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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히피아스>
왜 뜬금없이 독회 3주 차에 히피아스인가.
박종현 역으로는 가장 최근 따끈따끈하게 번역된 대화편을 왜 굳이?
박종현 선생님의 해제 97p
'나는 플라톤의 이 대화편이 arete(사람으로서의 훌륭함)는 곧 episteme(앎)이다.라는 소크라테스 철학의 핵심적 주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따라서 소크라테스 철학의 진짜 속내를 밝혀 보이려는 작업의 일환인 플라톤 초기의 소크라테스적 대화편들 중의 하나라는 생각을 도저히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찰스 칸도 <이온>에서 호메로스에 관해 이야기하며 논의했던 능력에 대한 탐구가 <히피아스>로 이어진다고 말하며 초기 대화편 중 하나로 보고 있다.
대화편은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의 갈드컵으로 시작한다.
그러다가
364b - 계략이 풍부한 사람을 거짓말쟁이로 말씀하시는 걸로 보이네요
소크라테스 특유의 긁기가 시작되더니
결론에는
375e - 앎과 힘을 가진 혼은 더 올바를 것이나, 더 무지한 혼은 더 올바르지 못하겠죠?
376b - 따라서 자발적으로 불의를 저지름은 훌륭한 사람의 소관사이나, 비자발적으로 그럼은 나쁜 사람의 일입니다. 훌륭한 사람이 훌륭한 혼을 지니고 있을진대.
자발적으로 불의를 저지르는 사람이 비자발적으로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보다 더 낫다?
소크라테스는 작중 오디세우스를 들먹이며 이런 식으로 말한다. 거짓말은 지식을 요구한다.
즉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건 알고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고, 이건 다시 말하면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알고 있는 그대로를 진실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즉 동일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 비자발적으로 거짓말을 한 사람은 자발적으로 거짓말을 한 사람에 비해 알고 있는 것이 없다.
어이가 없었는지
끝에 가서
376b-히피아스: 제가 어떻게 선생과 이를 두고 동조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소크라테스 선생! -소크라테스: 실은 제 자신과도 그렇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올바름(정의)을 계속 달리기, 감각, 배를 모는 기술, 연주 기술 등에 빗댄다. 올바름을 익힐 수 있고 유무와 정도를 파악할 수 있는 지식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렇게 단순하게 뭉뚱그려서 다 테크네라고?
알고 있다면 왜 아무도 자발적으로 잘못을 저지르지 않지?
소크라테스의 좀 엉성해 보이는 이 대화편은 찰스 칸의 말대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본인 저서에서 언급하지 않았으면 <대 히피아스>처럼 위서로 판명되지 않았을까 생각될 정도다.
박종현 쌤의 해제 100p처럼
- "자발적으로 불의를 저지름은 훌륭한 사람의 소관사이다."라는 말 속에 참으로 훌륭한 사람은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있지만, 참으로 훌륭한 사람으로서는 그런 선택은 단연코 하지 않는다는 역설적인 확실성이 담보되어 있다.-
이렇게 보면 얼추 이해가 되긴 한다.
찰스 칸도 <소 히피아스>가 이런 역설을 던진 이후 다른 대화편 <고르기아스> <라케스> <카르미데스> <메논> <에우튀데모스> 그리고 <국가>로 논의가 발전되면서 '좋음'의 이데아로 나아간다고 설명하고 있다. 플라톤 대화편을 통일론으로 보는 입장답다.
<대 히피아스>
위작 논쟁과 그 치부가 드러나는 문구는 책에 다 나와있으니 굳이 또 언급할 필요 없겠다.
아름다운 게 뭐냐는 말에
히피아스는 287e에서 아름다운 처녀가 아름답다고 한다.
이후 논의하면서
황금이다.
적합함이다. 하지만 적합함은 아름다워 보이게 만들 뿐이지 아름다운 것을 만들지 않는다.
그러면 유용한 것이 아름답냐. 유용함은 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데 이게 곧 유익함이다. 그러나 좋은 걸로 만들 뿐이지 역시 아름다운 것을 만들지 않는다.
시각과 청각으로 즐거운 것이 아름답냐. 그러나 이 또한 아름다움을 간파하기에는 불가능하다.
304a에서 히피아스가 하는 말은 조금 날카롭다. '이 모든 것들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실로 논의를 갉아내고 조각낸 것들이며, 방금 말했듯, 얇게 쪼개진 것들입니다.
열심히 돌려깎아대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튀어나온 아름다움의 관념은 마치 온전한 사과가 있는 건 알겠는데 우리는 그 사과의 일부분만을 보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당연히 이데아의 부분을 보았다고 해서 아름다움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이데아를 눈으로는 볼 수 없을지언정 우리는 이성을 통해 이데아를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모상을 더듬어 올라가며 위로 나아가려는 와중에 위서처럼 느껴진 어색한 표현 304c '신적인 어떤 운명이 제지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원본이 있는 것은 알지만, 닮은 것들을 더듬어 가는 이 대화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아름다움을 온전히 알기란 어렵다는 말로 끝을 맺는 것도 이런 뜻일 것이다.
다음 고르기아스는 2주 분량으로 끊어서 가겠습니다.
고르기아스 447a ~ 481b (소크라테스와 폴로스의 대화)까지 읽어오시면 되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백지헌 여신짤 ㄷㄷ
두 대화편 모두 굉장히 흥미로운 주제를 다뤘음에도, 히피아스가 예스맨 정도로만 나온 탓에, 논의가 그렇게까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습니다 ― 소 히피아스 박종현 선생님께서도 언급하셨지만, 우리가 자발적으로 불의한 짓을 하는 자를 더 훌륭하다고 꼽는 근거는 그자의 불의가 그자의 정의에 있습니다 그들이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다는 것에 근거한다는 것이죠 우리가 자발적으로 못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택하는 것 또한 우리가 그 위치에 있다면 우리는 안 하는 대신 잘할 것을 상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괴상해 보이는 결론은 플라톤적 상식에 입각해서 보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 대 히피아스 이데아가 본격적으로 논의에 등장하는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만, 상술한 이유로 썩 좋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미의 한계에 대한 도전이 일상화된 동시대의 기준에선 보편적 미라는 개념을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국가의 선전 한 번이면 '전쟁은 추하다'는 상식이 '전쟁은 아름답다'는 상식으로 순식간에 변모하지 않습니까 결국 보편적 미라는 것에 가닿으려면 그런 일반성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재밌게도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처럼, 플라톤은 엘리트의 길을 제시하는데, 반대로 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는 백치의 길을 제시합니다 물론, 두 갈래 모두 이상주의적인 측면이 강하고, 실천적 길을 찾아내는 것은 우리에게 남겨진 지도 모르겠습니다 (플라톤은 이후 대화편에서 그런 길을 보여줄지 모른다는 기대가 있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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