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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는 최대한 피했습니다. 사실 이 소설 자체가 스포일러할 내용이 거의 없기도 한 지라...





172회 아쿠타가와 수상작, 스즈키 유이의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입니다.



수상자가 겨우 01년생이라는 점, 단 30일 만에 탈고를 마쳤다는 점, 이동진, 신형철 등 국내의 저명한 평론가들이 앞다투어 추천했다는 점.


여러 모로 화제에 올랐던 책입니다.


저도 읽어야 할 목록에 넣어두고 이제야 책을 다 읽게 되었네요. ㅋㅋ




우선 간략하게 책의 줄거리를 소개드리자면,


평생 괴테를 연구해온 괴테 문학의 권위자 '히로바 도이치'가 어느 날 출처를 알 수 없는 괴테의 명언을 보고 그 명언의 출처를 찾아간다는 내용입니다.


정말 간단한데, 이 간단한 내용이 소설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ㅋㅋ


특정한 어떤 사건들이 중점적으로 진행된다기 보다는, 중심 인물의 사유가 펼쳐지는 흐름 속에서 소설이 전개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전형적인 백과사전형 소설입니다. 제발트나 보르헤스, 핀천, 드릴로 등을 독서해보신 분들이라면 낯설지 않으실 겁니다.


하지만 위에 열거한 작가들에 비하자면 확실히 '더 가볍습니다.' (다만 포모스러움이 적다는 거지 소설 이해는 그와 별개로 난도가 꽤 높습니다.)


게다가 다루고 있는 주제와 소재가 모두 괴테라는 점, 헤겔의 관념론이 매우 돌출되어 있는 주제의식 등을 비교해보면


포스트 모더니즘의 형식을 차용한 모더니즘이라고 볼 여지도 있습니다.


일단은 후기 포스트 모더니즘, 혹은 라이트 포스트 모더니즘 정도로 분류하면 정확할 듯싶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포스트 모더니즘이지만, 정통 포모 팬들이 읽는다면 이게 포모인가? 할 정도로 포모 특유의 난해함은 적습니다.


소설 자체도 글머리에 던져진 화두를 뚝심 있게 밀고 가 완전히 닫힌 결말에 이르기 때문에 고전적인 소설의 기서결 구조를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더불어 소설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학문에서는 할 수 없는 자유롭고 발칙한 해석이 곧잘 등장하기에 단테나 괴테 같은 총체성 문학으로서의 정체성이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의 경계선에 있는 문학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있고 바로 이런 점만으로도 이 소설을 읽을 매력이 충분하다고 느꼈습니다.





신형철 평론가는 스즈키 유이를 오에 겐자부로, 히라노 게이치로의 계보를 잇는 일본의 차세대 소설가로 일찍이 점찍었는데,


헛된 평은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겨우 01년생인 작가의 손에서 이런 인상적인 소설이 등장했다는 점에서 저도 '스즈키 유이'라는 소설가의 미래가 매우 기대됩니다.




*




그러나 이 책을 쉽게 독갤러 분들께 권유해드리기는 힘들 것 같은데,



1. 백과사전형 소설 + 포스트 모더니즘 특유의 버거운 서사 진행 방식.


2.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방대한 배경 지식.



이 두 가지의 이유 때문입니다..


1번의 경우는 위에도 써놨지만 그렇게까지 큰 장애물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조이스, 쿤데라, 드릴로, 프루스트는 물론이고


이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완만하다고 평가받는 제발트, 보르헤스와 비교하더라도 확실히 독서가 쉽습니다.



진짜 문제는 2번인데, 정말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온갖 인용 때문에 이게 소설인지 교양 시험인지 헷갈릴 수준입니다.


이 소설의 진가는 뛰어난 문장이나, 구조에 있다기 보다는 이렇게 절묘할 수가 있나? 싶은 시의적절한 인용들이기 때문에


인용에 쓰인 지식의 출처나 배경을 모른다면 소설을 읽는 즐거움도 반토막 날 수 있습니다.



우선 소설의 배경 지식으로 사용된 것들을 대략적으로 나열하자면,


첫째로 소설에서 가장 주요하게 다뤄지는 '괴테'의 문학과 그 대표작 '파우스트'가 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괴테의 <색채론>과 <파우스트만>은 꼭 기본적으로 읽고 들어가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더해서 괴테의 문학을 이해하는 데에 열쇠가 되는 기독교 성서와 기독교 역사에 대한 대략적인 배경 지식,


플라톤과 플라톤주의-중세 교부 철학 사이의 관계, 기타 희랍 철학,


희랍 신화 (바우키스와 필레몬의 설화가 후반부에 제법 중요하게 등장합니다.)


칸트에서 헤겔로 이어지는 독일 관념론,


(특히 헤겔이 중요합니다. 작품 내에서 꿈속의 인물로 등장하기도 하며 결말부에서는 헤겔의 변증법이 주제의식을 이해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합니다.)


단테, 괴테, 톨스토이 + 프루스트 등의 총체성 문학 (적어도 총체성 문학의 개념은 알고 들어가는 게 중요합니다.)



일단 생각나는 대로 써보았는데 소설을 적절히 이해하기 위해서 위의 배경 지식은 가지고 들어가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인문학 전공자거나 혹은 웬만한 다독가가 아니면 갖추기 어려운 배경지식인 만큼 이 소설이 제법 진입장벽이 있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 외에도 필수적이지는 않지만 지나가듯 사용되는 인용들의 사례를 몇 개 더 적어보겠습니다.


니체, 벤야민, 비트겐슈타인, 소쉬르 (잠깐 지나갑니다.)


스피노자의 '에티카'(역시 잠깐 언급되지만 주석이 달리지 않아 에티카를 모른다면 이 부분은 이해가 어렵습니다.)


무라사키 시키부의 <겐지모노 기타리>와 오에 겐자부로 <홍수는 내 영혼에 이르고> 등의 일문학.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라이프니츠와 마르틴 루터(철학보다는 개인사), 베토벤과 바흐.


주세페 토르나토페 <시네마 천국> 앨런 크로슬랜드의 <재즈 싱어> 같은 고전 영화들.... 등등



이 외에도 문학, 철학, 음악, 영화 가리지 않고 엄청나게 많은 인용이 등장하는데 저도 상당 부분은 놓쳤지만 아는 것들이 나올 때는


'아 여기서 이걸 인용하네.'하면서 반갑게 읽었습니다.



작중 주인공의 딸로 등장하는 노리키 라는 인물이 영미문화에 관련된 전공을 하고 있는 지라


영미권 팝 음악도 중간중간 재치 있게 등장합니다.


주인공은 독문학 권위자인데 또 노리카는 영어영문학이라 한쪽은 독일어로 인용하고 다른 한 쪽은 영어로 인용하는 괴랄한 장면도 자주 등장합니다.


독일어는 제법 역자가 친절하게 주석을 붙여 놨는데 영어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어서 영어를 어느 정도 해석하실 수 있다면


독서에 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애초에 이 작품에서도 '번역'이라는 소재가 심심찮게 등장하는 지라 영어가 어떻게 일어-국어로 변환되는 지 과정을 알 수 있어야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 제법 있습니다.




*



참 많은 인용을 예시로 열거했지만 책의 분량이 그렇게까지 많은 편은 아니기에 움베르크 에코나 토마스 만에 비견될 만한 어떤 방대한 지식이 직접적으로 나열되지는 않습니다.


더해 작품의 주제 의식도 단테나 괴테, 톨스토이에 비할 만큼 장대하지는 않고 이미 존재하는 여러 격언을 반복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이 작품의 의의는 소위 '책덕후'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서로 알아 볼 수 있는 재미난 코드를 통해서 문학의 고전인 괴테를, 독창적으로 해석해 다시 읽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배경 지식을 알아볼 수만 있다면 나름 재밌고도 가볍게 술술 읽어볼 만한 책이기도 합니다.


저도 책을 읽으면서 마주치는 것들은 반갑게 읽었고 모르는 것들은 따로 필기해가며 읽어볼 책 리스트에 넣었습니다.


이렇게 저자를 통해 내가 모르는 지식을 채워가는 부분이 백과사전형 소설을 읽는 즐거움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진입 장벽이 제법 높아 쉽게 추천드리지는 못하지만,


반대로 나도 독서 좀 해봤다, 싶으신 분들이라면 한 번 도전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특히 괴테나 헤겔처럼 독일의 고전 인문학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정말 재미있게 읽어보실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이런 백과사전형 소설을 좋아하신다면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저 역시 현대 영미문학, 분석철학을 중점적으로 읽음에도 이 소설만큼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스즈키 유이라는 작가가 미래의 고전이 될만한 재능을 일찍이 보여줬다는 점에서도 저는 주목하고 있습니다.


특히 일문학에서는 사실상 희박했던 장르를 개척한 시도였기에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국내에는 정지돈 작가가 이런 부류를 써 왔지만 안타깝게도 논란에 휩싸여 현재는 작품 활동이 드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금희 작가가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통해 이 분야를 다루었을 때는 상당히 놀라우면서도 반가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부디 이 계보가 끊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