 들어가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노인들의 뜻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빨리, 유용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사용해야 한다.
청년이여! 큰 엉덩이를 품어라
대중교통의 모든 좌석은 경로우대석 아니냐고 한 기타노 다케시랑 비교하니까 좀 웃기다.
다음과 같은 사람들에게는 살11자 라이선스를 내주고 싶지 않다. 그들이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고 할지라도 그 내면을 살펴보면 사고사나 병사이기 때문이다.
[살11자로 취급할 수 없는 부류]
1. 조루, 성기 단소(短小)로 고민하는 사내
2. 대학 입시에 실패한 사내
3. 롤링 스톤즈의 음악을 듣고 아무런 느낌도 없는 사내
4. 치질로 고생하는 사내
5. 별다른 이유 없이 사는 것이 싫어진 사내
6. 파친코에 미쳐 주위사람들에게 비난받는 사내
7. "의미란 무엇이고 무의미란 무엇인가? 체계화된 사상은 의식의 사유화에 불과하며 1920년대 이후 이데올로기는 늘 역사적인 체제의 보조물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각자 목적에 맞게 무의미를 추구하고 자신의 부르주아 사상에 한계를 느끼며....."라는 식의 질문에 사로잡힌 사내
8. 숫총각, 숫처녀
9. 저소득 노동자
10. 상어지느러미 수프를 먹어본 적이 없는 사내
11. 여자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내
12. 다카쿠라 겐의 영화를 보고 부러워하는 사내
13. 공금횡령, 도산, 생활고 등에 시달리는 사내
14. 무좀에 시달리는 사내
살111자은 인생을 허구화시키는 의식이자 연출법이 바탕이 된 축제이며 자기표현이고 성스러운 일회성이고 그리고 쾌락이다. 사는 자유와 죽는 자유에 동등한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서라도 모방을 배척하고 엄격한 라이선스 규약을 만들어 특권계층의 점유물로 삼아야 한다.
살11자 좋아하는 일본 작가 아니랄까봐 나중에는 미시마는 가장 멋지게 죽었다고 평했다. 부모와 자식 간에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한단 말인가? 면서 당장 집에서 나와 자유로운 생활을 해보는 게 좋다고 했다.
참고로 이 책이 출간되니까 일본 청소년들의 가출이 급격히 증가했다. 서태지가 컴백홈~~하면서 집으로 돌아와라 이럴 때 테라야마는 당장 집에서 나가!!! 이러고 있었던 것이다.
여러므로 재밌는 책이다. 특히 책 디자인이 내가 지금까지 읽은 책 중 가장 특이했음.
좀 특이한 에세이가 읽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이런 책이었구나... - dc App
유쾌하지도 않은데 치밀하지도 않고 파격적이지도 않아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