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터 A. 아서(Chester A. Arthur)의 허먼 멜빌(Herman Melville)에 대한 팬덤은 주로 1879년 언론인 조지 알프레드 타운센드(George Alfred Townsend, 필명 "Gath")의 인터뷰에서 드러난 일화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멜빌의 뉴욕 세관(Custom House) 직위를 여러 차례 보호한 아서의 호의와 연결되어 있으며, 신뢰할 수 있는 역사적 자료(신문 기사, 멜빌 전기 등)에서 확인됩니다.
주요 세부 이야기
배경: 멜빌은 1866년부터 1885년까지 뉴욕 세관의 부세관 검사관(deputy inspector)으로 근무했습니다. 이 직위는 정치적 후원(patronage)에 의존하는 자리로, 정권 교체 시 해고 위험이 잦았습니다.
아서의 개입: 아서는 1871년부터 1878년까지 뉴욕 세관장(Collector of the Port of New York)으로 재직했습니다. 정치적 정기적 인사 이동(예: 해고 목록 작성) 중 멜빌의 이름이 올라올 때마다 아서가 이를 보호했습니다.
아서가 해고 목록에서 "Herman Melville" 이름을 보고 "그가 Typee와 Omoo의 그 작가인가?"라고 확인한 후, "그런 사람을 단순한 사무직에서 해고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며 직위를 유지시켰습니다.
아서 본인에 따르면, 그는 《Typee》(1846), 《Omoo》(1847), 그리고 《Moby-Dick》(1851)을 "큰 관심을 가지고 읽었다(with a good deal of interest)"고 합니다. 특히 초기 남태평양 모험 소설(Typee와 Omoo)에 대한 호감이 강했으며, 문학인에게 세관 직위를 주는 걸 즐겼다고 밝혔습니다.
1879년 인터뷰 내용 (타운센드의 Cincinnati Enquirer 기사, 1879년 6월 30일 Saratoga에서):"해고될 사람들 목록에 'Herman Melville' 이름이 있었다. 이상하게 느껴져 작가와의 관계를 물었더니 본인이라고 하더군요. 나는 Typee와 Omoo, Moby Dick을 상당한 관심으로 읽었고, '그런 사람을 단순한 사무직에서 쫓아내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를 구했다. 세관장이 된 후에도 그를 눈여겨 보호했지만, 그에게는 한 번도 말을 걸지 않았다(though I never spoke to him)."
이 인터뷰는 여러 신문에 재인쇄되었으며, 멜빌의 생계 안정을 아서가 일방적으로 도운 사실을 보여줍니다. 멜빌 본인은 이 보호를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추가 맥락
아서는 멜빌을 직접 알지 못했으며, 대화를 나눈 적도 없습니다. 순수한 문학 팬으로서의 일방적 호의였습니다.
멜빌 전기학자 허셸 파커(Hershel Parker)의 《Herman Melville: A Biography》(1996, 2002)와 다른 자료(위키피디아, Lansingburgh Historical Society 등)에서도 이 일화가 반복 확인되며, 아서의 개입 덕분에 멜빌이 19년간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었다고 평가합니다.
당시 《Moby-Dick》은 상업적 실패작으로 덜 알려졌지만, 아서가 이를 언급한 점은 그의 멜빌 작품에 대한 폭넓은 관심을 시사합니다.
이 이야기는 체스터 아서가 대통령(1881-1885)이 된 후 더 유명해졌으며, 멜빌의 후기 생애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에피소드입니다.
일상적인 세관 업무와 고난
근무지: 주로 허드슨 강변의 Gansevoort Street Wharf(현재 미트패킹 디스트릭트 근처)나 비슷한 부두에 배치되었습니다. (우연히도 그의 외가 성씨 Gansevoort에서 유래한 거리명입니다.)
하루 일과:
선박에 올라 화물(상자, 통 등)을 직접 검사, 무게 재기, 내용물 확인, 밀수 단속.
승객 짐 검색(몸수색 포함), 관세 계산 등 야외 작업이 대부분.
비, 추위, 더위 속에서 주 6일 근무, 일당 4달러(초기, 나중 약 3.60달러로 줄음). 승진이나 인상 없이 19년간 동일.
환경: 세관은 부패가 만연했지만, 멜빌은 예외적으로 청렴하고 성실한 것으로 평판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신체적·정신적 고통이 컸고, 건강(류머티즘, 눈 문제 등)이 악화되었습니다.
멜빌은 집(104 East 26th Street)에서 부두까지 매일 걸어서 출퇴근하며, 이 루틴이 그의 후기 삶의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개인적·가족적 맥락 속 에피소드
이 기간 가족 불행이 겹쳤습니다: 맏아들 말콤의 권총 자살(1867), 집 화재, 둘째 아들 스탠웍스의 가출과 객사 등.
멜빌은 틈틈이 시를 쓰며(《Clarel》 등) 문학 활동을 이어갔지만, 세관 일이 창작을 방해했다고 느꼈습니다.
퇴직(1885년) 후 유산으로 안정된 생활을 했고, 미완성 유작 《Billy Budd》를 쓰다 1891년 사망했습니다.
이 세관 생활은 멜빌의 비극적 말년을 상징하지만, 동시에 그의 청렴함과 문학적 명성을 간접적으로 지켜준 기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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