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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 (소설가): 장시간의 귀가 열차에서 처음 소설을 펼쳤을 때는, 사실 읽다가 한숨 잘 셈이었다. 전날 밤을 거의 새운 데다 (밤을 새운 게 맞을까? 밤을 새웠다는 꿈을 꾼 것은 아닐까?) 잠은 어쨌든 짧은 죽음이니까, 자신의 죽음을 인식하지 못하고 바르도를 배회하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읽기에 그보다 더 적합한 행위는 없을 것 같아서, 어쩌면 그 일시적이고도 반복적인 죽음 한가운데로 책 속의 말들이 꿈의 조각보를 기워다가 침입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라는 계획은 책 속에서 『우아한 시체』와 『죽은 동물 조리법』이 등장하는 순간 폐기됐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인물들이 그 책들을 다급하게 낭독하는 혼돈과 광기의 장면에서 나는 실성한 것처럼 소리 죽여 웃었고 누가 봤다면 수상쩍게 여겼을 테지만 아무래도 좋은 상태가 되었다. 물론 베케트식의 부조리와 유머만이 폭발하는 작품은 아니다. 현실과 몽상, 지상과 우주, 삶과 죽음이 경계를 잃거나 앓는 기이한 세계에 접속한 독자는 착각의 거푸집에 부어진 환각의 수렁에 빠지며, 존재하지 않는 존재의 차원을 인물들과 함께 부유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비틀거리며 나아간 끝에 투명한 빛을 만나 마침내 공성(空性)을 깨달을 것인가, 망집(妄執)에 머무를 것인가. 그에 대한 대답을 얻기 위해 이 소설을 펼친다면, 더욱 혼수상태의 난장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일단 한잔해, 바르도의 바에서.
양선형: 포스트엑조틱한 크리처들이 바르도를 방황한다. 실패한 혁명가, 미친 극작가, 임무를 모르는 조직원, 망명자들과 죄수, 기죽은 광대… 바르도는 열반과 환생이라는 두 기로 사이에 놓인 경계 구역이다. 죽음이 미뤄지며, 살아 있다고도 소멸했다고도 말할 수도 없는 이상하고 모호한 장소. 초월의 가능성과 부활의 가능성 둘 다가 유예되거나 부인되고, 어쩌면 두 가능성 모두에게서 버려진 어긋난 시공. 픽션은 무(無)와 현실 사이의 틈새에서 벌어지는 사건이기에 없음도 있음도 아니고, 사라짐과 나타남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기이한 존재들의 대피소를 마련하는 일이다. 볼로딘의 소설은 잔존하는 헛것들을 위해 온갖 실험적인 형식과 신비한 장르적 환상, 기상천외하고 경이로운 수법을 차용하고 동원하는 교잡된 우주이며, 파편과 노이즈로 존속하는 역사의 폐기물들이 모여들어 속닥거리는 비틀린 중간계를 창조한다. 붓다도 인간도 되지 못할 가망 없는 유령들이 한담을 주고받는 저세상. 해괴한 고독과 뻔뻔한 희망, 목마른 기다림. 나는 꿈꾸는 송전탑처럼 저세상을 향해 귀를 기울인다. 내가 있(을 수도 있)었던 낯설고 오래된 장소가 거기 있었으니, 나는 죽었는지도, 단지 내 죽음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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