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에서 이어서.
그렇게 에즈라 파운드가 꿈꾸는 새로운 문학을 위한 새로운 작가들이 순조롭게 나타나고 있을 때였다.
이 우주의 완벽한 균형을 맞추기 위하여, 지구 작가가 나서고 만 것이다.
한 세르비아 청년이 총을 튕기자,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고, 파운드가 키워놓은 후배들, 파운드와 함께하던 친구들, 수많은 예술가들 또한 참호로 끌려가게 되었다.
그리고 상당수는 돌아오지 못한다.
“수 년 간 육성해놓은 후배와 같이 일해야 하는 친구 세이브 파일이 죄다 날라 갔다.”
예술가들의 가난함에 대한 부당함, 전쟁을 일으킨 자들에 대한 분노와 환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파운드는 이 시기, 그의 대표적인 시, <휴 셀윈 모벌리>를 쓰곤, 런던을 떠나 파리로 간다.
<삼년 동안, 그의 시대와 어울리진 않았어도,
그는 시의 죽은 기예를 소생시키려고
투쟁 했네; 낡은 의미의 숭고함을
지키기 위해서. 시작부터 틀렸어-
아니, 그래도, 그가 반쯤은
야만적인 나라에 태어났으니, 뒤처질 수밖에,
도토리에서 백합을 피우려고 단단히 벌렸으나,
카파네우스, 가짜 미끼에 낚인 송어에 불과했다.>
-<휴 셀윈 모벌리> 中
*카파네우스 - 테베를 공격한 일곱 장군 중 하나. 신성모독하다 제우스에게 뒈짖함.
파리에서도 잃어버린 세대들과 만나며, 헤밍웨이 같은 뉴비도 다시 발굴하고, 초현실주의자들과도 어울리며 예술가로 살기를 고집하지만, 이미 파운드는 어느 덧 40대였고, 자신이 그토록 욕하던 기성세대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는 점차 자신의 영향력이 예술계에 줄어드는 것을 느끼고 있었으나, 마지막 불꽃을 태운다.
그가 키우다시피 모든 걸 도왔덧 T.S. 엘리엇이 한 원고를 들고, 파리에 있는 파운드에게 찾아온 것이다.
“파...파운드 상, 이번에 쓴 시인데, 한 번 봐주는데스.”
“어디보자, <그는 서로 다른 목소리들로 감시한다>? 구린데? 일단 읽어보자.”
연필을 들고, 세심하게 원고를 살피던 파운드는 엘리엇에게 원고를 돌려주었다.
그걸 살피던 엘리엇은 그만 깜짝 놀라고 만다.
“저...저기 파운드상? 이 원고가 이상한데스.”
“왜?”
“어째서 분량이 반으로 줄어든데스? 와따시의 세레브한 구절들은 죄다 사라진데스!”
“응, 내가 뺐어. 다 삭제해.”
“테에엥! 그리고 왜 첫 시작이 ‘4월은 가장 잔인한 달’로 변한데스! 중간에 있던 구절이 어떻게 처음부터 나타나는데스!”
“그 앞부분들이 너무 구려서 내가 다 지웠으니까. 그 구절로 시작하는 게, 이 시엔 옳아.”
“그...그럼 와따시가 세레브하게 모방한 포프식 구절들은 어떤 데스? 우마우마데스까?”
“구려. 넌 포프가 아니야, 미도리. 넌 포프보다 못 써. 다 빼.”
“테에엥! 그...그래도 제목만은 괜찮지 않는데스? 디킨스의 소설 속 구절에서 따온데스!”
“그게 제일 문제야. 제목은 꼭 바꿔라, 안 그럼 원고 태워버린다?”
“파...파킨! 이러면 내가 쓴 시인지, 파운드상이 쓴 시인지 나조차도 헷갈리는데스웅.”
물론 엘리엇이 그대로 파운드가 편집한 원고를 출간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오늘날 <황무지>가 그러한 모습을 갖추는 데엔 파운드의 편집이 결정적이었다. 엘리엇 본인조차도 온전히 자신의 글이라 봐야할지 스스로 의심할 정도로.
물론 파운드는 이 시기, 오랫동안 단테를 꿈꿔왔던 만큼, 영미 문학에서 나온 적 없던 거대한 서사시를 꿈꾸고 있었다.
“단테처럼, 거대한 지옥과 연옥과 천국의 서사시를 쓰는 거야. 역사를 소재로 잡고, 그 역사를 시로서 반복시키며, 내가 좋아하는 모든 요소도 잔뜩 집어넣고, 분량도 신곡처럼 거대하게 잡는 거야.”
훗날 <칸토스>로 불리는 이 거대한 프로젝트는 1905년부터 구상되다가, 1917년 무렵, 3편의 초고가 쓰여 졌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파운드가 이 계획에 착수한 것은 20년대부터였고, 이후 그는 <칸토스>를 제외하면, 시를 쓰지 않는다.
아니, 정확하게는 모든 시인으로서의 작업은 오직 <칸토스>를 완성하는 데에만 몰두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쩌면 그의 몰락의 시작이기도 하였다.
“역사가 소재니까, 일어난 모든 걸 공부해야겠지? 당연히 저 끔찍한 전쟁의 기억도 넣고, 내가 좋아하는 단테의 고향 이탈리아 르네상스도 넣고, 또 그와 관련된 공부도 해야겠어. 아, 그러고 보니 중국과 일본도 있지! 이참에 공자? 그 사람 책도 번역하고, 공부해보자!”
(힘을...원하는가?)
사실 에즈라 파운드는 이전부터 ‘조짐’이 없진 않았다. 그는 상당수 모더니스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는 반유대주의 성향이 있었고, 또 엘리트주의자였다. 독선적이고, 오만하기도 하였다.
에즈라 파운드는 그러한 모더니스트들 중에서도 최악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공교롭게도 파운드의 마음 속 고향은 이탈리아였다. 그가 존경하는 단테와 수많은 시인들의 고향. 때 마침 이탈리아엔 독버섯이 당시 자라나고 있었다.
“오, 파운드! 내가 율리시스 끝내고, 요즘 진행하는 작품이 하나 있는데, 그거 쓰는데 돈 필요해서, 후원자 좀 찾아.”
“조이스, 오랜 예술가 생활 끝에 난 깨달았어. 예술가를 초월하지 않으면, 예술가들은 살 수 없다는 것을.”
“뭔 개소리냐? 너 이제 약까지 하냐?”
“난....예술가를 그만두겠다, 조이스! 이제부터 나는 정치경제학자다!”
“??????”
조이스도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왔을 것이다. 역사를 공부하며, 역사, 정치, 경제학 등 다양한 책과 1차 대전에 관련된 이런저런 음모론 서적까지 접한 파운드는 스스로를 경제학자라고 칭하며, 유사경제학에 몰두하더니, 급기야 나중엔 미국으로 건너가 경제학 강의까지 한다.
이 시기부터 시작된 혼종 파운드의 세계관은 그 순서를 따지기 어려우므로 대충 그가 말하는 바들을 하나씩 정리해보자.
“1차 대전의 원인이 뭔지 아냐? 바로 유대인 놈들이 만든 고리대금, 이자제도 때문이야!”
“네?”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공부해본 결과, 더러운 돈놀이하던 놈들이 항상 문제였어. 이자가 있다면, 인간은 자기 집도 못 짓는다!
내가 <사회신용설>에 관한 경제학도 공부해봤는데, 여기에 답이 있더군!”
“아니, 시 쓰려고 역사 공부한 거 아니었어요?
“이자 제도가 더러운 자본주의를 만들고, 더러운 영국 정부 놈들이 이를 비호하기 위해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몰아넣었다!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사악한 이자를 없애고, 유대인과 그 문화의 씨를 말려라!”
“약하셨어요? 꼭 빨갱이 같은 소리 하시는데, 님 혹시....?”
“레닌까지는 몰라도, 스탈린은 쓰레기 같은 놈이다. 영국과 같은 자본주의는 노답이지만, 공산주의 역시 노답이지. 빨,,,갱,,이 쉐리,,,덜 카악 퉷!”
“자본주의도 아니고, 공산주의도 아니면, 대체 뭘 하겠다는 건데요?”
“파시즘.”
“네?”
“저기 두체가 파시즘을 하고 있던데, 내가 볼 때 이게 답이야. 거대한 정부가 모든 걸 통제하고, 유대인들을 몰아내면, 더러운 자본주의도 사라지며 태평성대가 열릴 것이다.”
“깡패새끼들인데요?”
“아니, 두체는 우리 시대의 [군자]다.”
“군..뭐...뭐요? 아니, 그거 유교 용어 아니에요?”
“내가 유교와 중국 역사를 공부하다보니, 공자의 유교 가르침을 받은 중국은 항상 하나의 거대한 정부가 되고자 했고, 이 덕분에 안정되었더군. 다 군주의 덕의 힘이야. 이탈리아는 두체의 덕으로 하나가 되었다. 그가 바로 우리 분열된 유럽의 구원을 가져다주는 패자이자 군자다!”
가뜩이나 여러 가지 사정이 좋지 못하고, 자신이 키웠던 엘리엇의 위상이 점점 올라가며 자신의 위치까지 위협받던 도중, 퇴물이 된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까닭인지, 드디어 파운드는 ‘돌아버렸다.’
그대로 그는 1924년 이탈리아로 이사를 가며, 두체 러브를 외치게 된다.
참고로 이놈은 이 시기부터 두 집 살림을 하는 어메이징한 일까지 벌인다.
그 상대는 올가 러지라는 바이올리니스트로, 파운드와 합작도 하고, 원고도 관리하는 등, 파운드 연구에도 큰 공헌을 한다.
파운드의 아내 도로시는 결국 이걸 알았으나, 끝내 용서하는 놀라운 관용까지 보여준다. 물론 두 집 살림은 계속하며, 자식까지 낳는다.
물론 파운드는 참피 새끼라서 그 자식들에게 별 관심도 가지지 않고, 내버려둬서, 각자 알아서들 자란다.
이제는 한 마리 참피가 되어버린 파운드는 두체 러브를 외치던 도중, 딱 한 번 무솔리니와 만나게 되었다.
“데뎃! 두체상! 두체상은 와따시의 토마스 제퍼슨이자, 이탈리아의 왕도정치의 이상인데스! 군자 무솔리니상! 와따시의 부탁을 들어주느데스웅~”
"군자가 대체 뭔데 씹덕쉐리야!"
파운드에 대한 이야기를 미리 들은 무솔리니는 파운드의 시에 대해서 칭찬하였으나,
뜬금없이 파운드는 무솔리니에게 경제정책들을 건의하기 시작한다. 물론 유사경제학자의 의견이라 무솔리니는 듣는척만 했다.
"아...그래...좀 공부 많이 해서 피곤한 거 같은데, 다음에 마저 이야기합시다. 난 가요."
“테츄웅~ 두체께서 내 부탁들 고려해본다고 했는데스웅~ 쿠이쿠이~”
이 후 무솔리니는 직접 파운드와 만나는 일은 없었지만, 파운드는 계속 이탈리아에 남아 두체를 위한 일을 하기 시작한다.
이탈리아 라디오 방송 등에 출현하며, 연일 미국을 비난하고, 두체를 찬양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끔 미국을 가기도 하였다. 미국 정치가들을 만나, 전쟁이 일어날 시, 미국은 참전하면 안 된다며, 말 그대로 두체를 위한 일을 하는 괴벨스가 된 것이다.
하지만 끝내 2차 대전은 일어났고, 미국도 결국 참전하였다.
파운드는 끝없이 프로파간다를 쓰고, 발표하며 두체 찬양, 미국 비난, 유대인 비난, 영국과 소련 비난 등을 거듭한다.
이러한 파운드의 활동의 영향력에 대해선 꽤나 논란이 많다. 다만, CIA에서도 주시했다는 점, 그리고 이 당시 미국 지식인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는 점 등을 볼 때, 그의 파시즘 활동으로 인한 영향은 가볍진 않을 것이다.
“저 새끼, 저건 히틀러보다도 위험한 놈이야.”
라는 아서 밀러의 욕설이나, 에즈라 파운드가 ‘미국에 대한 반역 혐의’로 재판에 기소되었음은 분명 그의 행보에 대한 중대함일 것이다.
물론 참피 파운드는 콘페이토를 받는 대신, 두체의 해골 3개를 받게 되었다.
나치와 파시즘은 멸망하였고, 두체는 그대로 사살되어 나체로 거꾸로 매달리게 되었으니까.
“테에엥! 두체가 죽은 데스!! 일가실각인테챠앗! 그...그런데 오마에들은 누구인데스?”
“민주주의 배달이다, 반역자쉐끼야!”
도망가려던 파운드는 미군에게 잡혔고, 피사 수용소에 그대로 갇힌다.
두체가 죽은 충격과 수용소 자체의 열악함, 일부러 그를 조롱하는 미군의 행동 등이 원인이 되어 일시적인 정신착란까지 일으키는 중, 그는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여겼는지, 다시 시에만 집중하기 시작한다.
그러는 사이, 반역 혐의로 인한 재판이 열렸지만, 파운드의 친목질의 힘이 발휘되기 시작한다.
그의 동료와 후배들이 자비를 요청하며, ‘저새끼 저거 그냥 돌아서 저런 거다’ 식으로 변호하기 시작했고, 이게 먹혔는지, 에즈라 파운드는 형무소 대신, 정신병원에 감금되었다.
“데...데뎃....죄수인 와따시는 운치나 싸는 데스.....”
이러한 시기에서도 그는 어찌되었든 다시 칸토스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프로파간다를 쓰는 동안 거의 중단되었던 작업을 이제서라도 완성하려는 것일까?
13년의 정신병원 생활 직후, 그는 <피산 칸토스>를 출판하고, 이로 볼링겐 상을 논란 속에서 수상한다.
이를 계기로 여론이 조성되어, 결국 그는 병원에서도 풀려나고, 그대로 이탈리아로 돌아간다.
그는 반성이라도 한 것일까?
“훼이크다 병신들아!”
그러면 그렇지.
이놈은 끝까지 한 마리 참피였다.
상당수 파운드 연구자들이 어떻게든 이놈을 쉴드치기 위하여 주화입마하지만, 파운드는 딱히 자신의 일을 반성한 적은 없었다.
끝까지 믿음만은 안 버리는, 줏대 있는 병신쉐리....
이탈리아에서 네오 파시스트들과도 어울리는 등, 끝까지 추하게 사는 와중, 칸토스만은 계속 썼다. 이 와중에도 친목질만은 못 버렸는지, 긴즈버그나 찰스 올슨 등 수많은 후대 미국시인들이 그를 찾아오곤 하였다.
그러다가 결국, 1972년, 90에 가까운 나이로 자신이 증오하는 미국이 아닌, 영원히 사랑하던 이탈리아에서 파킨했다.
에즈라 파운드를 오늘날 연구하고, 읽는 것은 그만큼 상당히 위험하고, 또 고심해야하는 부분일 것이다.
모더니즘을 연구하는데 그를 빼놓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콘페이토만 구걸하는 참피였고, 자연스레 그의 시들에도 녹아있는 경우도 많았다.
그의 대표작이자 오늘날 영문학이 가장 긴 미완성의 서사시 <칸토스> 또한 상당히 초기부터 돌아버린 파운드가 쓴 것이기에 조심해야할 것이다.
많은 파운드 연구자들이 범하는 실수처럼, 그의 시를 좋게 느껴도, 그의 참피 같은 유교탈레반-파시스트의 삶까지 미화해선 안 될 것이다.
명심하자, 느그 두체는 미국 갔어!
오늘날 파운드는 여러모로 엘리엇과 대조되며, 높게 평가되기도, 낮게 평가되기도 한다.
엘리엇이 모더니즘의 상징처럼 여겨진다면, 파운드는 주로 포스트모던 주자들에게 상징처럼 여겨지며, 엘리엇에게 대항하기 좋은 시인으로 쓰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정작 엘리엇을 중심으로 한 신비평에서 ‘작가와 분리된 작품 읽기’는 파운드의 작품 평가를 그의 파시즘 경력과 분리하여, 높이는데 일조했다는 점이다.
거기에 휴 케너 같은 저명한 모더니즘 연구가는 파운드와 친목질하며 은근히 그를 미화시킨다.
개인적으로도 에즈라 파운드의 시를 좋아하긴 하는데, 한때는 그래도 반성했을 거란 환상을 읽고, 믿었으나, 좀 더 머리 크고 다양하게 읽어보니 그런 건 없다는 걸 깨달았다.
파운드의 시를 좋아한다면, 전기 등은 꼭 여러 사람 걸 읽지 않는다면, 파운드와 친목질한 이들에게 주화입마할 것이니 조심하자.
결국 대류...친목질이....최고다.
모더니스트의 기묘한 모험
- 20세기 최고 시인 예이츠의 환상록과 자서전 읽으쉴?
- <율리시스>는 어떻게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책이 되었는가?
모더니즘이 사람을 돌게하는거냐 아니면 돈새끼들이 모더니즘을하는거냐
와 시발 흑화 제대로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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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모는 거기에 힙찔이병도 추가됨
이런 거 볼 때마다 나는 늙으면 얼마나 추레해질지 걱정됨... 지금도 이미 추할대로 추하니까 괜찮나?
와 시벌 오져버리는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